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을 읽었어요 + 지붕뚫고 하이킥



일본의 젊은층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게 흥미로워요. (번역투..)


<절망의 나라의 희망적 젊은이들>도 흥미로웠고요. 일본 사회의 모습이 한국사회의 가까운 미래라고들 하죠 아마? 그래서 내가 징후로만 느끼는 (혹은 나와 주변 사람들만 이런가 싶은) 어떤 것들이 완연하게 펼쳐지는 모습을 일본에서 보게 되면 

가까운 미래가 현실이 되는 SF를 보는 느낌, 리얼한 SF 같은 느낌이에요.


요새 이 책 광고도 많이 하고, 

제가 편의점 없이 못 살고, 편의점 알바도 해봤고, 그 때 느낀 것들도 많고, 

요새 인간을 닮은 기계에도 관심이 생기고, 

혼술 혼밥의 시대에 편의점 인간 이라는 물적 특성을 가진 말에 끌려서

읽게 되었어요.


알바를 하면서 느낀 건 이런 것들이었어요.

분명 내가 인간으로 여기 서 있는데, 굉장히 기계적인 일을 대신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내가 분명 인간으로 여기 있는데, 상대가 나를 인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 그저 계산을 해주고, 물건을 훔쳐가지 않게 감시하는 역할 정도일 뿐이지요.


요새는 온갖 할인카드와 서비스가 많아졌지만, 제가 알바를 했던 몇 년 전엔 그런 게 별로 없었어서, 그냥 저도 기계적인 어서오세요, 얼마요, 안녕히 가세요, 만 대충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후로 생긴 습관인데, 편의점에 가서 점원이랑 눈을 마주치질 못해요.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역할을 하고 있는 상대방을 (나도 그랬으니까) 마주하는 게 민망해서, 얼굴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었는데,

자발적이지 않은 '을'의 입장을 하고 있을 상대방이 민망할까봐 (내가 그랬으니까) 바라보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 이면에 있던 다른 생각 때문이었나봐요. (그게 뭔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여튼,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가 편하게 생각하는 공간은 공공적이면서 익명성이 지켜지는 공간이에요. 하루키는 '공중정원'이라고 했고 히라타 오리자는 '세미 퍼블릭'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사람들의 입출입이 자유로운 '반쯤 열린 공간'. 편의점, 체인 카페. 사장님이 아니라 알바생이 대신 일하는 편의점, 역시 사장님이 직접 바라보고 있는 동네 카페가 아니라 알바생이 대리하는 체인점. 편의점 인간이라면 그 인간의 속성은 무얼까, 나와도 닮은 점이 있을 것 같아서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여기부턴 약간 스포일 수 있어요. (진짜 스포는 더 아래에)





 주인공은 보통의 소설이라면 타자화될 인물입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사이코 패스라고 그려질만한 인물이지요. 보통의 소설이라면 문제의 대상이고, 그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되고, 그를 교화시키거나 어디 가두거나 하면서 일은 해결되고, 주인공인 보통 사람은 현대 사회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면서 마무리 될 거예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 사이코 패스적인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막 살인을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고, 가족의 도움으로 '내가 문제가 있긴 하구나'를 알고 조심하려 하죠. 그 노력이 바로 편의점 알바 전문가이고요. 

 주인공에게 나타난 인물은 마치 박민규의 <카스테라>에서 본 듯한 인물이었어요. (정확히 어떤 단편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에요) 세상을 다 꿰뚫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능력은 없죠. 하지만 그 무능력, 뭘 하지 '않음'의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는, 틀린 말은 안 하지만 민폐적인 인물이요. 그가 세상에게 상처받고, 그래서 깨달은 논리들이 제법 말이 됩니다. 비혼자에게 세상이 하는 온갖 간섭들. 그의 말대로 하면 분명 안 되는 게 맞는데, 눈 앞의 문제들은 당장 해결이 되고, 마치 다 해결된 것 같은 상태가 되요. 거기에 이 사회의 아이러니가 담겨있겠죠. 그 괴짜적인 논리가 들어맞는 걸 보는 단편소설적인, 소극스러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여기부턴 정말 스포예요.




 이 이야기의 끝은 공감 능력 없고 비인간적인 주인공이 인간성을 각성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어요. 으레 그러하듯이 말예요. 자기에게 나타난 그 인물의 말대로 휘둘리다가 그 끝에서 여태껏 몰랐던 어떤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공감 능력을 갖게 된다거나 하는... 혹은 처음으로 인간성을 자각하고 혼란을 느끼며 끝날 줄..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처음의 그 '편의점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더군요??? 난 이 곳이 좋아, 남들 하는대로 결혼한 척, 연애하는 척, 취업해야하는 척, 살아봤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가 다시 이 편의점으로 돌아오면서 아 이곳이 내 곳이야! 라고 느끼면서 끝나는.

 그 엔딩이 참 혼란스러웠고 새로웠습니다. '교훈을 주기 위한 방향이 아니었구나'와, '이게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지' 하는 생각이요. 이 따위의 사회를 사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고작/사실은/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세상에, 기계화된 인간이 느끼게 된 행복이 기계화의 삶을 잘 사는 것이라니. 기계화된 인간이 주체성을 느끼는 공간이 기계 속이라니. 

 역시 인간이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방향이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아니라 이런 방향이라는 것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디스토피아적인 행복? 디스토피아라서 유토피아? 

(혹시 제가 너무 표면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한 것이라면, 읽으신 분의 다른 견해도 궁금합니다)





-----------여기부턴 다시 잡담입니다.



 어쩌다가 지붕뚫고 하이킥을 정주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세경과 빵꾸똥꾸가 나왔던 그 시리즈요.)

그 때와 지금 사이에

세상이 변한 건지,

제가 나이가 들면서 현실을 알게 된 건지,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해서 그런 건지,

신세경 자매를 감당해야하는 오현경의 피로가 처음으로 느껴지더군요. 마치 둘리의 고길동 아저씨에 감정이입되듯;

그리고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정보석, 대놓고 '쓸데없는 놈'이라고 구박 주는 이순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어요. 예전에 봤을 땐 아 진짜 불쌍한 아저씨ㅋㅋㅋ, 웃긴 할아버지ㅋㅋㅋ 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보면서, 마치 무한도전의 구식 농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니 어떻게 저렇게 심하게 면박을 주지, 심하게 구박하네, 심하네. 그러면서 이게 극적으로 과장된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순재가 희화화되는 에피소드들은, 그런 악인 캐릭터에 대한 복수라는 점도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그냥 귀여운 할아버지, 악인이 아닌, 개구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예요.

 이 시리즈의 유명한 엔딩을 우린 알고 있죠. 당시에 전 충격이라기보다는 그냥 잉?... 에서 끝났던 것 같아요.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는 블로깅들은 그냥 과한 해몽이라고 생각했었고. 그거야말로 이 감독의 천재성이다! 라는 말에는 공감이나 이해가 전혀 안 되었었고요.

 어디선가 김병욱 연출의 인터뷰였나? 그 결말에 대해서 '처음부터 세경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도 없고 바랄 수도 없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 마지막회에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라는 내용 (정확하지 않습니다...) 을 봤던 것 같은데, 그 땐 그것도 그냥 연출자의 의도나 변명일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요. (인터뷰인지, 어떤 블로거의 평이었는지, 그것도 기억이 안 나네요. 어쨌든 그 의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한 회 한 회 다시 보면서 그 생각이 들고, 그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에요.


 세상엔 사랑이야기가 참 많은데, 그 이유는 결말을 맺기가 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이루었다! 키스를 하게 되었다! 결혼을 했다! 로 마무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는 '결말'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현실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초반의 스케치나 현실 묘사들은 리얼하고 디테일할 수 있지만 결말을 짓기가 어려워요. 쓸데없이 해피엔딩으로 가다보면 지금껏 쌓아온 리얼함을 벗어나는 비현실이 되어 용두사미가 되고, 현실의 암담함을 그대로 가다보면 이야기가 끝난 느낌이 안 들어 답답하고 화가 나고, 그러다보니 약간의 희망을 발견하거나 가능성을 비추는 정도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이제는 흔해빠졌으니까요.


 그래서,

현실에 가진 것 없고,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것 없는 세경씨에게 허용될 수 있는 행복의 최대한이란, 해피엔딩이란, 그녀가 꿈꿀 수 있는 것 중 현실 가능한 최대한의 판타지란, 정말 지금 그저 이 순간, 행복한 찰나의 이 순간, 잠시 후에 끝날 이 순간, 바로 이 순간 시간을 멈춰주는 것 뿐. 

이게 너무나 합리적인 결말 같아서 할 말이 없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너무나 말이 되는 것 같은 지금의 차이가 뭔지,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나만 변한 것인지, 둘 다 변한 것인지,

망해가고 있는 것인지, 성숙해진 것인지, 그런 혼란이 조금 오네요.




그런 시대 변화를 겪는 와중에 <편의점 인간>을 읽었어요.


    • 저는 49회인가 사랑니 뽑는 에피소드가 그 한편만으로 완결성이 너무 강해서 그후의 전개는 사족처럼 느껴지더군요.
      • 곧 다가올 49회가 기다려집니다..
      • 정주행을 마친 후의 소감 :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말 좋았어요 그 에피.

    • 책이 내신세 같아 공감 백배입니다,공중정원에 매일 오는.

      • 그쵸. 그러한 사람들이 은근히 사실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 저도 직원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인생과 직면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두려워서였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 하고 나서는 일부러라도 눈을 마주치려 노력합니다. 마트 직원들이 노조 뱃지 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용기를 내서 응원과 지지의 말을 하기도 하는데, 하고 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긴 합니다.

      • 아..그 두려움과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는, 아니, 저 사람만 을인게 아니라 나도 (어딘가에선 필시) 을인데, 내가 당신보다 뭐 얼마나 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지레짐작에 안쓰러움을 가장해서 마주보지를 못한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수롭지않게 대하자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습관이 된 건지 잘 고쳐지질 않네요~

        노조 뱃지에 응원의 말 들으면 정말 더 힘이 나고 나도 훈훈해질 것 같아요.
    • 저도 재밌고 충격(?)적으로 읽었어요.저도  그 소설에서 '이물질'중 하나였기에 더 그랬던것 같네요.


      결말은 좀 의외였지만 완전히 엉뚱했던것 또 아니었던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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