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곡성>에 대한 감상평과 나름대로의 해석. (스포 有)

0.

에. 안녕하세요. 간만의 로그인이네요. 바낭을 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 늘 뭔가를 끄적여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핸드폰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글감들을 메모해 두곤 했지만 어쩌다보니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곤 했는데,

결국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은 글 쓰는 사이클이 격월을 넘어 계간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이라는 위기의식이군요. 넵. 




1.

쓸데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본문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는 근황 토크.

최근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단어는 '아홉수' 에요. 올해의 시작을 장염으로 상큼하게 시작해서, 3월에는 지병(?) 이었던 기흉이 재발하질 않나... 심지어 최근에는 담배 사러 나갔다가 계단에서 발목을 살짝 접질렀는데, 하필 다친 곳이 이게 군대 있을 적에 인대가 끊어졌던 부위여서 주말 동안 지옥을 보기도 했지요. 이게 너무 아파서 병가를 내고 병원엘 갔더니, 인대 손상으로 인한 걸음걸이의 변형 탓에 연골 쪽으로 하중이 과하게 실려서 연골이 맛탱이가 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밖에도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질 않나... 아무튼 꽤 버라이어티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이쯤되면 여기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나... 싶기도 한데, 다만 언젠가의 바낭에서 인용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끼리'라는 <인셉션>에서의 대사처럼 그렇게 하면 뭔가 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아, 새벽에 심야로 <곡성>을 보고 왔어요. 무섭다, 좀 소름끼친다, 역시 나홍진 감독은 사이코패스다(...)라는 얘기는 물론 익히 들었습니다만; 다행히 중요한 스포일러는 커녕 줄거리도 모르는 상태로 굉장히 편하게 봤네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 자체는 황정민의 초반 착장이나 후반의 행보 등만 봐도 꽤 직관적으로 소구하는 편이라서 난해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비유와 상징이 많아서 좀 즐거웠어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일단 저는 플롯을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기본 가이드라인에 대해 순응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때문에, '무명'은 누구(무엇?)이고, 왜 희생자들의 패션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었는지, '일광'은 왜 새똥인지 날벌레인지 테러를 당했는지, 아니면 중/후반부의 다굴씬(...)은 뭘 의미하는가... 등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그다지 궁금하지가 않고,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생각 또한 '아직까지는' 없어요. 


제가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나서도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종구'가 지었다는 '죄'는 과연 무엇인가?> 였어요. 전생에 삼천대천세계를 도매금으로 팔아넘겼다거나 하는 우주구급의 범죄가 아니라면 저 정도로 화끈하게 엿먹이기도 힘들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이게 단지 '재수가 없었다.' 류의 묻지마 범죄였다던지, '외지인네 집에 몰래 찾아가서 깽판 쳐놔서.' 같은 시시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고요...




3.

아무튼, 저는 종구의 죄는 외지인이라는 '괴물의 서사'에 대한 긍정과 내면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음... 뭐랄까, 부기맨 처럼요. 비교적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는 초반부에서는 후배에게서 마을에 떠도는 괴담을 듣고도 코웃음 치잖아요. 그러다가 정전이 되고, 문 밖에 나체로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어어어어 하다가 '무명'과 조우하고(처음엔 그저 돌 던지는 동네 광년이로 보죠.), 목격자를 만나고, 외지인의 집을 찾아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종구는 완전히 믿게 되지요. '사람이 아닌 것이 존재하며, 이 모든 것은 그의 소행이다.' 라고요. 


이후의 전개는 모두 이 묵시적인 동의가 전제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요. 일광의 '살을 날리는' 굿이 실제로 효과를 나타내는 것 또한 그렇고(살을 날리는 방향이 외지인인지, 딸래미인지는 차치해두고서라도 어쨌거나 확실하게 이게 먹힌다...고 보여주지요.), 후반부에 무명이 '꿈이 아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 역시 저 편의 존재를 긍정함으로써 이 세계와 접점이 생겼고, 종구 또한 그것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통역 역할로 따라온 '이삼'의 직업이 하필 부제라는 것, 그리고 클라이맥스의 외지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씬에서 종교적 선문답 비스무리한 과정 끝에 기독교적 메타포를 갖는 악마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구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지만, 경찰관인 종구와 사제인 이삼이 긍정한 '괴물의 서사'의 양태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그건 외지인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종구가 아닌 '이삼 루트'로 이야기를 진행했을 때 도달하는 결말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4.

아... 밤을 새서 그런 것도 있고, 회사에서 체육대회가 있어서 곧 나가봐야 하는지라... 시간의 압박 때문에 글을 매끄럽게 다듬지를 못하겠네요.


그래도 급하게 정리하자면 

하나의 동일한 원형을 지닌 하나의 서사가 존재하지만(외지인), 그것이 드러나는 양태는 피해자마다 다를 것이며(종구, 이삼, 이전/이후의 피해자들), 이것을 긍정하게 되면 이것에 편입되어 그 서사의 법칙을 강제당하는 것이(<곡성>의 사건들) 무명이 말하는 피해자들의 '죄'가 아닐까. 하고 간밤에 뻘생각 좀 해봤네요. 스포일러 피하느라 듀게를 포함해 아직 다른 해석들을 본 적이 없어서 별로 자신은 없지만. 




5.

이 모든 해석의 근간은 제가 '아홉수'라는 개념이 실재한다고 긍정하는 순간, 앞으로 남은 7개월 동안은 말 그대로 나락을 찍게 될까봐 겁난다는 거에요. 넵.

이만 나가봐야겠네요. 섹시한 주말 되세요.

    • 토요일에 체육대회라니요. 본 중 가장 친절한 리뷰인 거 같네요.

      그 서사에 대한 긍정이라는 부분이 닭울음 장면까지 계속 되는 거 같아요. 믿음에 관한 문제가 끝까지 유지되다가 후반부에는 제대로 폭발하고. 어처구니 없는 개연성들은 이게 유지가 되어서 넘어가 지고 긴장감도 유지되는 거 같아요. 이 영화가 공포를 주는 것도 믿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그러나 뭘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는 인물의 마음에 동화가 되기 때문이겠죠.

      • 다행히 완전히 헛다리 짚은 해석은 아닌 것 같아 적잖이 안심이 되네요 :)

        확실히 결말부는 개연성이 흐려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장면장면이 주는 임팩트로 이걸 씹어먹고 끝까지 하이텐션으로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꽤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인듯 해요.


        어... 그나저나 저는 첫 회사라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체육대회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닌가보네요...? ㅜ.ㅠ 몰랐습니다... 날씨도 우라지게 좋네요...헣헣헣헣허
    • 아홉수 말만 들었지 좋은 말이 아니고 그런거 난 몰라 하고 살지만,


      생각하면 뜻 속에 살아도 모른체 모르고 그저 무사히 견딘다는데 감사하죠. 

      • 안그래도 살기 팍팍한데 '아홉수'라는 그럴듯한 꼬리표까지 달면 인생이 더 고달파질 것 같아요 ㅜ.ㅠ


        아, 그래도 그거 하나는 좋네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슬슬 집에서 결혼 얘기가 스멀스멀 나오는데, 아홉수라는 이유로 강권하진 않으시더라고요...

    • 해석이 재밌고 그럴싸해요. 전 무섭다고 해서 곡성 볼 엄두도 못내며 스포들 보고 있지만요..후후 영화에서 의미를 해석하면서도 감독의 의도라느니 하면서 영화의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경우 자기가 그 이야기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역할을 빼놓고 있죠. 아홉수는 실재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왜냐면 저도 같은 처지라서요..훟후후
      • 쓰잘데없는 바낭이든 영화 감상평이든 후달리는 글재주와 일천한 지식을 카바치기 위해 풀이과정 비슷하게 제 얘기를 쓰곤 하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어...음... 영화는... 저도 그나마 고어물은 인상쓰면서 꾸역꾸역 보는데, 왁! 하고 작정하고 놀래키는 장면에는 내성이 없어서 땋! 땧! 발광을 하면서 보는 타입이라 그런 추한 모습을 지인들에게 보일 바에는 그냥 혼자서 보자...하고 혼자 갔다가 바로 후회했어요... 어후... 이게 왜 15금인지; 




        앗참! 그리구 올 한 해 즐겁게 무탈히 잘 보내시길 ^.~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53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60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90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5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3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9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3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30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1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8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1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