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 감상 (스포있음)
영화 <터널>을 보고 왔습니다. 재난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꽤 현실적으로 담아내면서도 여름 성수기 개봉작으로서의 상업영화적인 내러티브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영화더라고요. 여름 성수기이긴 하지만 개봉 6일만에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슬슬 학생들 방학도, 직장인들 휴가철도 끝나가고는 있지만 추석 전까지 별다른 한국영화 화제작이 없다는 점에서 천만까지는 모르겠지만 8~900만은 충분히 기대해볼 만할 것 같고요.
무엇보다 짜임새가 좋은 영화입니다. 필요한 전개가 필요한 타이밍에 펼쳐지고 그런 상황들이 우리 모두가 아는 한국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터널에 갇힌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에 대해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열심히 고민한 흔적도 보이고요. 그만큼 전형적이라는 약점도 있지만 작은 상황들 사이에서 완급 조절을 꽤 잘 하는 편이라 전개가 예측 가능해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서 웃음이 꽤 자주 터지는데요. 그 유머의 대부분은 터널에 갇힌 주인공 이정수와 그와 교신하는 구조대 대장 김대경이 아니 그냥 하정우와 오달수가 맡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하정우라는 배우는 그냥 어느 영화에서도 자연인 하정우로 보여요. 암살에서도, 아가씨에서도, 터널에서도 그냥 내가 아는 하정우구나... 그런 느낌? 힐링캠프라거나 몇몇 매체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단히 정력적이고 남성적이면서 종종 유머러스한 그런 사람이요. 개인적으로는 (배우 본인이 얼마나 자각하고 있건 간에) 연기자로서 이미 매너리즘에 빠진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고 아쉽게도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도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아요.
아무튼 극 중에서 하정우가 보여주는 초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낙관과 유머가 ‘비현실’의 영역으로 튀어 오르지 않게 눌러주는 건 이정수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배두나입니다. 이 영화는 하정우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정우의 비중이 크지만 (이건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하정우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두나의 것이더군요. 정신없이 붕괴 현장에 달려와 긴 하루를 보낸 아내가 저녁밥을 앞에 두고 차마 공기밥 뚜껑을 열지 못하는 씬. 그리고 죽었을지 살았을지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남편에게 구조작업 이제 중단될 거라고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는다고 그 서류에 내가 서명을 했다고 라디오를 통해 전하고는 긴 복도를 걸어 나오는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가 쭉 따라가며 보여주는 씬이요. 우리가 알아왔던 배두나라는 배우가 이렇게 ‘평범한 아내’ 역할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낯섬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아요.
배두나라는 배우가 해외에서 여러 작품을 해나가면서 아시아 출신 배우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배우가 한국에서도 한 편의 영화를 책임지는 위치에서 더 넓고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더군요. 그렇지만 남자들 얘기로 넘치는 한국영화판에서 대상화된 여성미를 그다지 가지고 있지 않은 이 배우가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네요.
여기까지 사실상 대체로 호평이고 영화를 막 보고 났을 때는 이 정도면 잘 만들었네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리더군요. 주인공이 터널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만나게 되는 미라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저는 아무래도 불편합니다. 미라씨라는 ‘사람’을 이정수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이타심을 선보이기 위한 일종의 미션처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터널 안에서 버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과 ‘휴대폰 배터리’를 타인과 나눌 것인가 혹은 감추고 속일 것인가 하는 시험을 위해서요.
이정수에게 미라씨는 재난 상황을 며칠째 혼자 외롭게 버텨오다가 만나게 된 다른 ‘사람’인데 그녀를 먼저 보내고 또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영화적 장치로서 그녀의 반려견이 남아서 자리를 채워주기는 합니다만)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겪을 법한 감정의 곡선이 이정수에게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녀를 좀 더 전력으로 구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며 얼마 안 남은 물을 잃어가면서도 돌을 조금 치워주고 자신의 자켓을 덮어주기는 하죠. 하지만 그런 감정은 벌어진 상황에 대한 리액션 같은 거지 다시 혼자가 된 상황에 대한 절망이나 외로움 같은 인물의 내적인 갈등은 아니예요. (그런데 여담이지만 나중에 그 자켓 이정수가 다시 입고 있지 않았나요?) 미라씨가 죽은 후, 이정수 외에 다른 사람들도 터널 안에 사람이 하나 더 있었고 그런데 그녀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상황에 대해 까맣게 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거 좀 싸이코패틱하지 않나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가끔 이 땅에 부조리와 비극이 너무 흔하고 가혹해서 그런 비극들 중 최소한 일부는 눈 감지 않으면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게 우리 모두를 조금씩은 싸이코패스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현실적인 비극을 오락영화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괴물 같은 괴리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절망의 깊이(또는 현실의 깊이)가 절대적으로 얕다는 점이 이는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이끌 수는 있겠지만 어떤 이들이 마음 깊이 사랑하는 영화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미덕을 갖출 필요야 없긴 하지만요.
저도 배두나씨 연기 때문에 영화의 본래 가치 이상으로 좋게 본 것 같습니다. 배두나씨가 나온 장면 하나하나가 다 좋았어요.
그런데 그 죽은 여성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질 못했네요. 그 여자분의 죽음 자체가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더라면 더 좋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