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물린다" - 루쉰,1925.
더민당과 국민당이 박근혜라는 똥물에 빠진 새누리라는 개를 두고 두 가지 태도로 갈리고 있습니다.
더민당은 때리고 있고 국민당은 그 개의 도움이 있어야만 탄핵할 수 있다고 더민당을 나무랍니다.
박지원은 새누리의 비박계의 도움이 없이는 탄핵이 불가능한데 새누리당을 부역자라고 몰아부치는 더민당 추미애 대표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 비박계에 속한다고 지칭되는 새누리 의원들 모두 얼마전 국회 교문위에서 야당이 제출한 국정교과서 금지법안의 통과를
반대했습니다. 단 한명도 빠짐 없이 말이죠.
그들의 '도움'을 구해야만 가능한 탄핵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게 났습니다.
비박이던 친박이던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좀 먹는 것들입니다. 보수가 아니라 조폭 양아치들과 그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포장지로 쓰이고 있는 몇몇 색깔이 아리송한 애들의 모임이죠.
박지원은 교활한 사람입니다. 새누리당 비박계 스스로 박근혜의 탄핵이나 퇴진만이 자신들이 면피되고 살 길이라서 저러는 것이라는것을
모를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추미애를 공격합니다. 참으로 간교하고 지저분한 사람입니다.
자신들이 앞으로 손을 잡고 정권을 잡아야할 대상을 세탁하기 위해서 야권공조는 내팽겨치고 비박계에게 꼬리를 치며 더민당을 고립시키려고
저러는 것이죠.
그런데 혹자는 안철수는 내각제개헌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박지원과 다른 입장이라고 구분을 합니다. 과연?
내각제개헌은 훼이크입니다. 되면 좋겠지만 안되도 그걸 내세워 더민당을 고립시킬 수 있으면 그만이거든요.
개헌은 제3지대로 이목을 모으기 위한 미끼일 뿐이지 그들의 절대절명의 지상과제가 아니라는거죠.
안철수는 줄기차게 주장합니다. 양극단을 배제한 합리적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고.
그 양극단은 바로 친박과 친문입니다. 조선일보가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이미 수개월전부터 주장하고 있는 프레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 안철수와 박지원은 정확히 이해가 일치하고 있는것입니다.
지금 박지원과 안철수의 모든 행보는 신 보수대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최대한 자신들의 지역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끌어 안고 가려고
지금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것이라 보면 됩니다.
박지원은 호남지역 지지자들에게 더민당 나쁜놈들 새누리비박은 좋은녀석들이라는 메세지를
끊임 없이 주입 시키고 있고 안철수는 국민당 집토끼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보수지지층에서 떨어져 나오는 낙옆을 긁어 모으고 있는거죠.
전 안철수와 박지원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세력과 연합을 하고 어떤 세력을 배격하는거 자체는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박지원같은 인간이 김무성과 한 당을 만들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건 원래부터 그랬어야할 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역시 박근혜와 친박이 빠진 새누리라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죠.
전 이 사람이 야권후보라고 불리고 또 단일화의 한 축이었다는게 2012년 대선의 비극이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다시 사람을 물게 뻔한 새누리와 손을 잡으려 한다는겁니다.
박지원과 안철수는 개들에게 물리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나 봅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라는 개소리를 하는 사람의 멍청함이란.....
하지만 개에게 물려본 사람들은 그리고 물릴 수 있는 사람들은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추미애 더민당 대표는 그 개(새누리)를 때리고 있는겁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 시키는거죠.
저 똥물에 빠져서 안나오고 있던 나오고 있던 원래 한무리의 개떼였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어 나오려는 개도 결국 개라는것을
요즘 보면 더민당이 더 이상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환상의 팀웍으로 좋은 경기를 하고 있는거 같아요.
추미애는 새누리라는 개를 때리고 개를 살려내려는 국민당을 견제하고
문재인은 박근혜퇴진국민운동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의 대선 사전선거운동을 벌이며 박근혜를 극복한 그 이후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군요.
원내대표 우상호는 위 두 큰 틀에서 야3당과의 공조와 협상을 조율해갑니다. 정세균이라는 보험을 들어두고 느긋하게 말이죠.
수십년만에 찾아온 개를 때려 잡을 기회인데 국민의 당의 삽질로 그 기회를 날려 먹지 않을까가 요즘 제일 걱정입니다.
국민의 당이 신생정당이라 초조함과 조급함을 갖는건 이해하지만.... 너무 멍청한거 같아요.
그 개에게 가장 먼저 물리게 되는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르는게 그렇고
그 개의 도움 없이도 이미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정치판의 지각변동의 흐름은 국민의 당이 새누리당 지지층의 상당수를 흡수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인데.... 차려진 밥상을 걷어 차네요. (당지지율이 새누리당을 거의 따라 잡고 있죠)
마치 너무나도 좋은 목에 가게를 인수했는데 지들 자금이 좀 모자르다고 대기업 프렌차이즈에 내주고 자긴 매니저 하겠다는 발상 같아요.
국민의 당으로서도 절호의 찬스인데 왜 저러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멍청한건지 원래 꼼수가 있었던건지
* 요즘 노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동물학대?를 연상하는 분들이 있을거 같아 부연할게요.
여기에서 물에 빠진 '개'는 온갖 사회적 구습, 병폐 등 역사적 진보와 혁신에서 극복해야할 대상을 말하는 중국문화적 전통에 이어져온 상징적 표현입니다.
아무래도 그릇들이 안되는 듯 합니다.
야당의 움직임을 보다보니 조금씩 불길해지네요.
정권의 향배는 국민들이 알아서 할거고 제목에 대한 말을 해보자면 현실과 이상이 만나 서로 붙잡고 추락하는.
DJ의 비서실장 이라면서 DJ가 거부했던 3당합당 세력과 야합하려고 하는 것 보면은 "어라? 머셔? 얼래? 저 잡것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더니, 누군가의 희생을 부르는걸까요? 애꿎은 목숨이 산화되어야만 그들 집단이 자리를 내어 놓게 될까요?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지원.. 사쿠라 맞아요. 이제는 그만 뒤로 물러나 손자들 재롱이나 보고 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더니------ 230년전에 처음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지구 반대편에서 말이죠) 이 말은 '민주주의에 반역하는 압제자의 피'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확실히 피를 먹고 자라는 건 맞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피를 잘 먹여야지 엉뚱하게 민주주의자들의 피를 먹여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그거 불량식품이에요.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병든것 같습니다. 계속 엉뚱한 사람들 피를 먹였더니...이제라도 좀 제대로 된 피를 먹여봅시다.
레 미제라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가사에는 the blood of martyrs will water the meadows of France 라고 되어 있네요.
라 마르세예즈 가사에는 압제자들의 피와 민중의 피가 둘 다 등장하고요...
아무튼 압제자들의 피라는 요점은 잘 알겠습니다!
대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의 구호로 선택한 유명한 말이 있죠. <자유, 평등, 연대(박애로 의역됐죠) 아니면 죽음>…이 말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건 민주주의 투사가 이 한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얘기가…절대 아닙니다!
이건 바로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말이거든요 >.< (괜히 본인 입으로 공포정치 얘길 한게 아니…)
'fraternite'는 우애, 동포애, 형제애로 번역되는 거죠. 연대, 결속을 뜻하는 프랑스어는 'solidarite'가 따로 있고요.
https://en.wikipedia.org/wiki/Libert%C3%A9,_%C3%A9galit%C3%A9,_fraternit%C3%A9
원래는 말씀하신 '형제애'나 '우애'가 맞는 말인데, 의역해서 '연대'라고 하는게 가장 원뜻에 부합하다고 합니다.(전에는 의역해서 '박애'라고 했죠.)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이 실은 대립되는 개념이라 이를 '형제애'혹은 '우애'로 보완해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니까요. 그러니 그런 뜻으로 얘기했다면 지금은 '연대'로 의역하는게 차라리 뜻이 더 통하니까요. 현재 일본에서는 '연대'로 의역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주변 분들께 말씀드릴 때도 원래 의역어인 '박애'보다는 '연대'가 훨씬 더 와닿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링크한 위키 설명에서도 나왔지만 그 fratenite 모토가 어떤 의미에서 탄생했고 또 그 의미가 이후에 어떻게 변천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존재합니다.
" Credit for the motto has been given also to Antoine-François Momoro (1756–94), a Parisian printer and Hébertist organizer,[5][6][7] though in different context of foreign invasion and federalist revolt in 1793, it was modified to "Unity, indivisibility of the Republic; liberty, equality, brotherhood or death" (French: Unité, Indivisibilité de la République;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ou la mort) and suggested by a resolution of the Paris Commune (member of which Momoro was elected by his section du Théâtre-Français) on 29 June 1793 to be inscribed on Parisian house-fronts and imitated by the inhabitants of other cities. In 1839, the philosopher Pierre Leroux claimed it had been an anonymous and popular creation.[2][page needed] The historian Mona Ozouf underlines that, although Liberté and Égalité were associated as a motto during the 18th century, Fraternité wasn't always included in it, and other terms, such as Amitié (Friendship), Charité (Charity) or Union were often added in its place.[2]
The emphasis on Fraternité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led Olympe de Gouges, a female journalist, to write 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the Female Citizen[8][page needed] as a response. "
. . . The third term, fraternité, was the most problematic to insert in the triad, as it belonged to another sphere, that of moral obligations rather than rights, links rather than statutes, harmony rather than contract, and community rather than individuality.[2] Various interpretations of fraternité existed. The first one, according to Mona Ozouf, was one of "fraternité de rébellion" (Fraternity of Rebellion),[2] that is the union of the deputies in the Jeu de Paume Oath of June 1789, refusing the dissolution ordered by the King Louis XVI: "We swear never to separate ourselves from the National Assembly, and to reassemble wherever circumstances require, until the constitution of the realm is drawn up and fixed upon solid foundations." Fraternity was thus issued from Liberty and oriented by a common cause.[2]
Another form of fraternité was that of the patriotic Church, which identified social link with religious link and based fraternity on Christian brotherhood.[2] In this second sense, fraternité preceded both liberté and Égalité, instead of following them as in the first sense.[2][page needed] Thus, two senses of Fraternity: "one, that followed liberty and equality, was the object of a free pact; the other preceded liberty and equality as the mark on its work of the divine craftsman."[2]
Another hesitation concerning the compatibility of the three terms arose from the opposition between liberty and equality as individualistic values, and fraternity as the realization of a happy community, devoided of any conflicts and opposed to any form of egotism.[2] This fusional interpretation of Fraternity opposed it to the project of individual autonomy and manifested the precedence of Fraternity on individual will.[2]
In this sense, it was sometimes associated with death, as in Fraternité, ou la Mort! (Fraternity or Death!), excluding liberty and even equality, by establishing a strong dichotomy between those who were brothers and those who were not (in the sense of "you are with me or against me", brother or foe).[2][page needed]Louis de Saint-Just thus stigmatized Anarchasis Cloots' cosmopolitanism, declaring "Cloots liked the universe, except France."[2]
With Thermidor and the execution of Robespierre, fraternité disappeared from the slogan, reduced to the two terms of liberty and equality, re-defined again as simple judicial equality and not as the equality upheld by the sentiment of fraternity.[2] The First Consul (Napoleon Bonaparte) then established the motto liberté, ordre public (liberty, public order)."
번역이란 결국 해석의 작업이며,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요. 저는 여전히 '우애'나 '형제애'가 더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하지만(적어도 1790년 전후의 언어 사용에서 볼 때는) '연대'도 그런 해석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말씀하신 대로 1790년대라는 230년전의 시대 배경 상 '형제애'가 맞는 단어인데, 언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뜻이 변하는 것이라서요. 주변 분들께 '박애'라고 말씀드리면 고개를 갸웃했다가(뭔 소리야?) '형제애'라고 말하면 피식 웃고…(사실 전 이게 젤 난감…;;) 그래서 일본에서 의역하는 대로 '연대'라고 말씀드리면 그 때는 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구요.
여튼 설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