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후반 인사동 분위기를 기억하시는 분?
90년대 중후반 인사동 분위기를 기억하시는 분 계시나요?
그 때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나요? 지금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나지는 않았겠죠?
카페 대신 전통 찻집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저도 몇 번
전통찻집에 갔었고요.
지금은 모든게 다 흐릿합니다. 그 때 인사동은 어땠었나요?
부탁이니 알려주시겠어요?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기억에 따르면 주말에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중에는 밀릴 정도는 아니었고 외국인이 넘치진 않았어요.
돌아다니던 사람들 연령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쌈지길도 없던 때라 음... 서예 선생님이랑 붓 사러 가고 그랬죠.
근처에 정독도서관(독서실?) 몇달 다녔는데요. 일단 외국인 관광객이 별로 없었습니다. 있어도 일본인 정도, 하지만 애초에 종로가 사람이 많은 동네라 기본적인 유동인구는 있던 동네였죠. 전통찻집은 많이 있었구요,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었습니다. 화랑을 구경하거나 전통찻집에 데이트하러 나온 연인 및 친구일행들이 많아서 사람은 북적거렸습니다. 저는 주말에 볼일이 있어서 종각역이나 안국역에서 인사동 중심으로 가야할 사정이었는데 인파를 헤치고 가면서 왜 이리 사람이 많을까 짜증냈던 생각이 납니다. 아마 서울에서도 거의 처음으로 생긴 (자동차를 막아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길가에서 호떡이나 붕어빵같은 소소한 먹거리를 만들어 팔거나, 잡다한 수공예품 좌판을 늘어놓는 상인들도 많았습니다. 나팔이나 피리같은 전통악기를 가지고 나와서 연주하는 거리 연주자도 꽤 있었고요. 아코디언이나 기타 연주자도 가끔 있었던 생각이 나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주말에 보행자전용도로화 했던게 대학로가 인사동보다 먼저였던거 같네요.
음... 제 기억과 다르네요. 제가 학교가 그 근처라 자주 가는 편이었는데 주말에 가면 서양인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고 중국인은 거의 없었고 일본인들 깃발 들고 다니는 것도 꽤 볼 수 있었는데요... 카페는 많진 않았지만 메인 로드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카페가 있긴 했었죠. (<볼가> 아직 있나 모르겠네..) 전통찻집 전통 술집 당연히 많았구요 스타벅스는 당연히 없었고 ㅎㅎ 요즘처럼 길에서 먹거리 다양하게 팔진 않았던 거 같고요. 그리고 가물가물해서 확실치는 않은데 평일에는 차가 다녔던 거 같기도 합니다.
기억들이 이렇게 다르군요 ^^;;
...요즘 명동 근처에 자주 가서 거기에 비하면 적게 느껴져서 이렇게 적고 보니, 그 당시 외국인 관광객이 비교적 많이 오던 곳은 많네요. 하지만 요즘 명동을 중국관광객이 점령한 것에 비하면 당시 인사동에는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주말에만 해당하는 게 맞을 겁니다. 전 주말에만 인사동을 가서 주중에 어땠는지 오히려 모르겠네요.
동양인 (일본인들과 한국인이 섞여있을 것이기에)이 서양인보다 더 많긴 했죠 당연히 ^^ 근데 90년대 중반 당시에 외국인 자체가 요새처럼 흔히 볼 수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새 명동의 중국인 인파하고는 비교가 당연히 안되고요... 반면에 그 당시로 생각해보면 인사동 가서 '이례적으로' 외국인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제 기억엔 우와 외국인 많다 *.* 어헝 이랬던 거 같아요. 님과 저/요즘과 그때/명동과 인사동 등의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상대적 기억과 상대적 비교가 생겼네요 ^^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에는 주로 소규모 전시회 보러 자주 다녔고 90년대 중후반에는 활동하던 동호회가 전통문화,한국사 쪽이라 인사동에서 자주 모임을 갖었었어요. 당시 기억을 떠 올리면 주말 외에는 한적한 느낌이었고 외국인 관광객의 수는 매우 적었는데 지금처럼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이 중국인보다는 일본인들이 더 많았던 기억입니다. 인사동 메인거리 양옆으로는 지금보다 매우 많은 수의 전통찻집이 있었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식당이나 주점들이 많았는데 항상 인사동 음식은 먹을게 못된다는 불평이 지금도 생생하군요. 한편 인사동의 거리문화, 거리풍경은 도시건축가 김진애씨가 설계한(지금 상태) 이후와 이전이 크게 달라졌다고 기억해요. 그 변곡점에 몇몇 독특한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소규모 건축들도 유명한 쌈짓길의 대선배격이 되는 (구)학고재 건물이 신호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7-8년전즘 인사동 거리에서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을 본 기억이 나네요. 그 나이에 키도 크고 꼿꼿한 양반이 간지 쩌는 가죽백팩을 메고 옆 사람들과 쉼 없이 수다 떨며 지나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ㅋ
김진애씨가 인사동을 맡아 검은색 전돌을 까는 공사를 하기 전의 인사동이 주는 색깔 느낌은 하얀색이었습니다. 건물도 하얗고 바닥도 하얗고 빛이 반사되어 더 하얗게 보이는 느낌에 건물들은 대부분 1층에서 2층 정도라 나즈막하면서 눈에 편안하게 들어왔죠. 재동이나 교동처럼요.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통인가게 정도였으니까요.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거리 전체에 걸려 있었는데 그게 또 인사동의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요. 허영만 화백의 무슨 만화엔가 그 장면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어서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외국인은 서양인이 많았어요. 그땐 우리옷이라 불리는 개량한복이 인기를 끌던 시기라 그런 옷집들도 꽤 많았죠. 초입에 갈라지는 골목에 있었던 '질경이 우리옷'이 이정표 역할을 했던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