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원제는 <에곤 쉴레: 죽음과 소녀> 던데, 욕망이 그린 그림이란 제목도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우선 연상되는 특유의 에로틱한 화풍과, 28세에 요절했음에도 2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화가의 그림에 대한 집착을 중의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거든요.
영화는 에곤 쉴레의 죽음 목전에서부터 과거가 회상되는 방식으로 시작하고, 그가 그린 여러 소녀들, 여인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통념상으로는 부도덕한 행실을 일삼지만 그 모든건 결국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귀결된다는, 그런건 어찌보면 예술가들의 전형적인 이야긴데, 관조적인 스타일과 영상미 덕분인지 몰입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왠지 영화 속 뮤즈들 중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시점으로 보게 됩니다. 전기 영화에는 그리 기대가 없는 탓에 사실 볼까 말까 했는데, 이만하면 선방(?)했다고 할까 그런 느낌적인 느낌
예술을 핑계로 멋대로 행동하는걸 무척 혐오하지만, 소녀의 누드화를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럽습니다. 미성년의 소녀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여린 선과 에곤 쉴레 특유의 스타일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하지만 소녀의 알몸에도 스타킹을 신긴 일관된 취향과 당시에도 문제가 됐었던 미성년자의 누드를 그린 혐의. 100억을 해먹고 사라진 장선우 마냥 후견인에게 뻔뻔스레 많은 후원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들을 이용하기도 하며 명작들을 남긴 에곤 쉴레의 삶을 보면서 실타래 같은 연상 작용이 일어납니다. 나치 시대에 저항하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음악가들이라던가 반대로 철저하게 부역하며 명작을 남긴 자, 반쯤만 부역하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유태인을 돕기도 했다는 사람에 대한 생각, 어떻게 사는게 맞는 것이고 그게 나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포털 평점란에 주인공의 잘생김에 대한 평이 꽤 있더군요(...)
실제 화가와도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배우 Noah Saavedra 입니다. 모델 출신으로 연기는 거의 처음이라고 하네요.
포스터보니까 아자르 닮았네요. 밑에 사진은 또 아닌거 같고...
영화를 본 입장에서 포스터 >> 영상 >>>>사진 순이 아닐까 합니다..
음 예고편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셨다면 아마 영화 전체도 그러실지도.. 저도 아래 푸른나무님과 같이 영화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는 잘 만들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봤을때 그래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요.
예술에 대한 열정은 통상적 사회관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가 궁금해 집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이라는 명목아래 다른 사람에게 부당이득을 취하는 행위에서 나온 산물을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지고 말이죠.
(본문의 화가가 그랬다는것은 아닙니다만) 예를 들자면... 실제로 인권을 침해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그림으로 그렸을때
그 그림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궁금해 진다는것이죠.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은 어디까지 면죄부를 줄 수 있는지도 궁금해지고 말이죠.
어려운 문제인데 어쨌든 분명하고도 서글픈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시대상이나 상황들은 대부분 잊혀지고 결과물만이 남는다는 것이더군요.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흔한 말처럼요. 특히 시대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담겨질 수 있는 그림, 글, 영상 등이 아닌 음악같은 추상적인 체계를 가진 장르는 더 그런 것 같고요.
많은 이론이나 평론들이 그러하듯이, 예술에 대한 윤리적 논쟁 또한 우선은 논쟁할만큼 가치있는 작품 자체가 존재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것이니, 일단은 그것을 만드는 예술가 각자가 가진 내재적인 기준들에 많은 부분을 기댈 수밖에 없을겁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를 예술로 볼 것인가'라는 생각 보다는, '나라면 어디까지를 해볼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가치있는 작품이란 우연하게도, 혹은 수도승 같은 수련 속에서도, 뜨거운 논쟁과 정치질 속에서도 탄생하곤 하는데, 나라면 어디까지를 시도할 수 있을까?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