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휴대폰)


 1.휴대폰을 바꿨어요. 쓸모도 없는 휴대폰 따윈 없애겠다는 글도 썼었지만...없애긴 커녕 새걸로 바꿔버렸죠. 휴대폰을 만들 때 사람들에게 아이핀 번호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느니 하는 이런저런 헛소리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럴 리 없잖아요! 아이핀번호 따위가 필요해서 휴대폰을 만들다니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거죠.

 

  당연히, 어떤 인간이 십수년 동안 안 하던 일을 어느날 한다면 그건 늘 인간이 이유예요. 아이핀 번호 같은 게 필요해서 십수년동안 안 하던 일을 어느날 하지는 않죠. 아이핀번호 같은 건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에 3개정도는 얻어낼 수 있어요. 누군가는 겨우 그거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코웃음 치는 사람은 자신의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어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난 한명이라니까요!



 2.어느날 그 한 명의 친구에게 한 소리 들었어요. 듀게에 쓴 글을 보고있으면 마치 자네의 인생엔 캬바쿠라밖에 없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어쩔 수 없거든요. 내 생각을 쓰는 것 말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쓸 땐 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어요. 자주 가기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니예요. 최근에는 바 말고도 다른 여러 곳에 가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는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문제는,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칠 만한 마력을 발휘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죠. 


 '내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건 최근 수년간 9명이었고 그 중 7명이 술집에서 본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적을 거리는 그것뿐인 거예요. 어제나 지난주나 지난달에 일어난 것 같은 일을 또 써봐야 의미가 없으니까요. 술집 얘기가 너무 자주 반복된다고 생각되면 그 점을 좀 이해해 주세요.



 3.나는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여기고 싶지만 언젠가 썼듯이 사람은 그래요. 똑똑하거나 의심이 많은 것과는 관계없이, 속아줄 준비가 된 사람을 속이는 건 무지 쉽거든요. 


 '자, 난 속아줄 준비 끝났어. 이제 네 몫은 약간의 수고와 약간의 연기만 해 주는 것 뿐이야. 네가 그 정도도 해주지 않으면 나는 속아줄 수가 없어.'


 의 상태인 거죠. 자...어떤 곳에 줄창 다닐 때 나는 어떤 사장에게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사장의 몸은 하나고 사장의 관심을 끌기를 원하는 고객은 많았다는 거죠. 다행히도 그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였어요.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래봤자 나는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이 아니라 '해결해 나갈 수 있는'정도의 수준이었던 거죠. 유감스럽게도.


 어느날 사장이 와서 말했어요. 이제 친해졌으니 장난 그만하고 휴대폰번호를 가르쳐 줘도 되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말해 줬어요. 내가 그동안 휴대폰이 없다고 말한 건 휴대폰이 없어서 없다고 말한 거라고요. 사장의 표정이 심각해졌어요.


 '정말, 정말로 휴대폰이 없는 거야? 비싸게 구느라 그런 게 아니라?'


 라고 사장이 물었어요. 휴대폰이 없는 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듯이요. 아니 그야...지금은 나도 휴대폰이 없는 게 일반적이 않다는 건 알지만 당시의 나는 내 명의의 휴대폰이 있어 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요. 평생 휴대폰이 없었던 사람에겐 휴대폰이 없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지 자각할 수 없는 거니까요. 사장은 휴대폰이 없는 건 정상이 아닌 거라고 하면서 휴대폰을 하나 만들라고 했어요.



 4.휴.



 5.그야 난 만들지 않았어요. 귀찮잖아요. 사장은 내가 올 때마다 휴대폰을 만들었냐고 물어봤는데 그 표정은 이상하게도 불안함이었어요. 호기심도 뭐도 아니고 그냥 불안함이요. 그래서 '왜 내가 휴대폰을 안 만드는 걸 이 사람이 불안해하는 거지?'라고 늘 궁금했어요. 호기심이나 조소나 어이없음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갈 텐데 사장의 불안한 표정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사장이 내게 와서 말했어요. 내일 낮에 나오라고요. 내일 만나서 2g폰을 자기가 하나 사 주겠다고 했어요. 


 내가 느낀 감정은 두가지였어요. 미안함과 황송함이요. '신경쓰게 해서 미안한 기분은 알겠는데 황송한 건 또 뭐지? 손님이잖아.'라고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뭐...세상엔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흠...제가 말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점을 빌려 보죠. 그냥 그 사장에 대한 듀게 사람들의 평을 써 볼께요. 그거라도 써야 내가 사람 한명을 위해 폰을 만든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는 걸 묘사할 수 있으니까요. 거긴 건전한 곳이라서 다행히 듀게사람들도 몇 번 데려갈 수 있었거든요. 두 개만 써 볼께요. 하나는 '디즈니 공주를 보는 것 같다.'라는 평이었어요. 하나는 '몰락한 왕국의 황녀가 어쩔 수 없이 저러고 있는 것 같다.'라는 평이었어요.


 그리고 이 두 개의 평은, 그 사장의 미모가 한참 바닥을 쳤을 때 보고 내린 평이었어요. 내가 휴대폰을 만들게 했을 때의 미모는 최전성기의 미모였고요.



 6.어쨌든 사장이 내게 휴대폰을 사게 놔두는 건 미안한 일이어서 직접 휴대폰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만들고 나서야 사장의 불안한 표정이 뭐였는지 알게 됐어요. 


 왜냐면 휴대폰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는 고객관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였어요. 휴대폰이 없는 내가 알아서 잘 오다가도 어느날 휙 안 와 버리면 나를 찾을 수 없으니까 불안해했던 거였죠. 그러니까...내 버전의 나 말고 손님 버전의 나를 말이죠. 그래서 씁쓸했어요. 그때 만든 휴대폰은 매트릭스에 나오는 그 알약 같은 거였어요 내겐.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는 그 알약 말이죠. 


 여기서 문제는...상대가 그 사장만 아니라면 나는 알약 따위 없이도 상황파악을 잘 했을 거란 말이죠. 하지만 주제파악이나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봤자 남은 건 지겨운 현실 뿐이잖아요. 그래서 상황파악을 일부러 제대로 하지 않았던 거예요.


 때문에 그 휴대폰을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곤 했어요. 내게 휴대폰이 필요가 없다는 건 헛소리가 아니예요. 휴대폰을 가져봐야 나를 찾는 녀석들에게나 쓸모가 있는 거거든요. 내가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몇 시에 어디에 나타나는지 나는 이미 줄줄 꿰고 있었으니까 휴대폰은 필요 없었어요.



 7.'그러면 이번엔? 새 휴대폰은 왜 만든 거지?'라고 궁금해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내가 그냥 휴대폰을 바꿀 리가 없죠.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휴대폰가게에 들어가서 새 휴대폰을 산다...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이번에도 누군가 주는 알약을 먹어버렸기 때문이예요. 상황파악을 못 하게 만드는...아니면 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그런 누군가죠.


 휴. 내가 무슨 색 알약을 먹은 건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따라 알아낼 수 있겠죠. 지난번 먹은 알약과 같은 색깔은 아니기를 바라고 있어요.



 --------------------



 '거기가 건전한 곳이라면 그럼 건전하지 않은 곳도 있나?'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네요. 물론 내가 가는 다른 곳들도 건전해요. 난 건전한 곳이 좋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건전하지 않은 곳에 가는 건 인간의 인격이 아닌 인간의 기능을 구하러 가는 거잖아요. 인간의 기능을 구하러 간다면 애초에 쓸 거리가 없으니 듀게에 쓰여지지 않겠죠. 


 ...그런데 왜 2g폰이었던 걸까요? 그때는 그게 무슨말인지 몰라서 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짜증이 나네요. 그까짓 스마트폰 얼마나 한다고.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4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4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8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5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