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먼 사람에게 外
발렌타인 데이가 가기 전에 사랑의 시를 몇 편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 사랑 혹은 그리움을 노래한 시를 몇 편 찾아왔어요. ^^
먼 사람에게
박목월
팔을 저으며
당신은 거리를
걸어가리라.
먼 사람아.
팔을 저으며
나는 거리를
걸어간다.
먼 사람아.
먼 사람아.
내 팔에 어려오는
그 서운한 반원
내 팔에 어려오는
슬픈 운명의
그 보랏빛 무지개처럼......
무지개처럼
나는 팔이
소실한다.
손을 들어
당신을 부르리라.
먼 사람아.
당신을
부르는
내 손 끝에
일월의 순조로운 순환
아아
연한 채찍처럼
채찍이 운다.
먼 사람아.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어떤 적막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 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며 죽을 수 없었다
우리는 코피가 흐르도록 사랑하고
코피가 멈출 때까지 사랑하였다
바다가 아주 멀리 있었으므로
바다 쪽 그 집 벽을 허물어 바다를 쌓았고
강이 멀리 흘러나갔으므로
우리의 살을 베어내 나뭇잎처럼
강의 환한 입구로 띄우던 시절
별의 강줄기 별의
어두운 바다로 흘러가 사라지는 새벽
그 시절은 내가 죽어
어떤 전생으로 떠돌 것인가
알 수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
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
내려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릴는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이거 한 줄로 끝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하고 싶은 말 차마 다 하지 못하고 삼키며 써야 시가 된다던데요. ^^
조금 더 토로하는 시를 원하신다면...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그렇게 아쉽다면, 사랑하는게 무슨 죄냐? 이거 한 줄 덧붙임
김용택 시인께서 다른 사람 화상 입히지 않도록 불조심하시랍니다. ^^
찬비 속의 불길
김용택
나는 지금 불입니다
당신이 내 안에 질러놓으신 불은 십이월 찬비에도 식을 줄을 모르고 타오릅니다
무성한 불길 두려워 인적 없는 섬진강변 갈대밭으로 달아갔습니다
강변 갈대밭에 그 불길 토해내며 내달았습니다
그 불길 닿으면 누구라도 데일까봐 강둑길 어둡도록 동네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 불길 삼켜 밤을 밝히는 것일까요
이 불길 식혀 물길 만드는 것일까요
당신이 내 안에 질러놓으신 불은 십이월 찬비에도 식을 줄 모르고 섬진강 갈대밭을 타오릅니다.
이제 보니 김용택 시인은 불 끄러 섬진강에 자주 나가셨나 봅니다. ^^
불길
김용택
지금
내 마음은 불길입니다
불이어서 타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혼신을 다해 탈 뿐입니다
잡지 못하는 이 불길이 두렵습니다
우리에겐 불이 아니고
언 강 밑으로 흐르는 물이 되어도 좋을 것을.
내 물길은
언 강 밑으로 흐르지 못하고
강둑에서 불로 타오르며 번져만 가니
아, 아
나는 당신을.
이 불길을 당해낼 재주가 없어요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다가 역시 불에 관한 시는 이 시가 제 맛이지 하는 생각에 한 편~
(잔잔한 시를 몇 편 올리려다 삐끗해서 댓글란에 이글이글 불길이 치솟는 중 ^^)
불놀이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시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 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 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맥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달 다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백이고, 물결치
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리듬의 형상이 오락가락 -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어린 기생
의 노래, 뜻밖에 정욕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인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 없는 장고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 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여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로라, 사로라! 오늘 밤!
너의 발간 횃불을, 발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발간 눈물을......
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우니 뜨끈뜨끈한 시 한 편 더 ^^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시와 함께 하는 식물 공부] 부추꽃은 이렇게 생겼어요. ^^
![jun5417_316267_1[516178].jpg](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jun5417_316267_1%5B516178%5D.jpg)
노력을 해라 노력을...
이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돼서 노력하는 듯한 시 한 편~
바깥
문태준
장대비 속을
멧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탄환처럼 빠르다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하얀 참깨꽃 핀 한 가지에서
도무지 틈이 없는
빗속으로
소용돌이쳐 뚫고 날아가는
멧새 한 마리
저 전속력의 힘
그리움의 힘으로
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
집으로?
오동잎같이 넓고 고요한 집으로?
중심으로?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시와 함께 하는 식물 공부] 참깨꽃은 이렇게 생겼어요. ^^
문돌이들이 불러주는 사랑 노래에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다가 정작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해본 내가 내린 결론은, 진작에 노력을 했었어야 하는데 저런 노래 흥얼거릴 시간에
시인과 가수들이 불러주는 사랑 노래를 듣는 게 더 좋아요.
노력은 나중에 하고 싶으면... ^^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시와 함께 하는 식물 공부] 물푸레나무는 이렇게 생겼어요. ^^

물푸레나뭇잎

멋있네요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 없고 둥근 안팍은 적막했다 부터
황인숙 시인의 나이 들면 생각이 많아져, 까지
그래요 아직 젊어서 더 생각이 오겠죠.
요 며칠 오는 줄 알았던 봄이 도망간 것 같아서 다시 오라고 시 한 편 ^^
봄 편지
이문재
사월의 귀밑머리가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연한 초록
잠깐 당신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꽃잎과
새로 나오는 이파리가
비교적 잘 헤어지고 있다.
접이우산 접고
정오를 건너가는데
봄비 그친 세상 속으로
라일락 향기가 한 칸 더 밝아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다 말았다.
미간이 순해진다.
멀리 있던 것들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저녁까지 혼자 걸어도
유월의 맨 앞까지 혼자 걸어도
오른켠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오른켠도 연일 안녕하실 것이다.
라일락은 어떻게 생겼는지 다들 아실 테니... 시와 함께 하는 음악 공부 ^^
Jerry Murad's Harmonicats - Jeannine (I Dream of Lilac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