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타임 리프. 여우와 신포도.
1.
<시간은 달리는 소녀>를 다시 봤어요. 생각보다 더 쫀쫀한 영화였다는 걸 발견하며 놀라웠고, 예전에 좋아했던 장면은 역시나 다시 좋았어요. 그런데 후반부의 반전은 기억이 전혀 안 나더라고요. 헐...이렇게 결말을 풀었단말야? 싶어서 다소 당황했습니다.
<너의 이름을>을 먼저 봤던 친구가 말했어요. '이런' 영화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질렸고, 그래서 피곤해져서 잠이 들었다고. 뒤늦게 영화를 보러갔던 저 역시 일본 + 애니메이션 영화 상영관에 이렇게 앞뒤양옆 꽉꽉 들어찬 기운에 질렸고, 왜들 이렇게 유행처럼 좋다 하고 '쏠리는지' 그 이유나 알고 싶었어요. 한가로운 마음으로 한가로운 분위기에 이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미 망했구나, 하면서요.
엄청난 재해와 시간을 되돌리고자 애쓰는 절박한 뜀박질, 그것들에서 이게 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알 것 같았고 저 역시 그 마음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예전에 어떤 거장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좋은 이야기란 뭡니까? 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대중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이야기'라고 답하셨죠. 어떤 기술이나 소재의 특성, 기교에 대해 받아쓸 준비를 하고 있던 학생들 모두가 멍해졌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어떤 플롯을 접할 때마다, 그리고 '안 좋아보이는' 이야기들이 팔리는 걸 보면서 그들의 잔 기교를 질투하고, 어떻게 그 '시류'를 탈까 볼펜끝을 쥐어뜯었던 순간들이 많았죠. 그러다가 모든 게 무너진 듯 허망할 땐, 다시금 그 말씀이 떠올라요. '대중'의 '무의식'. ('건드리는' 은 정확하지 않아요.) <너의 이름은>은 그 완성도가 어떠했던 간에 대중의 의식도 아닌 무의식에 있던 어떤 점을 분명히 건드리고 그걸 위로해주는 좋은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다시 보면서, 난 시간을 뛰넘는 이런 소재를 좋아하는구나, 상기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시월애>거든요. 당시엔 배우와 영상미 때문에 좋았는데, 다시 볼 땐 (여전히 시각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이리 저리 잘 꼬아놓은 접점들을 참 잘 만들었구나, 싶었어요. 여자가 남자의 미래를 바꾸었듯, 남자도 여자의 미래를 바꾸었다, 라고, 메모했던 기억이 있어요. (<너의 이름은>이 <시월애>를 카피했다는 말은 어불성설. 1도 더 생각 안 했습니다)
다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돌아와서...
그저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 보고 싶어서 틀었던 것 뿐인데 그러고보니 이것도 시간을 뛰어넘는 소재였구나, 라는 걸 깨달으며 (너무나 명확한 공통점인데 생각치 못했던 게 더 이상하죠;) 타임리프 라는 이 소재에 더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게 대중적인 소재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거장님의 말씀이 떠올랐고요. (대중의 '무'의식)
후회가 많기 때문. 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일에 대해서 뭘 해도 다 후회, 바로 방금 지난 일부터, 지나보니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어떤 계절, 몇 십년 전.
(1.그런데 너무 옛날일 경우, 그 긴 '구간' 중에 정확히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야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걸까요
2.만약 그 시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고통스러우실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돌이키고 싶은 것이라면 이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 선택이요...아메리카노가 끔찍히 맛이 없네요.
그리고 그 전에 먹은 시오라멘을 먹지 않는 것이요. 끔찍하게 짰는데 시오=소금 인 걸 몰랐거든요. 라멘도 잘 먹지 않는 데다가.
여러분도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으신가요?
어떤 순간인가요.
하지만 저는 계획적인 인간도 아니고, 굉장히 충동에 휩쓸리는 인간이에요. 영화를 보러 나와서 그 영화를 하는 극장 앞까지 갔다가도 에이 안 볼래..하고 돌아오는 결정을 해버리는 사람이라. (그래서 누구와 약속을 잘 잡지 못하는 편입니다. 너무 잘 바뀌는 제 마음을 저도 의심해서. 약속 파토의 여파는 저만 받으면 되는데 누가 연관되어있으면 너무 부담을 느껴요.)
(그리고 이건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점점 더 심해졌어요. 이러고 싶지 않은데, 무계획의 날들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되네요.)
(괄호가 점점 길어지는데, 주석이라도 달아야하는 잡생각의 곁가지들입니다. 그리고 그 곁가지들은 그저 얕을 뿐이에요. 사족이죠, 말 그대로.)
여튼 그래서
언제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그저 그런 선택을 할 뿐일 것 같아요. 이 카페 말고는 근처에 다른 대안이 딱히 없었고, 시오라멘 아니면 또 순대국? 아니면 비슷한 어떤 곳에 가서 비슷한 어떤 맛있음/맛없음을 맞보았겠죠.
그리고 또 먹다보니 그냥 이것들에도 익숙해졌고, 적당히 이만큼의 글을 쓰고 있는 이 정도의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이 되었고요.
더 나은 것에 대한 꿈을 꾸긴 하는데, 현실에도 잘 만족하는 가봐요.
혹은, 만족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2.
오늘 아침에 비행기 표를 취소했어요.
작년 여름쯤 사놓았던 유럽 여행 표였어요. 특가! 일단 표만 사놓으면 다 가게 되어있다는 주위의 응원(?)에 힘입어 용감하게 처음 외국 여행 표를 질렀지만 정말 표만 사놓았고,
대충의 가고 싶은 곳은 생각해보았지만 구체적인 이동 경로나 경비는 깜깜했고,
원래 이 쯤에 허탈하게 될 제 작업 일정을 고려해서 이맘때에 표를 사두었던 거긴 한데..
예상치못한 지출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수수료를 물고 취소했어요.
그러면서 인간 나에 대한 것을 또 하나 발견했지요.
남들처럼, 어떤 것을 욕망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단념하고,
아예 바라지 않는 것처럼 나를 설득하고 속인다는 걸요.
10대 때에 옷을 사러 가게 되면, 이런 선택을 했어요. "비싼 건 못 사니까, 싼 걸 여러 개 사자!"
약간의 자조의 의미도 있었지만 나름의 유머고 그게 생활의 지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젠가, 열살 남짓 나이차가 나는 늦둥이 동생을 데리고 영화관에 다녀오던 어느 날,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그 꼬맹이가 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ㅇㅇ아, 푸드코트에서 뭐 먹고 갈까?"
"어....아니.....아니야. 저거 뭐, 비싸기만 하고 뭐...맛도 없지 뭐..."
너무나 분명히, 거기서 파는 피자나 무슨 볶음밥이나 그런 걸 먹고 싶어 하는 게 너무도 분명한데, 엄마가 늘 하던 말대로 그 표현을 이 어린애가 그대로 쓰는 걸 보면서, 너무나 내 모습과 똑같아서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직 어린애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그러나 너무나 먹고 싶어하는 게 분명한 목소리의 울림 때문에.
학교 근처에 유명한 맛집이 있었어요. 하지만 전 졸업할 때까지 거길 가지 않았어요. '거기서 먹으면 와 진짜 맛있어서 딴 데서는 못 먹는다'는 말을 들어서, 난 그냥 별로 맛 없는 거 맛있다고 믿고 생각하면서 살래. 그 비싼 걸 자주 못 먹는 실망감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여행표를 취소하면서, 여태껏 내가 외국여행을 미뤄왔던 이유도,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는 외국을 가고 싶었던 나인데, 그 때 방에 붙여놓았던 커다란 세계지도가 얼마전 돌돌 말려서 구석에 처박히는 걸 봤어요. 요새 자주 우는 탓도 있지만 눈물이 콱 나는 걸 참았네요.
하지만 그렇게 '여우와 신포도'처럼 단념을 하면서, 맘 속에는 서운함과 속상함이 쌓이는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살면서 이런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계속 맘 속에 멍처럼, 한처럼, 먼지가 높이 쌓여가겠구나, 하는 생각도요.
얼마 전엔 아는 분이 저렴한 커피포트를 샀다면서 저에게도 "야 그걸 먹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재수없는 말이지만... 이제 카누 못 먹겠더라. 그거 중고로 싸게 많이 팔아! 너도 하나 사서 먹어 봐!" 하는데,
아냐...그냥 난 싸게 먹을 수 있는 카누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삶을 택할래. 라고 바로 대답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며 (근데 좀 아까 이 집 아메리카노가 맛없다고 인상 썼던 '나'가 또 있고요?)
으이그...으이그... 이 '나'란 사람... 참 답답하고 딱하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그랬네요.
3.
타임 리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갈까요?
전 살면서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타입이에요. 지금도, 좀 아까 커피와 시오라멘 불평을 하긴 했지만 그냥 뭐.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건 어릴 때 피아노 치다가 중간에 그만뒀던 것 하나 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다 점이 되어서 지금의 나로 이끌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에,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하지만 그럴 만한 능력(특히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마다 한없이 소심하고 의기소침하고 예민해지고 낙담해서
갑갑해지고...혹시...~했어야 했나..하는 생각을 하곤 하네요.
그런 생각에 잠기는 우울한 내가 싫고요.
여행을 포기하게 되면서,
이 돈으로는 열흘동안 6인 호스텔에서 잠만 자고,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파리에 있어야 하는데
어차피 서울에서 답답하게 이렇게 있느니, 가서 있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하다가
에이, 그냥 서울에서 좀 더 맛있는 거 먹으면서 돌아다니자, 그게 나을꺼야- 라고 선택을 했습니다.
이게 나란 사람의 선택 패턴이지요
하지만 이렇게해서는, 크게 행복하진 못할 것 같아요.
큰 위험은 없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저 단시간을 버틸 수 있는 짧은 위안일 뿐이지요.
...그래서 다시 타임리프 이야기로 돌아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무엇을 하든지 후회가 남는 게 모든 사람들의 숙명이고,
그래서 그게 '이야기'가 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설명하는 이유가 되는 건
'간절함'이죠.
그걸 잘 설득해내면 끝까지 제법 사랑을 받는 이야기가,
그게 잘 되지 않으면 용두사미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나미야잡화점의 기적>도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거기에도 그런 소중한 마음의 염원이 이 마법을 만들어냈던 것 같고요..?
어젯밤에 먹은 과자부터
수년 전에 잘못 잡았던 손
살면서 후회할 일은 왜 이리 많고
만족스럽지 못한 건 또 왜 그리 많은 걸까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일들이 가능할까요.
지금 다 마셔버린 커피처럼
그냥 다...비슷비슷한 일들이 다시 나타날 것 같긴 하지만요.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장르는 판타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의 장르는 느와르,
라고 누가 단순하게 이분화하자면 그렇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세상에 대해서든, 나 자신의 세상에 대해서든,
판타지와 느와르가 절뚝거리며 균형을 맞추지 못하네요.
글이 길어져서 이건 여기서 마칠까봐요.
*그 거장님은 이창동 감독님입니다. 적고 나니 출처를 분명히 해야할 것 같아서.
**그런데 적고 나니 명성빨(?)에 기대는 느낌이 드는군요.ㅎ 그래서 안 쓰려 했던 듯. 이게 저의 (얕은) 무의식의 흐름이었네요.ㅎ
Q.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처받을까봐 단념하면서 자기 위안 삼는(정신 승리-_-) 것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가 있던 것 같은데, 자기 방어 같은, 또렷하게 떠오르질 않네요.
조금 긴 글은 솔직히 한자한자 놓치지 않고 읽지는 않습니다 속독입니다.
그래도 댓글을 쓰려니 길어서 창을 하나 더 만들었네요.
이감독님 말에선 무의식을 깨운단 말 보다 대중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에요.
너무 많은 후회를 가지게 되면(만들어 가지면 기술이 늘 듯 점점 잘 만들어요) 타임리프가 소용이 별로,그냥 살자로.
포기하다 싫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포기하는게 더 좋은거죠 삶은 이유가 있어야 좋은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