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당한 여성이 왜 그 즉시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경험담

저는 여자이고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다른 여성들처럼- 크고 작은 성추행을 아주 많이 겪어봤습니다.


성기 노출하고 핸드잡하는 바바리맨은 중학생 시절부터 십몇년간 너무 흔하게 발에 채일 정도로 만나봐서 나중에는 무덤덤해졌고요. (거시기 발기해봤자 쟤는 별로 크지도 않구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으로) 좀 큼직큼직한 일만 열거하자면 중학생 시절, 여름 하복을 입고 집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반대편에서 건너오며 노골적으로 제 가슴을 움켜쥐더니 다시 아무렇지 않는 듯 지나가던 중년 남자라든가, 고등학생 때 지하철에서 제 엉덩이에 성기를 부비던 양복입은 남자. 대학생 때도 지하철에서 허벅지 엉덩이 만지기는 심심찮게 겪었죠. 직장생활하면서는 거래처 사장에서 술자리에 기습적으로 포옹당하고 키스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사촌오빠에게 당한 성추행은 너무 더러운 기억이라 그냥 타이핑하기도 싫습니다.


저는 위의 경우들에, 그 자리에서 즉시 큰소리로 항의하거나 경찰을 부르거나 그 남자를 때리는 등의 격한 리액션을 보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요. 제가 유약한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데도요. 어린 시절에는 뭐가 뭔지 잘 몰라서, 당황스럽고, 얼떨떨해서, 상대는 어른이고 나는 어린애라서, 친족간이라서, 이때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 구체적으로 교육(네. 이런 건 교육이 필요한데 미성년자 시절에는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았죠. 대학 올라와서 여성학 세미나를 듣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받지 못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겪은 성추행은 하필이면 밥그릇이 걸린 문제라 이 일을 회사 내에서 시끄럽게 만드는 순간, 제 책상이 치워지거나 최소한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데 너무나 골치아파질 게 뻔해서 가만히 있었고, 그러고도 속병이 나서 끙끙 앓다가 몇개월 뒤에 그냥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습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이런 경험들 와중에도 남성 일반에게 혐오감을 품지 않고 연애 잘하고 잘 살아온 제가 대견합니다. (저기 아래에 보니까 어떤 남자분은 25년 넘게 비자발적 동정이라고 다른 남자와 자는 여성 일반에게 폭력적인 혐오감을 표출하시던데 말입니다...-_-)


제가 처음으로 약하게나마 반항해본 게 대학생 때였는데, 상대는 제 허벅지를 집요하게 건드리던 술취한 중년남자였고 저는 "그만 좀 하세요.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르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나름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말했죠. 그렇지만 상대 남자는 이 미친년이 생사람 잡는다고 펄펄 날뛰었고 저는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으로 옆칸으로 옮겼는데 그 칸까지 따라와서 제게 삿대질을 하고 "이걸 콱..."하는 식으로 주먹을 위협적으로 쳐들고...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제게 더 공포스러웠던 것은 주변에 사람도 제법 많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는 사실이었어요. 결국 그 남자는 저를 비웃으면서 다음역에서 유유히 내렸고 제 기분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사람들이 구경만 하지 안 도와준다. 무관심하게 지나친다. 이 경험은 그후에도 또 비슷하게 이어졌는데...


직장인이 되어서입니다. 퇴근길에 술취한 중년 남자가 제 앞을 막아서며 자기랑 한잔 하자고 제 손목을 아주 강하게 잡더니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겁니다. 통행이 많은 시내 번화가였고.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저는 옷차림이 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그 남자의 실랑이를 보면서도 아무도 안 도와주더군요. 남자든 여자든. 저는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했지만 당장 5초 후에 경찰이 나타나는 건 아니지요. 제가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경찰과 통화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제 뺨을 때리더니 이런저런 욕을 내뱉으며 다른 길로 가버렸습니다. 경찰은 10분 뒤에 나타났고요. 경찰이 오기 전에 제가 뺨을 맞은 것과 이런저런 충격이 겹쳐서 멍하니 서 있는데 어떤 남자가 슬쩍 다가오더니 "아가씨.. 아까 그 사람. 남자친구 아니었어요? 난 애정싸움인지 알았지..."하고 말을 거는 겁니다. 경찰이 왔을 때 그 남자가 증언 비슷한 것도 해주었고요. 


글쎄요. 제가 그때 저를 때리고 희롱한 그 남자 뒤를 쫒아서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경찰이 올 때까지 몸싸움을 벌이는 게 옳았을까요? 저는 근육이 없고, 육체적 완력이 정말로 약한 편에 속하고 그때 제 손목을 잡고 놓지 않던 그 남자 손아귀의 힘이 너무 대단해서 무서웠습니다. 뼈 하나쯤 부러질 각오 안 했으면 그를 잡아두지 못했겠죠. 나중에 보니 잡혔던 손목이 새빨갛게 부어있더군요. 무엇보다 저는, 이 남자를 (폭력의 무서움을 무릅쓰고 홀로) 잡아서 경찰에 인계해봐야 그가 '벌금 십여만원' 수준으로 끝날 거라는 사실을 직간접적 경험으로 너무나,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저를 때린 남자에 대한 분노보다 더 컸던 것은 위험에 처한 저를 보면서도 번화가 길거리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예전의 사람 많은 지하철 내에서처럼요.


그런 식으로 '고발' '고소' '폭력적 리액션'보다 제가 살아오면서 서서히 체득하게 된 것은 '무감각함'과 '효율적인 회피'였습니다. 지금도 바바리맨을 보지만 이제는 그냥 전봇대처럼 길가의 풍경일 뿐이고요,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다가올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부류인 걸 알기 때문에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냥 빠른 걸음으로 거길 지나쳐버립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성추행의 기미를 감지하면 조금 큰 동작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장소로, 가급적이면 다른 칸으로 옮깁니다. 그것도 안 되면 내릴 정거장이 아니라도 내렸다가 다음 차를 탑니다. 회사에 10분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요. 일 관계에서 성추행이 있어도 그게 언어적인 수준으로 그치면 그냥 못 들은 척 넘기고, 육체적인 무언가로 갈 만한 소규모 회식이나 술자리는 전혀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상황을 만납니다. 나이들고 외모가 바래도 여전히 여성에겐 그런 상황이 찾아오더군요. 작년에도 두 번 있었고요. 둘 다 술 취한 남자였습니다. 하나는 한국남자. 하나는 외국남자. 이제는 그 사람들 자체에 대해서 상처를 받지는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를 궁극적으로 상처입히는 것은 그 사실을 두고 반응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뻔히 저와 그 남자를 바라보면서도 저를 도와주지 않던 사람들, 제가 겪은 봉변을 이야기했을 때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하던 어머니, 제가 당한 성추행을 이야기했을 때 "바보같이 반항을 제대로 안 한 네 책임도 크다"라고 말한 남자친구. (결국 이 남자하고는 그래서 헤어졌습니다)


이번 신도림 성추행범 뉴스를 보면서도 화면 속 그 남자에게 분노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그래. 저 놈 곧 잡히겠지. 얼굴도 팔렸으니..하면서 고소함은 있었지만) 그 뉴스의 댓글이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이 뉴스를 퍼온 게시물에 달린 댓글에서 남자들이 "술에 떡이 될 정도로 마시는 여자도 잘못..." 운운하는 댓글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더군요.


    • 반대편에서 걸어오며... <--- 저도 당했습니다. 고등학생때요.
      건너편에서 어깨동무 한 남자 셋이서 뭔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아주 늦은 시각이었어요) 제 쪽으로 무단횡단을 하더니 그 짓거리를 하고 갔어요.
      저는 너무 벙쪄서 제자리에 얼어붙은듯이 서 있었고, 그런 멈춰서 있는 저를 보며 가해자가 "뭘 가만히 서 있어! XX년아!" 하면서 욕을 하고 호방하게 웃더군요.
      집에 어떤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어요.
      오자마자 책가방을 맨 채로 얼마나 울었는지.. 그 때부터 엄마가 그 시간에 절 데리러 나와계셨어요.
      하지만 엄마도 그런 나쁜놈들을 만날까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요.
    • 나이들고 외모가 바래도 여전히 여성에겐 그런 상황이 찾아오더군요.
      -> 나이가 들고 외모가 바랬지만 여전히 성추행을 당한다는 그런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애시당초 성추행 피해자의 나이나 외모는 성추행 사실과 관계가 없어요. 이런 식이라면 종종 등장하는 '너 같이 못생긴 걸 내가 건드렸겠냐'는 피의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뿐이죠. ; 혹은 할머니가 성폭행 당하고서 고맙네 총각 했다는 식의 불쾌한 유머 이야기(유머라고 합디다)를 성립시키기도 하고요. 그런 것에 노출이 자주 되어서 방어적인 의미로 '내가 나이도 들었고 외모도 바랬지만'이라는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 저는 좀 다르게 읽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추행 피해자의 나이나 외모는 관계가 없음에도 그런 쪽으로 몰고가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 무지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라 생각했습니다.
    • 정말 여성으로서 화가나는 현실이네요.
    • 음... 좀 된 일이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은행 ATM기 부스에서 조금 장애가 있는 남성에게 성추행당했던 여성이 그 남성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그 남성이 도망갔던 경험담을 듀게에 올렸는데, 댓글에 대상 남성이 육체적인 힘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 다행이군요, 하고 한마디 남기신 분이 있더군요. 소름이 끼쳤어요.

      저런 넘들도 케바케라서 항의하면 우물쭈물 도망가는 넘도 있지만 내가 뭘 잘못했다며 쫓아오는 넘도 있죠. 길거리에서 성추행당하는 상황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그넘이 쫓아오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 부디, 가만히 있지 말라고 쉽게 말씀하지는 마세요.
    • 옷차림이 야하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이들고 외모가 바랬지만,

      이런 말을 먼저 덧붙이게 되는 상황을 참 많이 겪어봐서 저도 모르게 나왔나 봅니다. 남자 경찰이 신고를 한 피해당사자인 저에게 그런 걸 취조하고, 직장의 남자상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남자친구에게, 그냥 친구남자에게 그런 식의 질문을 먼저 받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제가 치마를 입은 것과 성추행 간의 연관관계를 묻는 경찰이 2000년대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지만요.
    • 음 글고 오늘 하나 배워갑니다. 옆에서 누가 불쾌한 상황을 당하고 있을때, 웅성웅성도 도움이 된다.
      또 뭐가 있을까요?
    • 안좋은 경험을 많이 하셨네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남녀가 실랑이를 하는 장면을 보면 처음부터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아는 사이겠거니 생각합니다. 다들 제 갈길 바쁜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다툼에 굳이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죠. 실제 겪으신게 사적인 다툼이 아니지만 일반인들은 평소에 그런 상황을 접해볼 일이 거의 없을 뿐더라 실제로 사적인 다툼이 더 많이 목격되는게 사실이거든요. 여기에 방관자 효과도 있을거구요.

      그러니 그런 일을 겪을 땐 주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확실히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해도 선뜻 나서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효과가 더 있지 않을까요.
    • mirotic / 맞아요, 하도 그런 것에 훈련이 되니 자기가 먼저 방어적으로 그런 말들을 붙이게 될 수 밖에 없는 게 참...
    •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순간엔 멍해지죠. 화가나고 당황스러운 것도 조금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하고 생각하지만 후에 또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똑같은 타입-_-이 아니라면 그 땐 또 당황해서 정지 상태... 전 그렇더군요.
    • 제일 화가 나는건 아무 저항도 못한 여자를 향해
      자기도 좋았으니 가만 있는거 아니냐?하는 개드립을 보는 겁니다.
      그런 인간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도 똑같이 성추행 좀 당했으면 좋겠어요.
    • 아주 어렸을 때, 동네에 두 살 남짓 여자아기를 성폭행한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그 때 조금 남상이었던 제 외모를 이용해서 머리를 짧게 깎게 하셨다고 해요. 옷도 그냥 대충대충 오빠 거 입히구요. 이런 까닭으로 그렇게까지 치떨리는 별로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머리가 길었을 때 육교에서 30대 직장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계속 술 한 잔 하자고, 열심히 뛰었죠. 그리고 고등학교 땐 산책하고 있는데 어떤 양아치가 돈 뺏으려고... 소리 한번 지르고 미친듯이 달리고 그 새끼는 욕하면서 오토바이 타고 달아났어요. 그 새끼 다시 올까봐 다른 집 밑에 숨어서 계속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어떤 여자분이 이상하게 보더니 계속 내가 울고 있으니까 손 잡고 집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그 분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까 밝혔듯 생긴 것이 남상이고 그 후로 거의 줄곧 머리가 짧았던데다 옷도 그냥 껄렁하게 입고 다녀서, 최고의 보신책이더군요, 밤거리에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기 위한. 물론 나란 사람이 여자라고 일말의 의심도 해주지 않는 이게 보신책이라는 게 슬프지만요.
    • 왜 안도와주지 물어보시면 별거 없어요..

      1 방관자효과
      2 한번두번 도와줬는데 그게 졸라 피곤하고 오히려 나에게 피해가 오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거나
      3 처음 도와줄때의 망설임 뻘쭘함 등등등

      뭐 이정도겠지요?

      솔직히 지금 이글을 보는 남자 여자를 떠나서 주위에 저런 상황이 일어났을때 도와줄수 있는 분 별로 안계실껄요?
    • 안 도와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회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지하철에서 두어번 싸우는 사람을 말리고, 여고생인지 여중생인지 추행하는 사람을 말려본 경험에 의하면, 폭력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즉 누가 잘못했어도 꼭 말려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섣불리 나서기 힘들다는겁니다. 님이 이미 다른칸으로 옮겼을때 그리고 그 인간이 따라와서 욕하는 상황이 되면. 본인은 모든것을 다 알고 있고 자기가 약자이고 피해자라는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이 사람이 잘못을 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모르고, 저 사람이 부부관계인지 자매인지 형제인지 아는 사람으로써 말다툼 하는건지 전혀 눈꼽만큼도 알 수 없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여학생 둘이 앉아있었고-제 앞 좌석에-그 사이에 술취한 중년 아저씨가 떡하니 앉았습니다. 그리고 괜히 여학생들을 욕하는데 여자애는 좀 날라리인지 말대꾸를 하더군요.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운좋겠도 종착역 쯤 되서 그 아저씨가 애들 멱살을 잡더군요. 그때 저를 비롯한 5~6명의 남성들이 와서 도와줬습니다. 저는 씩씩하고 용감할 줄 알던 애들이 금새 울음을 터뜨리면서 오열을 하는것을 보고서야 아 생각보다 애들도 힘들었구나 하는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중간 중간 애들이 앞에 있는 저를 쳐다봤는데 그게 쪽팔려서 눈치를 보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도와달라고 차마 입을 열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어째거나 저를 비롯해서 4-5명의 남자들이 순식간에 뛰어 오는것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척 하고 있는게 아니라 저처럼 끊임없이 주시를 하고 있었다는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중에 하나는 아까부터 저 사람이 계속 애들한테 시비를 걸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라는말을 내뱉고 경찰한테 증언도 하는걸 봤습니다. 결국 도와줄 타이밍이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는것을 증명하는거죠. 저도 만약에 중간에 도와달라고 했다면 잽싸게 응했을겁니다. 다만 내가 과연 도움이 필요한건지, 단지 말싸움 뿐인데 곧 사그라들텐데 괜히 나서서 큰일 만들 필요 있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특히 마지막에 이 소란을 지켜본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는 중년 남성이 괜히 신중한 척 하면서 '저 아저씨가 잘못했는지 어땠는지 모르는거 아니냐. 애들이 잘못했을 수 도 있다'라는 식으로 편을 들려는 사람도 봤습니다. 아마 저처럼 계속 지켜보고 있어도 저런 엉뚱한 사람때문에 피박을 쓸 수 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술취한 아저씨와도 맞짱 뜰것 같은 여자애는 어떤 아줌마가 집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고, 그 아저씨는 경찰한테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뭐가 아쉬운듯(?) 술취한 아저씨를 옹호할려는 또 다른 아저씨는 여전히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볼 때는 여학생 때문에 생긴 불상사라고 생각하는 듯 하더군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게 아닙니다. 다만 도와줘야 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거죠. 본인은 확실한 상황이지만 주변인들은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이걸 큰 소리로 말해서 주위에 알려주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도와줄 타이밍을 계기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 체구도 작고 귀엽게 생긴 제 친구는 번화가 한가운데서 갑자기 술 취한 아저씨가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더래요.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스쳐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았는데 그 사람은 제 친구 손길을 떼어내고 도망갔답니다. 주변에 신체 건장한 남자들 많았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결국 도와준 건 교복 입은 학생들(여학생 셋, 남학생 둘)이었대요. 이 얘길 듣고 나니 아, 결국 믿을 건 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는 거 머릿속으로는 아는데, 정말 몸이 안움직여요. 상대가 어떤 종류의 미친 인간인지 알 수 없다는 공포심과, 이런 일의 특성상 상대가 잡아떼면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등...

      저는 아침 출근길에 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저는 가해자의 눈은 물론이고, 저를 만져대는 손 자체를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너무 무서워서요. 평소에도 남들보다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인데, 그런 상황이 닥치니 정말 아무런 용기가 안났어요. 조용히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옷차림이 야하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이들고 외모가 바랬지만 - 이런 말을 붙이게 되는게 이해가 됩니다. 피해자들에게 자꾸 책임을 전가시켜요. 이런식으로 설명을 붙여야한다는게 답답할뿐이죠.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걸' 드립을 당해봤는데 정말 기분 더럽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니었어요. 반사적으로 당혹스러움과 짜증을 담아서 쳐다본 것 뿐인데 길길이 날뛰더군요. 그때까지만해도 실수였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걸 보는 순간 노인공격...은 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말이 쉽지 성추행당할때 그 즉시 저항하거나 따지는거 어려워요. 두고두고 곱씹으며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넘기지않겠다 생각하지만 막상 닥치면 그게 또 맘대로 안되죠. 옆에서 도와주면 좋은데 확실히 남의 일이라 판단이 쉽지않아요. 대놓고 지하철 성추행범 같은 경우엔 티나면 실수인척 밀친다거나 구두로 살짝 밟은 적은 있는데 그 이상의 적극적인 말이나 행동은 저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 심리학 책에도 나오는 지목 효과(제가 붙인 겁니다.; 위기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딱 집어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 얘기가 일리는 있는데 항상 들어맞는건 아니더군요.
      이런저런 성추행 한 번 안 겪어본 여자들이 없다보니 경험담 얘기가 많이 들리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특정 개인을 지목을 해도) 도움을 요청해도 안 도와주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단순한 싸움으로 생각하거나 연인 관계로 치부해서 '남의 집안 일'에 관여하길 귀찮아하며 지나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랍니다.
      원글쓴 분 경우처럼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상처에 딱지가 내려앉고 떨어지면서 '무덤덤함'과 '효울적인 회피'를 체득하게 되는 거겠죠.
    • 이게 또 도와줘도 해당 피해자 분이 사라지셔서 목격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더군요;
    • 다른 사람 일에 무관심하고 연루되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 늘면 개인에게 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요즈음 추세가 그런가 봅니다. 왠만하면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눈 앞에 있는 노약자를 외면하고 당당한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저 사람을 도울 자리에 있더라도 그러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보험 든다 생각하고 돕는 것이 상대를 돕고 나를 돕는 일이 될텐데 말입니다..
    • 해당 피해자가 사라진 경우.... 저도 그런 적이 있는데..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안 뺏기려고 실랑이 하다가 어느 남자분이 도와 주셨는데 소매치기는 도망가고 남자분은 정말 너무도 열심히 쫒아 가시는데 제가 따라 갈수도 없이 멀어져서, 또 가슴이 진정이 안되고 무서워서 집으로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가방을 제가 뺏기지 않았고 소매치기는 빈 손으로 도망간 터라 나중에 잡고 나서 어찌되었을지 모르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분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네요. 결국 그 남자분 도움으로 제가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요.
    • 그 소매치기 쫒아간 남자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쫒아가보니 가방도 없고 피해자도 없고 소매치기와 단 둘이 딱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새벽 1시쯤에 쓰레기 버리러 가다가 어떤 중년 남자가 여자가 담배 핀다고 대학생 정도 되보이는 여자를 때리려고 하길래 가서 말리다가 그 놈과 시비가 붙었었는데 나중에 보니 여자애가 그냥 사라졌더군요. 주위에 사람도 몰려있었고 어느새 제가 그 놈과 싸움이 난 것처럼 돼서 뻘쭘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 그냥 큰 일 없이 마무리됐습니다만.
      여자분들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저같은 경우에도 저 일 겪고 난 후에 남의 일에 끼지 말자 이런 생각은 들더군요.
    • 글과 댓글을 읽으며 느낀건데, 어떻게 도와드려와 되는 걸까요? 사과식초님 말씀처럼 그런 상황에서 도와줄 명분을 찾는 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잡배 / 안 그래도 다른 커뮤니티에서 불량배에게 당하던 여성 구해주려고 싸움 붙었는데 경찰 왔을 때는 피해여성은 도망가버리고 없고 상대놈은 저놈이 먼저 쳤다고 주장해서 결국 단순폭행사건으로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 많다고 ... 합의하느라고 생돈이 깨지던가, 그마저 안되면 붉은 줄이 그어지던가...(고시준비하던 분인데 그걸로 꿈도 접었다나요)

      자기 주변에 그런 경우 많다고 솔직히 나서봐야 좋을 거 없으니 외면하라는 댓글이 막 달리는데 ㅎㄷㄷㄷ 하더군요. 남자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피해여성이야 일단 도망가는게 인지상정이고, 정신추스리고 나면 그냥 묻어두고 싶은 심정에 경찰 찾아가거나 하는 번거로운 일까지 하고 싶지 않은 분이 많을테니깐요. 제가 그 글 보고 내린 결론은 일단 누군가 날 그런 상황에서 도와준 남자분이라면 도망가서 경찰 부르고, 해결될 때까지 꼭 자리를 지키자 이거였습니다.
    • 제 경우에는 저보단 어머니가 당하신 건데. 어릴적 맞벌이, 주말부부를 하셨어요. 주말이 되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우리 남매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오시던지, 어머니가 저만 데리고 (위의 언니, 오빠들은 꽤 커서 집에 놔두고) 아버지가 자취하시는 관사로 가시던가 하셨죠. 가끔 표를 잘못 사서 어머니와 버스 옆자리에 앉지 않고 떨어져 앉을 때가 있었는데... 어느 주말인가 어머니 옆에 앉은 젊은 남자가 신문지를 무릎에 덮고는 그 긴 시간 내내 어머니 허벅지를 주무른 모양입니다.

      너무 어려서 버스가 잠깐 휴게소에서 쉴 때의 어머니 표정을 이해 못했어요. 얼마나 곤혹스럽고 수치스럽고 무서우셨을까요? 헌데 제가 어머니라고 해도 그 젊은 남자보고 소리치거나 빰을 때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명색이 공무원 신분의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으신 분이니 그런 일로 시끄러웠을 때 어느 쪽이 손해인지 잘 아셨을 거고 (80년대였습니다. 성추행은 문제있는 여자들이나 당하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시절이죠) 뭣보다 유치원 다니는 딸네미가 한 버스안에 있는데 섣부른 행동은 절대 못하셨겠죠

      이 모든 건 나중에 나이들고 나서 제가 깨달은 거고, 그땐 엄마가 멀미를 심하게 하시나? 이렇게만 느꼈어요.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가 계시는 관사에 도착하셔서도 그 일에 대해서 입도 벙긋 안하셨고 저는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나중에....제가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우연히 티브이에서 관련 시사프로를 할 때 (아마 직장내 성희롱 관련) 아버지가 저런 건 여자들도 문제여서 당하는거다 식의 멘트를 하자 어머니가 그 옛날일을 꺼내신 거죠. 순간, 마치 닫혔던 기억이 열리듯이 콸콸...하고 그 당시 상황이 기억나는 겁니다. 아앗, 그때 그 인간이 그 짓을 했구나 하구요. 제가 굳어있는 동안 남의 일처럼 얘기하던 아버지는 표정이 뻣뻣해지시더니 꼬치꼬치 캐물으시더군요.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고 분노.... 속으로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는 짐작이 갑니다만 다 지난 일이니 그때 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맘아픈 건 10년이 넘은 때에도 정확하게 그 당시 일을 말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때 그 일이 어머니에게 정말 더러운 기억이었구나 하는 겁니다. 남편에게도 어린 자식들에게도 말 못하고 속으로 삭이신 거겠죠. 재수가 없었네, 그냥 잊어버리자 하구요. 그거 생각하니 넘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ㅠㅠ
    • 정말 여성으로서 화가나는 현실이네요. 22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같은 강도의 고통과 후유증으로 되돌려주고싶어요. 본문 글 쓰신분과 더불어 덧글로 안 좋은 경험을 토로하신 분들 모두에게 위로의 마음 전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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