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없는 날들
저는 예전부터 한밤중에 집을 나와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정확히 언젠지 모르겠는데 햄버거집들이 24시간 영업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였겠죠. 당연히.
잠도 오지 않고 심심함을 달랠 길이 없어,
아니 심심함보다는 조금 더 깊고 어두운 분위기의 어떤 감정. 그걸 뭐라고 하지.
말하자면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고
혼자 곰곰이 우주에 대해 생각할 때 느껴지는 고독감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일시적인 거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거나,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하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감정.
사람이 항상 우주에 대해 생각하며 살지는 않잖아요?
아무튼 그런 심심한 밤에는,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거리다가
미친 척 슬리퍼를 끌고 거리로 나서곤 했어요.
새벽 두 시나, 세 시 무렵.
사람은 없고,
지나가는 택시만 내 곁에서 잠시 눈치를 보는 시간.
문을 닫고도 불을 환하게 켜둔 핸드폰 매장을 지나
텅 빈 벤치만 남은 버스정류장,
어두운 상가건물,
언젠가 일본인 여자를 만났던 김밥집을 차례차례 다 지나면
눈부시게 불을 밝힌 햄버거집이 나오는 거예요.
신기한 게,
깊은 새벽에도 햄버거집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어요.
정말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저 혼자 햄버거만 먹고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없었을 거예요.
메뉴를 좀 보고, 햄버거 세트를 시키고,
배가 별로 안 고플 때면 그저 소프트콘 하나만을 시키고,
그런 것들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창가 자리에서.
말없이 묵묵히
밤거리를 응시하는 시간.
저는 그런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 시간에 대해서는 뭐라고 짧게 몇 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겠어요.
제게 그건 정말 풍요로운,
뱃전에 늘어선 어부들이 다 함께 그물을 당길 때
그물코가 터질 듯이 가득 끌려오는 물고기들처럼,
정말 많은 것을 얻는 시간이거든요.
아무튼 밤거리에는 그런 게 있습니다.
못 믿겠으면 언젠가 일부러 우주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고 햄버거집으로 가세요.
그리고 밤거리의 어둠을 깊이 응시하고 있으면,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새벽의 햄버거집에 가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그건 정말 제가 사랑하는 시간이었는데,
한참 동안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지냈어요.
민음사 북캠프에 갔을 때 선물로 받은 알베르 까뮈 노트 한 권을 들고, 한 자루 펜을 들고,
그냥 아무 얘기나 끼적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런 시간을 좀 가져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좀 가져야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을 텐데,
요즘은 통 그러질 못했어요.
이렇게,
여유가 없는 날들만 보내고 있어요.
오늘은 햄버거집에 가는 대신 이런 글이라도 한 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네요.
물론 시간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아니랍니다.
항상 이 두근두근거리는,
술래를 피해 골목길에 숨은 아이처럼
이 쫓기는 기분으로부터의 여유를 말하는 거예요.
이제 장마도 끝나고,
유령처럼 사람들이 한강으로 가는 무더운 밤들이 찾아오면
저는 햄버거집으로 갈 겁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하나 있거든요.
에어컨이 만들어낸 서늘한 대기를 호흡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낙서나 실컷 쓰다가 돌아올 겁니다.
조용한 밤거리 좋지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방학이란게 없어진후부터는 조용한 새벽을 더 이상 즐길 수 없더군요. 그넘의 사는게 뭔지... 조용한 새벽을 조금이라도 즐길만하면 다음날 찾아올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밀려와 쫒기듯이 잠자리에 들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