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그리고 미러링)의 수명.
메갈 티셔츠 때문에 한참 시끄럽군요.
남초에선 메갈=일베 프레임으로 정리가 된 상황이고
듀게는 뭐... 듀게스럽네요.
좀 딴 소리같기도 하지만 이번 상황에서 저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끈건 메갈리아4의 입장표명글 중 아래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번 밝혔듯이, 메갈리아 사이트와 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메갈리아4는 미러링을 하지 않고 페미니즘 이슈를 소개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어 왔습니다. (단, 미러링의 당위성은 여전히 인정하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러링의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덧붙여놓긴 했지만) 메갈리아4가 메갈리아 - 미러링과는 선을 긋고 있는걸 보면서,
그동안 가끔 생각해왔던 메갈리아(그리고 미러링)의 '수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먼저 밝히고 시작하자면, 전 개인적으로 미러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옛~날 옛적에 여기 게시판에서 미러링을 반대하는 분과 댓글로 잠깐 의견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만,
뼛속까지 스며있는 여성혐오 사고방식와 폭력적 언어를 그대로 남성에게 돌려줌으로써
역시사지를 할수 있을만한 인성을 가진 남성들에겐 '...아 여성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를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될수 있으며
그냥 아주 이쪽으론 '일자무식'해서 자신안의 여성혐오를 깨닫지조차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성들의 경우
그들을 발끈하게 만들어 '페미니즘'이란걸 (어쩔수없이) 논쟁하게 만드는 불씨를 만들 수 있을겁니다.
여성들에겐 일생동안 당해왔던 차별과 폭력에 대한 카운터펀치를 보면서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얻을수 있고
발끈한 남성들을 상대로 다들 무시하고 왜곡하던 페미니즘적 가치를 제대로 말할수 있는 장을 열 기회를 얻을수도 있죠.
하지만, 전 미러링의 대표적인 사이트인 메갈리아가 십자포화를 맞는게 '자연'스럽다고도 생각합니다.
메갈리아(미러링)의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는
그것이 결국 근본적으로 '어그로' - 상대를 도발해 싸움을 걸고 관심을 모으는 역할이라는 겁니다.
한국남자를 '한남충'이라 부르며 씹어대는 메갈리아같은 미러링 사이트가 사방에서 욕먹는걸 이해못하는
순진하신 분이 있을것 같진 않습니다. 이 사회엔 여성을 별의 별 딱지를 다 붙여서 부르면서 '한남충'엔 발끈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더 강하죠.
'어그로'가 공격당하는건 일종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미러링은 어떻게 포장한다 해도 '미러링'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여혐의 언어를 뒤집어서 남성에게 씌우는 건 조금만 삐끗해도 '남혐'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메갈리아는 특히 '일베'를 미러링의 주대상으로 삼은 덕분에, 여혐과는 관계없는 특정지역 혹은 특정인의 비하/차별적 언어까지 흡수해
사용하는 회원들도 있으니 '여자 일베' 딱지를 붙이는건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죠.
제가 미러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건
우리 사회에 미러링으로 '충격'을 주고 '논쟁'을 가져오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지,
미러링=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미러링은 페미니즘 토론의 '도화선', 혹은 '발판'이 되어야지,
페미니즘의 '한국적인 구현'이나 우리가 지켜야할 행동양식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미러링이 이 시점에서 쓸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올릴수 있겠지만
오래 가져갈수는 없는거라고 계속 생각해왔습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메갈리아(와 미러링)의 공과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오는겁니다.
단지 전 그 때가 왔을때 '과'보단 가능한한 많은 '공'이 있기를 바라죠.
메갈이 생긴지 이제 1년 정도 된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진 그럭저럭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때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페미니즘'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죠.
제가 좀 너무 느긋하고 긍정적으로 보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좋아질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메갈이 분명 일정부분 기여를 했습니다. '도화선' 역할을 잘 해준겁니다.
하지만 이제 남초사이트에선 메갈=일베 딱지로 이미지가 고정되어버렸고
메갈리아4가 메갈리아와 선을 긋는 걸 보면서,
이런 흐름을 뒤집을 어떤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제 메갈리아와 미러링의 손익계산서를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잠깐 걱정이 되더군요.
메갈리아 사이트는 이미 없어진 거나 다름없죠. 사이트는 아직 남아있지만 활동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메갈리아에서 제일 과격한 일파가 만든 게 워마드이긴 한데, 그보다 이 이슈가 다른 여성 커뮤니티 전반으로 퍼졌다고 보는 게 더 맞다고 하더라고요. 딱 글쓴 분 말씀대로죠.
그리고 지금에 와서 여러 여초를 포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미러링 차원에서 움직이진 않는 것 같습니다. 모금을 통해 지하철에 몰카 촬영 금지에 대한 광고를 내거나, 소라넷에 관련한 꾸준한 청원을 통해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등의 행동들이 단순 미러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거든요.
저도 메갈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여초커뮤니티들 주로 하는데 그쪽에서도 워마드 쪽 의견이랑은 부딪힐 때 많아도 메갈에서 파생된 긍정적인 영향들 엄청 많이 퍼진 것 같아요. 그걸 그냥 다 싸잡아서 '미러링!' '메갈 여자 일베!' '너 메갈하냐?' 같은 걸로 퉁치려는 인간들 보면 정말 한숨이... 미러링 이외의 다양한 실천들에 대해선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아본 적도 없으면서...
얼마전에 메갈리아의 가장 큰 업적은 생겨난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딱 거기까진 것 같습니다. 자기 역할을 하고 사라졌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점점 더 극단적이 되어서는 워마드만 남고 말았네요.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complex님처럼 긍정적 전망을 가지고 싶네요.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해요.
메갈리아 운영진이 어떻게 관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 쓰는 사람들이 운영진 마음대로 움직여줄리는 없죠.
미러링같이 전략적인 사고를 했다기보다는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여과없이 공격성으로 드러난 것이겠죠.
이것을 방관 조장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고, 그걸 전략이나 기획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군요.
저는 메갈리아의 미러링 방식이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일베 글을 캡쳐해서 올려놓고, 그 글에 그대로 미러링을 하는 식으로요.
그런 것 없이 일베의 행동들을 그대로 하니 이게 미러링이냐. 라는 반응이 많고,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미러링에 대해서 굉장히 낙관적인 입장이신것 같습니다.
어떤 행동의 '논리'나 '취지'를 명확히 함으로서 그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무마될 수 있는가에 대해 저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설령 미러링이라는 방식 자체가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미러링하는 대상이 일베라고 한다면 스스로 일베랑 척을 지고 싶고 자기는 성 차별적 인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고 봅니다.
저는 미러링된 단어에 의해서 많이 구원받았습니다.
손이라는게 맞을 때 막는 용도만 아니라 때리는 상대를 팰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달까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죠.
꽃뱀에는 방울뱀, 낙태충에는 싸튀충. 맘충에는 허수애비.
앞의 단어들이 없었다면 태어나지도 않을 단어였겠죠. 저 단어를 만들어내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