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활력)


 1.언제나 지겹다거나 새로운 곳에 가고 싶다거나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게 돼요. 내가 진짜로 참아낼 수 있는 거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하나인 것이고 내가 진짜로 잘했던 것 하나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는 거요. 하기 싫은 걸 안 할 궁리를 하고 계획을 짜고 실천에 옮길 때는 내가 정말 열심히 산다는 기분도 들고 보람도 느껴봤거든요. 내가 유능하다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고요. 심지어는 내가 반짝반짝거리는 기분조차 느껴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지경까지 와 보니 내가 열심히 해왔던 모든 건 뭘 안하려고 노력하는 거였지 뭘 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에 거의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것 같아요. 내 인생은 요전에 쓴 할로윈 파티와 비슷한 것 같아요. 파티에서 뭘 할지 정해두지 않고 파티를 여는 거 말이죠. 



 2.뭐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걸 찾아라...거나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워보라고 하겠지만 진짜 없어요. 원래는 있었는데 살수록 너무 지쳐버려서 하는 것보단 안하는 게 나은 일들이 너무 늘어나버렸어요. 이 '귀찮음'이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이 글이 속편한 소리라고 오해받을까봐 말하지만 이 귀찮음은 너무 열심히 살아서 생긴 거예요. 아니 진짜로 열심히 살았다니까요. 나중에 신이 내게 열심히 살았냐고 물어보면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해 줄 거예요. 


 '너도 알다시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로 열심히 살았어. 넌 그걸 구경하는 게 재밌었어?'라고요. 

 열심히 살았다고 떠들고 다니지 않는 건 애초에 열심히 산 건 자랑거리도 뭐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의 몸과 정신은 소모품이고, 살아보겠다고 너무 열심히 발버둥치면 그만큼 고장이 빨리 나는 거예요. 여기저기 고장나다가 어느날 어느 순간에 딱 멈춰버리는 게 소모품의 운명이고요. 

 
 3.누군가는 인생이 빈 캔버스라고 말하겠죠. 아니면 배에 비유하거나요. 네가 그려넣고 싶은 걸 그려넣거나 네 인생의 키를 잡고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게 인생이라고요. 항해하다 보면 때때로 궂은 날씨나 풍랑을 만나겠지만 그것도 인생의 묘미라는 듯이 얘기하죠. 그런데 아니거든요. 이런 말을 하는 녀석들은 운이 좋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놈들일 거예요. 

 인생을 배에 비유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태어나는 순간,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어요. 정신을 차려 보면 내가 타고 있는 배에는 물이 마구 들어오고 있는 거죠. 그럼 할일은 하나인거예요. 물을 퍼내는 거죠. 이 배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거나 하는 계획 따윈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가라앉아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물을 퍼내고 퍼내고 퍼내는 걸 계속하는거죠.

 30년정도 물을 퍼내는 걸 해서 간신히 배가 가라앉지는 않게 만들어 두면? 이제 배를 몰고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정말 들 것 같나요? 아니거든요. 그냥 가만히 누워 있고 싶은 거예요. 뭘 하면서 쉬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아요. 그냥 하루종일 가만히 있다가 잠드는 거죠.

 
 4.휴.


 5.하지만 당신이 30년동안 배에서 물을 퍼내는 인생을 살았다면 잠조차 잘 잘 수가 없어요. 다섯 번을 자면 최소한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배가 또 침수되는 꿈을 꾸거든요. 최소한 한 번인 거예요. 그렇게 또 꿈에서 미친듯이 물을 퍼내는 거예요. 물을 퍼내는 게 언제 끝나기나 할 지 막막했던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면서요.

 그러다가 일어나 보면 '아...다행이다. 배에 물이 들어오던 시절은 끝났구나. 정말 다행이다.'하고 안도하게 돼요. 그러다가 갑자기 미칠 듯한 분노와 짜증이 몰려오는 거예요. 고작 배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걸요. 어쩔 수 없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런 기분이 들 땐 혼자서 술이나 마시러 가는 거죠. 


 6.사람들은 정말로 돈보다 인간관계나 신뢰, 사랑...뭐 이런것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아니면 본인들도 믿지 않지만 말만 그렇게 하는 걸까요. 흠. 잘 모르겠네요.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이거 하나예요. 30년동안 물을 퍼내는 걸 도와준 녀석따윈 없었다는 거죠.

 누군가들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해요. '돈이 없으면 어쩔거니?' 라던가 '돈만 보고 만나는 여자들은 돈이 없으면 안 만나 줄텐데 어쩔거니?'라고요. 인생에 대해 뭘 안다는 듯한 태도와 신경써주기라도 한다는 듯한 태도를 두르고 물어보죠. 한데 왜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질문의 범위부터 틀렸잖아요. 당연히 돈이 없으면 망하는 거예요. 왜 이성관계 문제에만 포커스를 줘서 물어보는거죠?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인생의 20%나 30%정도만 망하는 건줄 아나봐요. 그게 아니거든요. 돈이 없으면 그냥 인생 전체, 100%가 망해버리는 거예요. 돈이 있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기분좋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24시간 내내 엿같거든요. 배에서 물을 퍼내던 시절엔 먹는 것과 자는 것도 즐거움이 아니었으니까요. 물을 더 잘 퍼내기 위해 먹고, 물을 더 잘 퍼내기 위해 자는 거였거든요.



 7.어제는 집회에 갔다왔는데...얼마간 거기에 서 있었던 것 만으로도 하루치의 에너지를 다 써 버려서 오다가 잠들어 버렸어요.

 옛날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가서 빈둥거리는 것도 아닌, 하루를 밀도 높은 활동으로 채우고 밤 12시에 들어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요즘은 8시간 넘게 자고 나가도 30분정도 걷고 식사를 하는 것 정도만으로 그냥 픽 쓰러져 버려요. 심지어는 8시간 자고 일어나 나가서 잠깐 누굴 만나고 식사를 한 것뿐인데도 귀가할 에너지조차 없게 되곤 해요. 중간에 사우나에 들러서 한숨 자야 귀가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예요.  


 -----------------


  징징거리는 소리를 카톡에 하고 싶었지만 이미 이번 주 징징거림을 다 써 버린 상대와 아직 자고 있는 상대밖에 없어서...어쩔 수 없이 듀게에 썼어요. 쓰면서도 '왠지 똑같은 글을 몇 번쯤 쓴 거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는 농담조로 '모든 글이 비슷하다'라고 말했었는데 이젠 진짜 심각할 정도로 모든 글이 똑같아지고 있어요. 그야 다른 일기가 쓰여지려면 다른 하루를 겪어야 하는 거니...어쩔 수 없는거겠죠.

 다음 번에는 감동적인 글을 한번 써볼께요. 억지로라도요. 

 그럼 다른 하루를 겪어보기 위한 노력을 해보러 나가야겠어요. 아마 잘 안되겠지만...시도라도 해봐야죠.


 


 




    • 내 주특기와 같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거와 도망칠 궁리하는거.


      돈도 사람도 없어서 그렇치 있을 땐 필요없죠 매사가 다 그렇듯 귀한걸 모르죠.


      산 경험으로는 사람이 으뜸이(겠)죠.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3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8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5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0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8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9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6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2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4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