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라는 이유로 미안해해야 하냐는 의문에 부쳐
여기에 A와 B,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길에서 B와 마주친 A는 B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둘 사이에는 뭔가 사연이 있습니다.
이것은 A가 B를 죽인 사건입니다.
A 외에, B에게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배경을 일본강점기로 바꿔봅시다.
A는 일본인, B는 조선인입니다.
길에서 B와 마주친 A가 B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는 평소 조선인에게서 나는 김치 냄새가 싫었다는 이유를 댑니다.
이것은 아직 그냥 A가 B를 죽인 사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면, 이것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인 사건이 되며,
그렇게 구성된 사회에 대해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미안해해야 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백인 경찰의 비무장 흑인 사살 사건에 대입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배경을 이틀 전 강남으로 바꿔봅시다.
가해자 A는 피해자 B가 단지 여성이어서 죽였습니다.
강남 번화가 대로변에 있는 노래방의 화장실에서 여자가 지나가길 한 시간 넘게 기다렸죠.
초기 뉴스는 관행대로 가해 남성의 목소리만을 빌어 '목사가 될 꿈을 꾸던 청년', '노숙을 하기도 한 불행한 사람', '여자가 자길 무시해서 상처 입은 사람' 정도로 포장했고, 피해 여성은 새벽 한 시에 술에 취해 유흥가를 돌아다닌 몸가짐이 칠칠치 못한 여자, 강남 화장실에서 살해된 화장실女로 묘사했습니다.
많은 뉴스에는 '그러게 일찍 일찍 다니지.'라 거나 '여자가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랬겠냐', '피해자도 평소에 무시하는 눈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와 같은 혐오 댓글과 '나도 가끔은-'으로 시작되는 가해자 감정이입형 글들로 뒤덮였습니다.
"내가 남자라고 해서, 미안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이번 강남살해남 사건을 A와 B의 단순 살인으로 보느냐,
여성혐오가 팽배한 사회에서 일어난, 남성의 여성 살해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당신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저는 후자로 봅니다.
사회가 이렇게 흘러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온전히 무고한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그 사회의 기득권에 해당되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기득권의 특혜를 누려온 남성이라면요.
함께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 지점을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된, 혹은 더 뒤틀려온 사회를 고쳐나가려면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는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미안함을 느껴야 할 것이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제3자 역시 양심이란게 있으면 미안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미안함을 느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봐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번 사건의 범인에 대해 전혀 옹호하지 않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뭐 미안함을 느끼는 것 자체야 개인의 자유니까 제가 직접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는건 아니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갖는 것과
사과할 만큼 미안해하는 건 상당히 다른 차원인데요.
예를 든 사례는 일본인 전체라기보다는 일본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사과할만한 일이긴 합니다만.
아프리카에서 식수가 없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미안한만큼
미안하다면 미안할 일이긴 한데
혹시나 그 의미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안함을 강요하는거 저만 불편한가요?
본문에도 적었듯, 이번 사건의 여성혐오 '프레임'은 살해 행위 하나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 이후의 보도행태, 사회가 보인 반응들이 총체적으로 원인이 되었죠.
범인이 조현병(정신분열)이라는 입장 역시 그렇습니다.
얼마 전 정신지체 여아(13세를 갓 넘겼나 그랬죠)는 정신지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라 매춘을 한 범죄자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남성은 정신분열을 이유로 면죄부를 얻고 있죠.
이 남성은 조현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겐 덤비지 않았죠.
조현병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조현병이라고 자동으로 면죄부가 주어지진 않아요.
어디에서였더라. 우리나라 분노제어장애 환자들은 건장한 남자 앞에 가면 분노 제어가 잘 된다던 얘기를 봤던 게 떠오르네요.
그건 의미가 없어요.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 성별 비율과 우리 나라 전체 살인 범죄 희생자 성별 비율이 거의 유사하니까요. 결국 묻지마 살인에서도 여성이 선택되는 비율이 높은 경향성이 여전히 나타난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이번 사건의 특이점은 묻지마 범죄의 특징인 대상 불특정이 아니라 여성 특정으로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묻지마 살인 범죄의 요인으로 정신병력이 1위인 건 맞지만 36% 정도이고, 알콜 등 약물에 의한 사유도 35%, 현실 불만도 29%나 됩니다. 왜곡하지 마시죠.
후자로 본다고 해서, 가해자가 아닌 남자들이 미안해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에효.. 반대 성에 대한 혐오와 "00녀"와 같은 프레임 짜기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 같네요. 종북, 00충 같은 용어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고요. 이상한 인간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해도 혐오가 무슨 도움이 되나요. 세상이 너무 팍팍해져서 그렇겠지요.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뀌니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욕이나 해보자는 심정인 것 같습니다. 뒤에서 웃고 있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여성혐오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남vs여 문제로 확대하여 남성 전체가 미안해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성이 미워서 찔러 죽인 남성이 여럿 나왔다고 해도 저는 그들과 우연히 같은 XY염색체를 가졌을 뿐이지, 공감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마음 아프지만, 저에게 미안함을 느끼라고 요구하는 건 굉장히 불합리하게 느껴지네요.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였다고 다른 일반 일본인이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인가?
백인경찰이 흑인을 죽였다고 일반 백인이 흑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인가?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일에 대해 비난은 할 수 있어도 왜 미안해야만 하죠?
"사회가 이렇게 흘러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온전히 무고한 사람이 있을까요?"
맞습니다. 온전히 무고한 사람은 없죠. 심지여 여성들까지도 그렇습니다.
여성이 무고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이상, 내면에 자기도 모르는 여성혐오 사고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우에노 치즈코도 그랬죠.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혐오를 깨달은 사람이다."
'인지상정'이란걸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설득하기는 어렵죠.
어짿든 전 후자의 입장이로군요.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한 감정을 느꼈던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미안함이라는걸 못 느끼는 누군가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고 사실 강요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가 불편하다는 걸까요?
그냥 '미안해 하는 현상'이 불편한거 아닌가요?
혹은 그러한 공감이 안되는 자신을 방어해야할거 같은 (사회적 존재로서의)본능이 이는 것일지도 모르구요.
그래서 무릎 꿇으셨나요? 무릎 꿇는 남자 누가 있었나요? 결과적으로 '여성'이라서 누군가 죽은자는 있어도 실제적인 미안함의 '강요'는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강요는 님같은 분들이 지어낸 허상이죠.
강요는 위계질서나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한 권력을 갖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결국 실제하지 않는 강요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고 거부감이 들었다는 것은 미안함에 관한 담론 자체에 불편한 것이라는 말이죠. 그 불편함의 당위성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강요'를 핑게 삼는것이구요.
누군가가 나를 김치녀, 한남충, 개저씨, 맘충이라고 부르거나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불쾌함이 반대 성에 대한 혐오를 점점 확대하고 있어요. 개념녀라는 말도 똑같아요. 개념녀 말고는 다 비개념녀라는 말이잖아요.
여튼, 이 사건에서 남자들이 미안해 할 건 없다고 봅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 불안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여자 죽이는 한남들아' 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에 공감하고 여성운동을 지지해다오' 가 한문장에 같이 쓰였다고 같은 내용인건 아닙니다.
앞의 내용에 동감하는게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하는거야말로 대화의 진전을 막는 행위입니다.
님 대화 수준에서야 그럴수 있겠구나하고 공감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