[내용있음] 라라랜드와 여자없는 남자들.

어쩌다 때를 잘 맞춰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얻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저 이 순간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그렇구나...'라는 특정한 직관적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을꺼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구성하는 품목들의 특성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는데도, 모두 다 바로 그 순간에 합치되면서 기묘한 감정적 고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별 것이 아닌 것들이, 어떻게 그런 상태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신비감 또한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저는, [라라랜드]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누구의 평도 보고 싶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평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독점하고 싶었기에요. 그런 감정적 고조가 언젠가는 기억할 수 조차 없는 저편으로 완전히 잊혀질 것이란 것도 확신할 수 있었기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했습니다. 벌써 많은 느낌은 사라지고 사후적 환영만이 남아 있는 이 시점에서 아쉬워 글을 써 봅니다.


최근의 저는 사람을 사귀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매일 새로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읽고 들었던 것들은 아침 산책에 걸리는 거미줄만큼이나 부질없는 사전지식이었음을 깨닫고 있지요. 로맨스 영화도 봐지고, 노래 가사도 들리는 누구에게나 흔하지만 제 자신에게는 고유한 체험을 하고 있지요. 눈이 멀었다는 비유는 상당히 그럴싸한데, 저는 정신적 사유의 눈이 좀 멀지 않았나 싶을 때가 있더군요. 과거의 제가 세 단계에서 다섯 단계 정도의 생각을 하고 살았다면, 요즘에는 한 단계나 많으면 두 단계에서 툭 떨어지는 사고를 하게 되네요.


[라라랜드]의 인트로가 끝나고 전경이 펼쳐지자, 거대한 맥락 속에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러니까... 각각의 차량에서 흐르는 노래에 따라서 각기 자신의 차폐된 세계가 펼쳐지자 고유하되 보편적이지 않는 세계들을 각각 소유하고 있단 사실에 감정이 고조되었을 겁니다.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였는지도 몰랐기에 사람들이 갑자기 뛰쳐나와 노래 부르자 '이런 장르였군'하고 그제서야 눈치챘었습니다. 노래 가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길이 막힌 고속도로에서의 인간 군상들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니 이상한 느낌이지만, 이미 영화 제목이 뜨기 전부터 제 넋은 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네 여자들 씬에서는 색감 배치에 경악하다가 정신이 곤해졌습니다. 어찌보면 단순하다고 할만큼 보색이 배치된 방들, 그리고 롱테이크 컷을 끝까지 이어나가면서도 색전환에 신경 쓰고 끊임없이 각 캐릭터의 색과 조명을 변경시키면서 중점을 바꿔나가는 현란함에 매료되어버렸죠. '미쳤군 미쳤어...'라고 중얼거리면서 왠지모르게 그 편집증적인 구성에 울먹거렸습니다. 카메라의 전경 변환에도 (애초에 저는 [맨 오브 스틸] 같은 촌스러운 카메라 동세에도 감탄하는 사람입니다)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것이 맘에 들어버렸고, 끝까지 영화에 호의적일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우직합니다. 누가 이 이야기를 잘 못 들을 수가 있을까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모든 것이 마치 마무리 된 마냥 '나는 너를 언제나 사랑해' '나도 너를 언제나 사랑해' 이후 5년 후를 때려버리고 그 확신을 가진 대사여 엿을 먹이는게 참 경쾌하더군요. 겨울로부터 시작해 봄, 여름, 가을로 나아가는 회차에서 이미 예상하던 결론이었지만 다림질을 확실히 하길래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랑이 부질없으며 그 현재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했기 때문에 적합한 영화였을지도 모르죠.


저는 지금까지 연애 상담을 하면서 '헤어짐'을 고려하면서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머리 속 사고회로에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헤어져야 하는 연애 상담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좋은 만남을 이어가기 위한 조율점을 찾아나서고 그러했죠. 그것은 아무래도 제 연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헤어짐을 고려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건 또 다르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통해서 우회로를 뚫어볼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내가 마음이 있었다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 남이 마음이 있었다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엇갈림이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 서로가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것, .. 그런 것들을 이해나 납득 너머의 수용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계로 접한 느낌이었습니다. 안 되도 할 수 없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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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떤게 좋냐고 하면 예전에는 가끔 '소설보다는 수필이 좋지요'라고 버릇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애 이후 깨달았는데,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보다는 소설을 훨씬 좋아하더군요. 지금까지 좀 헛 읽었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여자없는 남자들]을 읽어 나가는데, 전과는 다른 감정적 고조를 역시나 느꼈습니다. 달달한 사탕으로서나 좋아했었지, 감정적 기로나 갈등 같은 것은 기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에서는 어쩌다 보니 엇갈리게 되고, 이후 그것을 납득하는 남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네, 뭐 어떻게 보면 하루키는 대부분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니까 그런게 맘에 안 들때도 있긴 하지만 여튼 그렇습니다. 저어했던 고통스런 감정을 마침내 맞아들이는 [기노]라던가,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상대의 작은 이해 자락이라도 줍는 순간에 도달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라던가(아니 이런 시시한 제목이었던가?), 좋았습니다.


전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는데, 뭔가 다른 것을 보게된 현재 시점의 저는 어떤 것을 더 좋아할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상실의 시대]나 [태엽감는 새]나 [해변의 카프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읽어 나갈 수 있었는지, 그 당시의 자신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당연히도, 문장과 문장을 계속 디디며 넘어서는 재미로 읽었었겠지만요.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도 매우 재미있으니까.)


타자를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소설은 특유의 경로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절한 시점에 복용해야 의미가 있을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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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라라랜드의 감상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대해서도 보편과 특수의 속성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떠나 고유함으로 수용하고 싶으나 그게 참으로 어렵네요. 누구나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 이란 것에서 떠나오고 싶은데 말입니다.


가끔 이렇게 감정적으로 튀는 시기가 있는데, 그런 시기의 저도 그렇게 싫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 오옷, 잔인한오후 님 오랜만이에요. 언제나처럼 내용 가득한 글이네요. ^^


      다 읽은 후 제 결론은... 예쁜 사랑하세용. ^^

      •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이 많아 다듬어야겠어요 ㅋ

        예쁜 사랑.. 흠.. 편한대로 그냥 사랑하겠습니다..
    •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저도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딴지는 아니고 그 장면에서 I'll always love you는 우리 사랑 이대로 변함없이~같은 다짐, 약속이 아니고,


      헤어질 때 지금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지만, 너는 언제나 내 마음에 있을 거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거야 정도인 것 같아요.


      보통은 사귀는 중에 하는 말은 아니고, 헤어지면서 하는 말이거든요.




      • 으아니 이런?

        제가 영알못이다보니 오독한 부분이군요. 자막에서는 그래서 완전 착각.. 그럼 그 장면은 아름다운 이별이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왜? 정말인가요? 어째서?...
        • -제가 최근에 같은 대사로 헤어져서 ㅠㅠ 이 장면을 보면서 헤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 사귀는 중에도 강조형으로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만 헤어짐의 대사일수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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