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교토 여행, 동주 시비, 혼자 하는 여행의 의미는 (사진 많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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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관에 들르는걸 왠지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진을 찾아오고 나니 비로소 지난 번의 여행이 마무리 되는 느낌입니다.
5만원어치 넘게 인화를 했음에도 제대로 찍힌 사진은 거의 없어 슬프지만, 그래도 약 이십 년만에 장롱 속에서 나와 제 할 일을 해준 1983년형의 니콘 똑딱이 카메라가 참 고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은 6일 간의 여행을 곱씹어 봅니다. 십대 시절부터 주욱 독신주의자(?)였고 이제는 뭐든 혼자서 알아서 하는게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혼자서 가는 것 또한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는 좀 다른 기분이어서, 전혀 설레지도 않고, 일본이야 여행하기 쉬운 곳임에도 모든 것을 혼자서 알아보고 하는 그 과정이 참 버겁게 느껴지더군요. 춥고 해는 졌는데 캐리어를 덜덜거리며 초행길을 더듬고 있을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오는.

자의식 충만하고 아는게 없어 오히려 용감했던 시절에는 하나씩 스스로 계획하고 해나가고 하는게 제일 즐거웠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좀 지쳐버린 듯합니다.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무서운 곳이고, 그 속에서 객관적인 나라는 존재는 병이나 정쯤 되는, 한없는 약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무렵부터 뭔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는게요.

여권을 챙기다가 문득 맨 뒤의 비상시 연락처를 적는 페이지를 펼쳤는데, 앞으로 몇 년 후나 십 수년 후에는 여기에 누구의 연락처를 적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좀 멍한 기분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의 연락처가 적혀있지만 두 분 중에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다른 한 분도 이젠 오히려 내가 보살펴 드려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형제도 결혼을 기점으로 조금씩 남처럼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는데, 미래의 어느 날 어느 낯선 곳에서 죽어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근데 뭐 상관없지 않을까. 죽지 않고 중상이라던가 그러면 그때는 정말로 곤란할 것이다. 어떡하지, 등등. 얼마전 첫 아기를 낳아서 키우느라 한창 고생하고 있는 친구가 혼자인게 부럽다며, 마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라고 하더군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혼자라서 할 수 있는 것만큼 혼자라서 할 수 없는 것도 많은데, 예전엔 그걸 미처 몰랐네.

출발부터 뭔가 에너지가 바닥이었던데다 출국 이튿날 전화기까지 잃어버리는 등, 좌충우돌의 연속인 가운데 어쨌든 지도를 보며 더듬더듬 돌아다녔습니다. 마치 양동이로 쏟아부은 듯 어딜가나 북적이는 중국인들에 치이면서, 어리버리한 탓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행인들에게 길을 묻고, 보이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뻔하여 무미건조할 뿐이었던 관광지를 미션 수행하듯 하나씩 돌면서,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붕 떠버린듯한 이방인의 심정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돌아다녔던 나의 내부의 문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껏 놀러가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바보라니)



- 귀국하는 날 오전에 도시샤 대학교에 들렀습니다.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보기 위해서요. 시비 옆에 방명록 역할을 하는 듯한 노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써놓은 글을 보고서 <동주>라는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오래된 학교 답게 아담한 캠퍼스 안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부족해 여유있게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떠나는게 아쉬웠던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학생회관에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한 잔 사들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조조로 <동주>를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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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에서 묵었던 숙소는, 지어진지 100년 가량 된 마치야(町屋; 교토 전통가옥)를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유형문화재로 등록한 집이었습니다. 젊은 주인 아저씨 혼자 운영하시는데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면서도 꽤나 쿨한 분위기를 풍겨서, 다소 낯을 가리는 듯한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호감을 주기도 하는 분이었습니다. 뭐랄까, 사는 스타일이 참 부러워 보였던 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가까운 삶을 살기란 좀처럼 어렵다고 느끼는데, 그렇게 사는 듯이 보였거든요.   

집 한 채를 혼자 돌보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 오래된 목조건물을 매일 어찌나 깨끗하게 닦고 가꾸는지, 구석구석의 청결함이나 관리상태는 감동적일 정도였습니다. 전통가옥이 관리가 힘들다 보니 주변의 다른 집들은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거나 새로 지었거나 한데, 그 근방에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거의 몇 안되는 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놓여진 정갈한 소품들을 보면 미적인 감각도 상당하고, 이국적인 물건들도 있어 본인도 여행을 많이 다니는 분인듯 했습니다. 얘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말이 안통하는데다 왠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서, 그냥 마주치면 인사만 열심히 했네요.  

요금제도도 간단해서, 성수기든 비수기든 1인실이든 2-4인실이든 무조건 한 사람 당 1박에 3천엔. 목조건물 특성상 머물기 불편한 점은 있지만 -냉난방이 취약, 방음이 거의 안됨 등- 그런 점이 다 상쇄될 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었습니다. 사진을 제법 많이 찍은 것 같은데 제대로 나온게 없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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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의 심포니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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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히메지성..   

수백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고 들락거리며 나름의 화려한 역사들을 이루었겠으나, 지금은 유난히 낮은 입구나 작고 가파른 계단에서 옛 사람의 흔적을 느낄 뿐입니다.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화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소박함마저 느껴지는 중세시대의 성은, 겨울의 계절감이 더해져 마치 드러난 백골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차역에서 성 입구까지 걸어가고 있으면 지방 중소도시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우리나라 관광지에서도 흔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조금은 촌스러우면서도 친근한 풍경들이 불어옵니다. 다시 천천히 조용히 그 길을 걸어보고 싶지만, 벛꽃피는 봄이라도 오면 아마 인파에 떠밀려서 다녀야 하겠지요.          

 












    • 옛 도시의 향취가 절로 묻어나오네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

      • 기분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_^

    • 지난주 출발 전에 이 글을 봤더라면 교토코엔 앞 맥도날드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도시샤대학교에 들어가봤을텐데 아쉬워서 눈물이 나네요.

      그리고 사진 멋진걸요! 역대 봤던 금각사 사진(과 실물로 본 것을 포함하여) 중 단연 으뜸입니다!
      • 에구, 바로 앞까지 가셨던건데 제가 다 아쉽네요. 사진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토 가기 전엔 금각사가 제일 궁금했는데 막상 가서 보면 금각사가 제일 별로 였어요... 비오는 히메지성이 넘 예뻐서 한참을 보고 있던 생각이 나네요...

      • 금각사는 유명세에 비하면 그냥 그렇죠? 히메지성은 보러 가느라 하루를 다 썼지만 가길 잘한 것 같아요.    

    • 멋져요. 영화 동주와 윤동주 평전 읽으니 교토 가고 싶은 생각이 났는데 다녀오셨네요.

      • 숙소였던 다다미 방의 작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으니 이런 방에서 시를 쓰곤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더군요. 평전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 교토 올해는 한번 가봐야지.. 마음만 먹고 책사고 일어공부하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ㅠㅠ



      • 겨울임에도 관광객이 정말 많더군요.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 언젠가 다시 한 번 가고싶지만 구경하기 좋은 성수기에는 왠지 갈 자신(?)이 없어졌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생각하니.. 저는 십년 전에 일본어 학원 3개월 다닌 실력으로 돌아다녔는데, 급하니까 신기하게도 잊고 살았던 단어가 막 나오기도 하더군요.ㅎㅎ   

    •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걸까 라는 생각..... 


      이게 참 묘하게 좋은 느낌입니다. 멋진 여행 마치고 돌아오셨네요... (질투가 화르륵...ㅋ)


      좋은 글+사진 감사합니다~

      • 부끄러운 글인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 저는 비자발적 독신이지만 완전 공감하며 글읽었습니다.사는게 겁나서 몇년 미친듯 몸부림쳤는데 이젠 그리 괴로워하는것도 부질없어서 내려놨어요.일생이란 여행 기왕온거 조금이라도 더 즐기려구요.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쨌든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네요. 같이 힘냅시다!  

    •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금각사, 히메지성, 도시샤 대학...다들 아담하고 깔끔하니 아기자기하군요. ( 히메지성은 동아시아의 목재건축 양식에 중세 서양식 축성법이 합쳐진 퓨전건축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더군요)

      • 퓨전 건축물이었다니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건알못'이지만 두꺼운 회벽이라던가 전체적인 모양 등이 중국이나 한국식과는 다른 것 같아 좀 궁금했거든요. 담벼락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반복되는 조그마한 창문 같은 구멍이 있는게 재미있었어요. 

    • 오오 숙소 정보 너무 반가운데요. 혹시 방콕여행 계획이 있으심 답례로 방콕의 조그맣고 멋진 숙소 하나 알려드릴게요.




      저도 혼자 다니고 하는 거에 너무 익숙해 있다, 간만에 취향이 180도로 다르지만 애증의 관계인 손님들(네... 가족입니다.ㅠㅜ)을 뫼시고 '가이드질'을 4일간 하고 나니 레드불을 원샷해도 눈이 떠지지 않던 와중에 '남의 조용한 여행사진'에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휴우-

      • 숙소 홈페이지 주소 쪽지로 드렸는데, 사실 저도 검색 몇 번으로 알았을만큼 제법 알려진 곳이라, 정보라고 할 것까지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언제 방문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방콕의 조그맣고 멋진 숙소는 꼭 알고 싶어요! 감사해요 히히^_^ 갑자기 신나네요. 


        가족들 여행 가이드 하는게 참 보통 일이 아니죠.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 아니 앞부분에 왜 이렇게 슬픈 얘기를 하셔서...제가 마음이 아프자나욧... 아~~ 왜 인간은 태어나서 외롭게 살다가 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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