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
연휴 동안 너무 오래 놀아서 그런지 계속 놀고 싶네요. ㅠㅠ
유튜브에서 어떤 영화를 찾던 중에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My Dinner with Andre, 1981)라는 영화를 찾았어요.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환데 오늘 마침 이 영화를 볼 마음 상태가 되었는지 영어 자막이 술술 읽히더군요.
그래도 워낙 대사가 많은 영화라 (거의 두 시간 동안 두 사람이 계속 얘기하는 영화;;) 30분쯤 보니 머리가 띵~
하긴 했지만 잠시 쉬고 나서 (혹은 졸고 나서 ^^) 개운한 머리로 다시 보기 시작하니 50분쯤 되는 부분부터
아주 재밌어져서 끝까지 재밌었어요.
영화가 시작되고 8분경 앙드레와 월리스가 식당에서 자리를 잡은 후로 이 두 사람은 화장실도 안 가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요. (사실 90%는 앙드레가 얘기하죠.)
저는 이렇게 대사로만 이루어지는 영화가 얼마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인데
이 영화는 이제까지 제가 봤던 영화들 중에서는 거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영화 같아요.
영화의 중반부터는 주고 받는 이야기에 사로잡혀서 엄청나게 열심히 들었어요. (라기보다는 자막을 읽었어요. ^^)
도대체 이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워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두 주연 배우가 각본을 썼더군요. orz 책으로 나오면 한 권 사두고 싶은 각본이에요.
사는 게 구름 속을 걷는 것처럼 어쩐지 무감각하고 의미가 없을 때, 그럴 때 보면 좋을 영화예요.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저는 굉장히 멋진 저녁 식사를 대접받은 느낌이어서 밥 안 먹어도 배부르네요.
워낙 대사가 많아서 구할 수만 있다면 한글자막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영어자막으로라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여서 링크를 올려봅니다. (환경 설정에서 영어 자막 선택할 수 있어요.)
https://youtu.be/xWUGXeN_iKI
저렇게 밥을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자급자족 댓글을 달까 말까 갈등했는데 댓글이 달려서 좋아요. ^^
영화 마지막에 나온 피아노곡~~
Finghin Collins - Gymnopedie No. 1 (Erik Satie)
벌레들의 눈동자와도 같은
정현종
둥근 기쁨 하나
마음의 광채
둥근 슬픔 하나
마음의 광채
굴리고 던지고 튕기며 노는
내 커다란 놀이
이만큼 깊으니
슬픔의 금강석
노래와 더불어
기쁨의 금강석
지구와도 같고 혈구와도 같으며
풀잎과도 같고 벌레들의 눈동자와도 같은
둥근 슬픔
둥근 기쁨
에릭 사티의 곡이군요. 정작 음악은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책으로 사티를 배웠으니...
심심하니 시 한 편 ^^
(빌려다 놓은 <정현종 시전집>이 요즘 유용하네요. ^^)
Pascal Rogé - Gnossiennes No.1~6 (Erik Satie)
저 날 소용돌이
정현종
......시조차도, 나를 사로잡고 나를 헤매게 하며 나를 꿈꾸게 하는 것들의 저 생생하고 혼란스러우며 어처구니없어서 난처하고 그리하여 살아 있는 내 안팎의 신호들과 힘들의 소용돌이가 피워낸 한 꽃이요 전혀 새로운 움직임의 시작이며 따라서 또 하나의 세계의 열림인 시조차도, 저 날것, 저 날 소용돌이와 힘들에 비하면 아직도 덜 싱싱하고 덜 생생한 것이니, 나는 시를 쓰려고 한다기보다는 시라는 것을 태어나게 하는 그 힘들과 신호들의 소용돌이 속에 항상 있고 싶을 따름이며, 만일 내 속에서 시가 움튼다면 그 발아(發芽)는 마땅히 예의 그 소용돌이의 고요한 중심으로부터 피어나는 것이기를......
몇 달 동안의 서로 간의 대화를 녹음한 걸 갖고 월리스 숀이 1년 동안 작업해서 각본 내놓고 그에 이어 숀과 앙드레 그레고리가 감독 루이 말과 함께 몇 주 동안 스튜디오 세트에서 차근차근 촬영한 걸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주루룩 흘러가는 게 신기하지요.
영화 보면 고생은 앙드레 혼자 다 한 것 같은데 각본 작업을 월리스 숀이 했다니 용서가 됩니다(?) ^^
이런 영화 볼 때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한번에 찍은 걸까 궁금해요.
Sviatoslav Richter - Fantasiestücke Op.12 No.1 Des Abends (Schumann)
바람의 그림자
정현종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부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잎
살아 있는 것들은 아주 몰래
불고, 흔들리고
노는 듯이
고독하다
흔들리는 잎 그림자
흔들리는 바람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