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친구가 술을 마시고 말했어요. 자신의 뇌세포를 지켜내기 위해 오랜 젊은 시절 동안 술을 참아왔는데 오늘은 술을 마시고 말았다고요. 나는 친구에게 술과 뇌세포 숫자의 상관관계 따위는 없다고 말했고 친구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래서 진실을 말해 줬죠.
'어차피 우리는 너무 똑똑해. 우린 좀 멍청해질 필요가 있다네.'
라고요.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니 필요한 만큼만 똑똑하면 되는 것 같다는 의견도 함께요. 20대 때부터 똑똑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시도하지도 않은 일의 결과에 대한 냉소를 짓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고 고개를 저었어요. 하지만 친구는 똑똑하면 똑똑할수록 좋은 게 아니겠냐고 했어요. 똑똑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고요.
2.나는 약간 연극적인 비웃는 웃음소리를 내고 스티븐 킹을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그가 스탠드나 IT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게 뭐였겠냐고 말이죠. 친구가 그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정답을 알려 줬어요. 헤로인이죠. 그리고 친구에게 어차피 이제 우리는 막장이니 헤로인이라도 구해서 소설을 써야 우주에 우리가 존재했던 흔적을 남길 수 있지 않겠으냐고 했어요. 친구도 적극 찬성했어요.
그러다가 나는 문득 어떤 불안함에 사로잡혔어요. 헤로인을 하다가 죽거나 감옥에 끌려가는 것에 관한 불안함이 아니예요. 이번 올림픽에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금지를 당했다는 뉴스가 떠올랐거든요. 나는 불안함을 입 밖에 내어 친구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헤로인을 하자마자 문학계에도 도핑테스트가 도입되면 어떡하지? 솔직이, 우리가 그런 종류의 운은 좀 없잖나."
우리는 서로를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보다가 미친듯이 웃었어요. 한산한 한밤의 파미에스테이션에서 큰 소리로 웃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기분이었어요.
3.친구네 회사가 한없이 탈세에 가까운 절세를 잘 해오다가 그만 진짜 탈세를 해버렸다나 봐요. 사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니예요. 진짜 문제는 탈세를 한 게 들켜버렸다는 거죠. 친구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오고 있다며 몸을 떨었어요.
예전에는 인간들이 서류를 보고 판단했는데 이제는 기계가 먼저 서류들을 보고 그 다음에 인간들이 돌아가면서 교차 검증하며 돌려본다나 봐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봐주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라 신기해서 계속 경청했어요.
4.흠.
5.오랜만에 흠을 쓴 건 나의 비웃는 소리가 대체 얼마나 기분나쁘게 들리는 지 잠깐 궁금해져서예요. 뭔가가 궁금해질 땐 휴보다 흠이잖아요. 아니 사실, 이 비웃는 소리는 상대를 빡치게 만들려고 꽤 다듬어온 거긴 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빡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때도 써버리곤 하거든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그만 버릇이 되어버려서 말예요.
한 2년정도 알고 지낸 사장이 있는데 최근에 별 생각없이 그 웃음소리를 냈어요. 그 웃음소리를 내자 2초 전까지도 방글방글 웃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소리질렀어요.
'야! 내가 지금 너한테 최선을 다하는 거 안 보이냐! 내가! 너한테! 최선 다하고 있잖아! 너 진짜 어디가 어떻게 됐냐! 왜 사람을 무시해!'
서서히 분노게이지가 차오르는 게 아니라 그 웃음소리 한방으로 사장의 감정이 엑셀을 꽉 밟은 람보르기니처럼 최고속도의 분노에 도달해 버린거예요. 술에 전혀 취하지 않은 사람을요. 그곳에 막 들어오던 중인 다른 직원은 테이프 되감기를 시전한 것 같은 모습으로 들어오던 동작 그대로 백스텝으로 나갔어요.
솔직이 조금 쫄았어요. 이건 내가 겁쟁이어서가 아니라 2년 동안 웃는 얼굴만 보여주던 사람이 인상을 쓰면서 고함을 지르면 누구나 쫄걸요. 은성씨가 아니라 야라는 말도 처음 들었어요. 휴. 그래서 악의는 없었다고 설명했어요. 미안하다고도 할까 하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닌 거 같아서 그 말은 안 했어요. 사장은 다시 앉아서 관자놀이를 잠깐 어루만지더니 지난 2년동안 그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엄청나게 짜증이 났다고 했어요.
6.글을 마칠까 하다가 한가지가 걱정되어서 써요.
이렇게 글을 쓰면 마치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짜증이 날까 직접 듣고 싶어서 찾아오고 싶어질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시간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말이죠.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요. 그렇게 짜증나지 않거든요. 그냥 요즘 사람들이 많이 예민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걸 거예요.
그런데 가끔...아주 가끔 우연히 드라이버샷이 제대로 임팩트되거나 테니스라켓의 스위트스팟을 제대로 때리거나 물수제비뜨기가 수면과 완전한 앙상블을 이루어서 열번 정도 튀어오르거나 3점슛이 림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들어가거나 바이올린의 현과 활의 각도와 잘 먹여진 송진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정말 소리와 공기와 어떤 우연이 합쳐져서 미치도록 짜증나게 들릴 때가 있긴 있어요. 심지어는 시전자인 제 귀에조차요.
7.여기까지 왔으니 7을 써야죠. 인간들 따윈 완전 짜증나요.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면 그들이 다 사라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듀나게시판에 글을 써도 뒤로 밀리지 않을 텐데 말이죠. 뭐 어차피 인간들이 있어봤자 조회수도 안 나오고 덧글도 안 달리니까 조회수와 덧글을 못 챙겨서 슬플 일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