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세일, 창작)
1.백화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세일기간이라는 건 정말 의미가 없어요. 물론 세일기간엔 세일을 하긴 하죠. 문제는, 세일 대상인 지난 시즌 상품은 코빼기도 없어요. 계절에 맞는 옷은 신상품만이 있는 거죠. 뭐 그래도 저처럼 어디서든 밝은 면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사람은 여기서도 다행인 점을 찾죠. 여기서 다행인 점 하나는 세일기간이 되어도 백화점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내가 가는 곳에 사람이 없다는 건 좋은 거고요.
2.요즘 뭘 만들고 있어요. 새로운 이야기죠. 늘 말하듯이 모든 사람은 이야기꾼이잖아요. 다만 돈받고 팔아야 하는 이야기라 꼭 만드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는 것만은 아니지만요.
돈받고 팔아야 하는 이야기는 만들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예요. 그냥 하는 이야기는 앞뒤가 안 맞는 걸 지적받아도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는거야? 감히?'라고 소리치며 술병을 던지거나 총을 들이대면 수습이 되잖아요? 하지만 돈받고 파는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수습이 안 돼요. 앞뒤가 맞아야 하고 심지어는 재미도 있어야 하죠. 앞뒤가 맞으면서 재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으면서 앞뒤가 맞아야 하는 거죠.
3.어떤 작가나 음악가는 그래요. 남의 이야기를 안 보거나 남의 음악을 안 듣는다고 하죠. 제 생각에 그들 중 90%는 귀찮아서 남의 이야기를 안 보거나 남의 음악을 안 듣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들이 늘 그렇듯이, 그들은 있어 보이기 위해 그들이 하는 일이나 안하는 일에 그럴듯한 이유를 대죠.
그들은 대체로 '무의식중에 다른 이야기나 다른 음악을 따라할까봐. 영향받을까봐.'라고 하며 남의 창작물을 안 보는 게으름을 합리화해요.
4.흠.
5.한데 제 생각은 이래요. 우리 모두는 업자잖아요. 이야기나 음악을 공짜로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 업자인 거예요. 컨텐츠를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거죠. 그들이 안 봤어도 그들의 소비자들은 그들이 안 본 다른 이야기나 음악을 보고 듣잖아요. 위의 말을 바꿔 말하면 '나도 모르게 다른 이야기나 다른 음악을 따라할까봐 겹치지 않도록 모니터링한다.'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예요.
6.냉전 시대 때 미국의 스파이들은 러시아 스파이들에게 거짓 정보를 건넬 때 엄청나게 머리를 굴렸다고 해요. 왜냐면, 정보를 너무 쉬운 곳에 숨겨버리면 러시아의 스파이가 의심을 하니까요.
'귀중한 정보가 이렇게 쉽게 들어오다니, 혹시 미국 스파이들이 우리가 이 정보를 발견하기를 바란 게 아닐까?'
라고 러시아 스파이들이 의심을 해버리면 작전은 실패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또 정보를 너무 찾기 어렵게 숨겨버리면 러시아 스파이들이 그걸 못 찾아내기 때문에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거죠.
때문에 미국 스파이들은 거짓 정보를 러시아 스파이들이 손에 넣도록 할 때 그들이 정말 간신히, 온 힘을 다해야만 얻어낼 수 있도록 셋팅했다고 해요. 그걸 찾아내면 의심이 아닌 자부심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려면 상대 스파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 어떤 녀석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고요.
7.예전에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다른 유명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이 정말 궁금해서, 재밌어서 보는 경우는 사실 별로 안 돼요. 문제는, 내가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많은 소비자가 이미 그걸 봤다는 거죠. 그 작품이 날리는 펀치를 이미 맞았거나 막아낸 거예요.
물론 그걸 보고 더 강한 펀치를 날릴 수 있겠지만 그건 힘들어요. 하지만 시도는 해야하는거죠. 어떻게든, 펀치의 타이밍이나 궤도나 콤비네이션 같은 거라도 바꿔서 날려야만 하는 거예요. 다른 작품(상품)은 상대 스파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를 KO시키는 것까지 바라진 않지만 한순간 정도는 그들이 흠칫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죠.
...이렇게 쓰니 마치 무슨 대단한 노력을 하는 작가인 것 같지만 그건 아니예요. 다 써놓고 보니 이것 또한 위에 쓴 '자신이 하는 일'이 있어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포장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요. 음...하지만 위에 쓴 스파이 얘기만큼은 진짜라고 믿어서 한 얘기예요.
특히 요즘 이야기들은 정보를 숨기는 것과 정보를 건네는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게 트렌드니까요. 최근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것을 굉장히 세련되게 해내고 있어서 놀라곤 해요.
하루에 글을 한페이지에 두개나 쓰네요.
이런거 괜찮더군요. '이 글에는 한 가지 숨겨진 장치가 있어요.' 같은걸 후기에 쓰는 거죠. 사실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