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글이라 어설프지만 번역해 봤습니다.
Madonna's Groundbreaking 'Truth or Dare' Helped the LGBT Community at Its Most Vulnerable Time
http://www.huffingtonpost.com/daryl-deino/madonnas-groundbreaking-t_b_9238490.html
1991년 5월 24일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화창한 금요일이었고 나는 친구들과 일리노이주 스코키에 있는 Old Orchard Theater에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보러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도 마돈나의 열성 팬으로 남아있던 건 나뿐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돈나를 괜찮게 봤었지만, 다섯 달 전 MTV에서 방송 금지당하고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Justify My Love 뮤직비디오에서 마돈나가 레즈비언 키스를 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른 오후 극장에 가는 길에 우리는 그 이야기를 했다.
“맞아, 그 뮤직비디오 너무 역겨워” 나는 말했다. 내가 벽장 속에 숨어있는 동성애자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면서. 함께 있던 친구들 다섯 명 중 적어도 두 명 또한 나와 마찬가지였다. 다들 마초 이성애자 남자인 척 연기하고 있었다.
애매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리뷰를 받은 영화였다. 게다가 그 당시 마돈나가 나를 살해하려 해도 나는 용서했을 것이다. 때는 1991년, 마돈나가 우주의 여왕이던 시기였다. 인터넷이 보급된 시기도 아니었지만, 마돈나는 라디오 방송, 음악 차트, 보수주의자들의 항의시위, 잡지 표지, 그 밖에 모든 것들을 지배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특히 일본 공연에서 마돈나가 음향 관련 문제로 뭔가를 요구하고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거든요!”하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 당시 마돈나의 나르시스트적 행동과 오만함은 매력의 일부였다.
마돈나의 화려한 남자 댄서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동성애자들을 악으로 간주하던, 매우 보수적인 당시 미국의 환경 때문에 불편했던 것일까? 내가 남들과 다르고 (당시 많은 게이들이 그랬듯) 자살할 작정이 아니라면 조만간 그런 차이점을 직시해야만 한다는 걸 마돈나의 댄서들이 상기시켰기 때문에 불편했던 것일까? 내가 커밍아웃한다면 이 남자들이 나를 대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편했던 것일까?
다른 선정적인 장면들도 있었지만, 혐오스럽다기보단 장난스러운 장면들이었다. 그래도 최소 열 명은 극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마돈나의 댄서 올리버가 투어에 참여하는 댄서 중 유일한 이성애자라서 겪는 어려움을 말하는 장면 뒤에, 내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은 장면이 이어졌다. 그건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 전혀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퍼레이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수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 참여한다는 건 몰랐다. 다른 동성애자들 수천 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퀴어다. 우리에게 익숙해져라! We're here. We're queer. Get used to us!”하고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 옆에 마돈나의 댄서들이 서 있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이 있었다. 화려한 사람과 수수한 사람,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도발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과 보수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를 대표했다. “저기에는 나도 낄 수 있겠어” 나는 생각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한쪽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끼곤 바로 닦아냈다. 그 장면에 감동한 걸 보고 친구들이 내가 게이라고 의심하지 않도록. 다리 쪽에서부터 강렬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여전히 마돈나의 댄서들과 나는 닮은 점이 없다고 느꼈지만, 이제 그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그들은 내게 남들과 달라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LGBT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도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십 대 시절을 보낸 게 아니라면 내가 느낀 감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그리고 정말이지, 매우 큰 결과들이 있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미국 중서부 영화관에서 본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스코키가 보수적인 동네는 아니었지만 (1992년 선거에서 대다수 주민들이 빌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다), 90년대 초반은 “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악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영화에는 두 명의 남자 댄서가 서로 키스하는 장면도 있었다. 관객들 사이에 퍼지던 충격과 공포를 기억한다. 영화관에 남아있던 관객들은 볼 거 못 볼 거 다 봤다고 생각했다. “역겹다” “구역질 난다” “혐오스럽다” 심지어 예수님을 찾는 말까지 들려왔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나의 동료들을 향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진실 혹은 대담’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본 최초의 주류 게이 영화였다. 이 영화 이후로 동성애 테마의 영화와 티비 쇼들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로잔느Roseanne’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와 이후 동성애, 섹스 테마의 프로젝트들이 팬층을 분리시키면서 마돈나는 커리어에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그 시기에 자랐던 많은 게이들은 이 영화가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걸 인정할 것이다. 물론 마돈나의 LGBT 액티비즘은 ‘진실 혹은 대담’으로 끝나지 않았고, 엘렌 드제네레스가 커밍아웃하고 역사를 바꾸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에 이런 장면들을 내놓은 공이 마돈나 못지않게 댄서들에게도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들이 대중 문화의 역사로 남아 LGBT 수용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걸 그들은 몰랐다. 이 영화가 얼마나 논란을 일으킬지 그들은 몰랐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번 주에 공개된 ‘Strike a Pose’라는 다큐멘터리에 ‘진실 혹은 대담’에 나왔던 마돈나의 댄서들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Gabrielle Trupin을 제외하고) 등장한다.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게이들이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데에 마돈나의 댄서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투어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투어 이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들이 그렇듯, 마돈나의 댄서들도 유명세가 사라지고 난 뒤 어려움을 겪었다. 몇몇 댄서들은 영화가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마돈나를 고소하기도 했다. 소송은 1994년 해결되었지만, 그들이 동성애자 인권에 미친 영향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