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어른)
1.대학교 학부 시절의 어느 날이었어요. 철학 시간에 교수가 스스로 어른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어요.
물론 저는 손을 들지 않았어요. 여기서 손을 들면 교수는 '아니 틀렸어. 넌 어른이 아니야. 넌 틀렸다고.'라는 말을 하기 위해 어떤 그럴듯한 이유든 댈 테니까요. 그때까지 그래 왔듯이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문제를 끼워맞추는 짓거리를 할 거란 말이죠. 말싸움에서 이기는 걸 인생의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을 상대로 반박을 펴는 건 돈도 안 되고 보람도 없는 일이고요.
그런데 몇 명 정도가 낚였어요. 행동도 말도 자신감있어 보이는 한 학생은 특히 기운차게 손을 들었죠. 교수는 삐딱한 태도로 왜 본인이 어른이라고 여기는지 설명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그는 그냥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어요. 교수는 그 학생에게 혹시 지금 스스로 돈을 벌어 먹고 살면서 등록금을 내느냐고 했어요.
이건 엿같은 외통수였어요. 한국의 대학생 중 한명을 랜덤으로 찍으면, 그 사람이 스스로 벌어서 등록금도 내고 밥도 먹고 주거도 해결하는 사람일 리가 거의 없잖아요. 학생은 조금 머뭇거리며 그건 아니라고 했어요.
교수는 득의양양하게 그럼 너는 어른이 아닌거라고 했고 학생은 그래도 스스로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여긴다고 말하고...그런 지루한 말싸움이 이어지다가 교수의 판정승인 듯한 분위기로 대화가 끝났어요.
2.그런데 그 논리대로라면 이재용 같은 사람은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거예요. 아니 대부분의 재벌2, 3세와 건물주 자식들, 병원장 자식들, 총장 자식들 같은 사람들이 다 어른이 아닌 거죠. 그래서 저런 이유로 어른이 아니라는 건 좀 말도 안 되는 거고...어른이 되었다고 확고하게 여길 수 있는 기준은 뭘까 싶었어요.
3.요즘은 그 기준이 '남에게 설득되지 않는다'가 아닐까 싶어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를 해도 절대 입장을 바꾸지 않는 거죠. 여기서 좀더 나아가면 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를 아무리 잘 해도 더이상 그럴듯한 소리로조차도 들리지 않게 되는 거예요. 이 정도까지 와버리면 아예 다른 사람의 관점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사라지는 거죠. 모든 사람을 쫓아내버린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 같은 상태가 돼요. 다른 사람의 의견 같은 건 저 멀리 있는 무인도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울릴 뿐이죠.
4.휴.
5.한데...남에게 설득되지 않기로 한 건 솔직이 사람을 못 믿겠어서예요. 사람들이 스스로를 포장하는 걸 말이죠. 저는 솔직이 사람들이 스스로를 포장할 때 그게 사실이기를 바라거든요.
한 번이라도 오파츠를 보고 싶어하는 학자의 심정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어요. '난 룸살롱 그런 덴 백억원을 벌어도 안 가. 야 솔직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끼리 소주 한 잔 하는 게 최고지 않냐?'라고 하는 사람이나 자기는 돈을 꾸면 라면만 먹는 한이 있어도 월급 나오면 돈부터 갚는다는 사람을 상대로 테스트해보는 거요. 솔직이 돈이 아깝지만 정말 오파츠를 볼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는 걸로요.
결론부터 말하면 오파츠는 없었어요. '난 돈 꾼게 있으면 바늘 방석에 앉은 거 같아서 못 견디겠더라고. 진짜. 난 그거 못 견뎌.'하던 사람이 앉는 바늘 방석은 어떤 바늘 방석인지 한번 보고 싶어요. 어떤 바늘 방석이길래 1년 넘게 앉아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건지. 가끔 카톡을 해보면 '오케이, 이번에 월급 나오면 내가 쏜다.'라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싶은 건데. 그리고 백억원을 벌어도 룸살롱에 안 간다던 사람은 한번 갔다 오니 '은성씨. 이제는 좋은 데 갈 일 있으면 이상한 애들 술 사주지 말고 나랑 다녀.'라고 하고요. 이 세상 어딘가엔 오파츠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30년동안 못 봤거든요. 한때는 오파츠 불가지론자 비슷했지만 이젠 오파츠를 보기 전엔 오파츠가 동화책 속이 아닌 곳에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6.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위에 말한 갔다온 곳은 2차가 없는 곳이예요. 클린 듀게에 그런 곳을 쓸 리가 없잖아요. 더.러.우.니.까.
7.그런데 정말 궁금한데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요즘 느끼는 건데 그건 아무래도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언제 기회가 되면 거짓말탐지기를 팔에 꽂고 세 가지를 물어보고 싶어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와 '이상한 애들'이 무슨 말인지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억원을 어떻게, 무슨 수로 벌 계획이었는지'물어보고 싶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한데...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교를 꽤 오래 다녔거든요. 한 수업의 종강 파티(?) 때 노교수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과 말투로 '송편씨는 학교를 오래 다니네? 그런 이유가 있나? 부모님이 힘들겠네.' 하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당시에 전 쓰러져 일을 못하고 계신 아버지 대신에 생활비를 벌고 학비를 대느라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거든요. 덜컥 하는 마음을 숨기고 '집안 사정으로 휴학을 오래 해 그렇습니다. 학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고 있어요.' 대답을 했는데, 순간 약간 누그러져 보이는 교수님의 표정이 참... 밉게 느껴졌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