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의 얼굴과 겉모습의 문제


저는 박유천의 얼굴을 꽤 좋아했어요. 동방신기는 제가 아이돌에 관심을 잃을 무렵 나온 그룹이라, 가수이던 시절 노래는 거의 모르면서도 어느 날 뮤직비디오에서 스쳐간 얼굴만 보고도 기억에 남았어요. 남성적으로 뚜렷한 얼굴도, 그렇다고 아주 예쁘게 생긴 꽃미남과도 아닌데, 아무도 해칠 수 없을 것 같으면서 소년다움이 살아있는 선한 얼굴이었죠. 자연스러움이 있었어요. 대조적인 넓은 어깨나 낮은 목소리도 매력을 더해주었고요. 그래서 어쩌다가 클립을 발견하면 보는 정도의 애정도로 살았습니다. 외모는 굉장히 취향이었지만 에너지와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 얼굴을 보려고 흥미없는 드라마며 영화를 볼 수는 없었거든요. 마음에 드는 피사체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약자를 욕구배설용으로 철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거의 티비를 보지 않게 되면서 간헐적인 관심도 줄어든 상태였는데도 마치 지인쯤 됐던 마냥 꽤 뚜렷한 실망감을 느꼈어요. 


저는 박유천이 그런 사람이란 것보다 제가 느끼는 실망감이 더 놀라워요. 


외모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은 머리로 생각해봐서도 경험적으로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외모로 첫인상을 판가름한다고 하죠. 하물며 저처럼 팬심도 대강인 사람에게 대부분의 연예인은 외모로만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죠...잘 몰라요. 성균관 스캔들의 선비나 옥탑방의 머리 긴 왕세자로나 이 친구를 알고 있는 겁니다. 외모와 아우라에 맞춰서 맡게 된 역할들이니까 그런 호의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죠.


유상무같은 경우에는 이미지와 저지른 사건이 그렇게 배치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소 우스꽝스럽고 싫은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지만 박유천의 경우에는 은연중에 꽤나 환상을 쌓아왔던 거죠. 스스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있는 어른이라고 믿어왔는데 취소합니다. 그냥 모지리였던 걸로.


외모라는 것이 정말 묘하지 않아요?

저는 외모가 한 사람과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큰 방해도 도움도 되지 않는 80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외모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것은 내 성격에 분명히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히 성격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인생의 선택지들도 뚜렷하게 달라진다고 봐요. 그리고 몇몇 특별하게 아름답고 인상적이며,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연예인의 재능에는 그런 것이 포함되겠죠.


외모 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특이한 지점... 내부와 철저하게 분리돼 있으면서 연결돼 있는 그 속성에 대해서는 요새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 얼마 전에 이렇게 내 인생이 망가지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 심한 일을 겪었거든요. 그런데 직장을 옮긴지 얼마 안된 상태고 상황상 친지들도 많이 만나야 해서, 의식적으로 더 웃고 밝게 행동했어요. 이 일로 망가지지 않겠다는 투지도 있었어요. 그래도 혹시, 내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한줌 품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보기 좋다, 적응 잘하고 있다, 눈빛이 맑아졌다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알리지 못한, 꽤 통찰력있다고 생각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조차. 오버했나봐요. 심지어 제 눈에도 그래 보여요. 얼마 전에 다른 사람들과 찍게 된 사진에서는 근래 찍은 사진 중 드물 정도로 밝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봤어요.


하지만 일상에 몰두하고 억지로라도 웃을수록, 그 일과의 거리를 벌려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더라고요. 저녁에 잠들기 위해 아침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농담에 웃을 때 같이 깔깔 웃고, 밥을 꾹꾹 천천히 먹으면서, 일상의 리듬에 의지로 임하다보면 시간이 흘러갔어요. 그러고보면 겉모습이란 것은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거죠. 괜찮은 척 하면 괜찮아지는 거예요. 어느 정도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생각나더라고요. 속마음이 좀 달라도 착한 척 하다보면 그 척에 영향을 받기 마련인거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지금 덮어둔 괴로움이 언젠가는 폭발할지도 몰라요. 혹은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독을 뿜을 지도 몰라요. 그 아픔 속에 흠뻑 빠지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일단 살아남는데는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힘이 됐어요. 


일요일이에요. 일요일 아침은 늘 일요일 저녁보다도 조금 괴로워요. 주말간 하려던 일을 미뤄두다가 오늘 다 해야하거든요. 그런데 아마 저녁까지 안하다가 저녁에 허둥지둥 시작할 거예요.


    • 맞는 말씀이에요. 제 친구 중에 정말 박유천, 유상무보다 더했으면 더한 애가 있는데 그 애도 외모 하나로 다 낚아댔어요. 그리고 특유의 능글맞음이 있어서 (평소에도 훈훈하게 잘 웃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그냥 호응만 해주는 태도 등으로) 미운털이 덜 박혀서 고소 들어오고, 합의금 달라는 껀바이껀을 다 스무스하게 진행하더라고요. 세살 버릇 여든돼서도 못 고친다고 그 애는 지금도 사뭇 진지하게 사귀는 애가 있음에도 아직 그러고 있어요.


      저도 그걸 보면서 느낀 건 보통 사람들은 외모나 인상을 보고 반응하고 판단한다는 게 자명하다는 사실이었죠. 뭘 하더라도 외모가 괜찮으면 그게 플러스 인자가 돼요. 저도 그래서 주변에서 듣는 리뷰도 참고하고 제 콤플렉스였던 부위도 고치고자 운동해서 몸도 가꾸고, 얼굴도 살짝 튜닝했어요.


      사실 개조결과가 대박 났었어요. 저도 크게 만족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게 이전 대비해서 너무 확연하게 달라졌어요. 몸 가꾸고 살짝 바꿨는데도 처음보는 사람이 다 하나같이 연예인 같다 잘 생겼다 뭐 그랬으니까요.


      인생이 확 바뀌더라고요. 옛날에는 제가 나서거나 열심히 해야 응해줄까 말까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거죠. 길거리에 지나가는데 저한테 말 걸고 번호 달라는 여자분도 생기고, 주변에 소개시켜준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모르는 사람이 저한테 관심 있다면서 연락도 오고, 그러다보니 안 하던 페북, 인스타도 하게 되고...


      수요(?)가 계속해서 확충되다 보니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는 계속 감시하고 불안해 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초에 예상했던 회의감이 더 심해졌어요. 대외적인 인기가 많아졌지만 이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서 내가 뭘 한들 그걸 외모에 투영해서 좋게 보는구나하면서....진짜 시중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기는 하나 예시 중에 같은 오타쿠이더라도 찌질하게 생긴 애는 비호감이지만, 훈남이 그러면 반전매력, 소상한 취미생활로 바뀌는 거죠.

      이런 걸 토대로 또 하나 추측되는 건 여성이 유혹하고, 남성이 다가간다는 관념은 점점 사라질 거예요. 여성의 지위가 높아질 수록 남성이 역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제가 볼 때는 정말 그래요. 저는 이전엔 얘기만 전해 들었었지, 여성분들이 그렇게 적극적인 줄 몰랐었거든요.
      • 하긴, 자기 외모가 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느끼는 사실일거예요.  눈에 띄는 병으로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었던 지인이 있었는데 그 체험으로 남자들의 본질을 똑똑하게 알았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이미지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말씀대로 모든 사람들을 다 속속들이 알고 판단하기엔 우린 바쁘니까요.. 회사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진짜 일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처럼요.

      일상의 리듬에 억지로라도 몸을 실어 가다보면 진짜 좀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괜찮아진게 아니라 그런것처럼 느껴지는 거라도 거기에 계속 속다보면 진짜 정말 괜찮아질수도 있는거같아요.
      •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쉽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착각을 심어주려는 자기계발서적 삶의 전환..(이게 무슨 소리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괜찮아지고 나서 뒤를 돌아봐도 되지 않을까 해요. 

    • 얼굴은 어려운 것 같아요. 가끔 내 취향의 좋아하는 얼굴을 발견해도 그건 극이나 어떤 상황의 정제되고 특정한, 그래서 한정적이고 한시적인 얼굴이더군요. 연기가 끝난 후의 배우에겐 동일인이라고 느껴지긴 하지만 뭔가 부족하더군요. 저는 아마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실은 까다롭고 좀처럼 반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이미지는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냉혹한 소비자이죠.. 얼굴은 어렵고 많은 얼굴, 층위가 다른 얼굴이 있으니 실망도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 저는 제가 냉혹한 소비자인줄..ㅋㅋ 어쨌든 애정을 줘도, 아주 쉽게 거둬들일 수 있는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황이 뚜렷한데도 아냐 설마..?이런 마음이 드는 제가 이상했죠. 아무튼 한정적이고 한시적인 얼굴이라는 표현이 와 닿습니다. 좋아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배우를 다음 작품에서는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죠. 

    •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막상 우선은 보이는 걸로 판단을 하게 된단 말이지요.


      그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란 것을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게....

    • 조안 크로포드도 외모만 보면 자녀학대 따위는 저지르지 않을 것 같았죠. 이쪽은 죽은 후에 양녀에 의해 알려진 케이스지만요.

      • 저한테 조안 크로포드는 엄청난 미인이지만, 백설공주의 매혹적인 새어머니 역할에 어울릴 것 같은 포스가 있어서 어쩐지 놀랍지는 않았어요. 현역을 본 적 없기 때문일지도. 

    • 1. 유상무는 그래도 예능 등등으로 사적인 이미지(외모든 인상이든)가 좀 대중들에게 있죠. 박유천은 아니고요. 둘 상대적 비교는 그렇고요..


      2. 사람의 우울함과 행복감은 그 시절뿐(길다 해도 나름)이기도 한 거니까, 즈음이라 하더라도 숨길 수 있는 거고.. 선함과 악함 같은 것과는 좀 다르달까요. 그건 쌓여서 사람의 눈빛, 인상 말고도, 기운 같은 것까지 형성하니까요. 다른 거예요 분명히.. 앞쪽은 상태 같은 것이고 뒤는 본성이죠.


      3. 직접 마주치는 주변인과 달리 카메라, 화면을 지나쳐오는 방식으로만 그 사람을 보게 될 때에는 그 기운.. 에너지.. 같은 건 느끼기 불가능하죠.


      이 3가지 얘기 왠지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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