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
뉴욕타임스 책 평론가인 미치코 카쿠타니를 팔로합니다.
그녀가 리트윗한 글에서 반고흐 미술관을 보았어요.
무슨 이벤트를 하는 지 십이만오천 개의 해바라기를 정원 가득 두고, 방문자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대요.
사람들이 얼굴만한 해바라기를 한아름씩 안고 미소짓고 있었어요.
송이라는 말. 해바라기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스모스나 수선화나 장미에도 어울리지만, 해바라기의 빳빳하고 거대한 존재감과 '송이'란 말에는 위화감이 느껴져요.
옛날 한국에 해바라기가 있었나요? 해바라기가 흔한 꽃이었다면 조상들도 뭔가 다른 단위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제 기억 속에도 해바라기가 소박하고 청초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파리한 미인이 발끝을 발레하듯 세우고 무릎을 끌어안고, 긴 창가 앞의 해바라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해바라기는 그날 아침 제가 장터에서 사온 거였어요. 그 전날 울고 있는 언니를 봤거든요.
하나에 2불이었나. 잔뜩 장을 보고 두 송이를 손에 꼭 쥐고 왔어요.
해바라기를 보자 그 핏기하나 없던 흰 얼굴에 잠시나마 환한 미소를 띄었어요.
줄기를 짧게 자르고 푸르스름한 유리컵에 꽂아 창틀 앞에 두고는 그날 오전 내내 꽃 앞에서 그렇게 앉아 있었어요.
언니는 아름다운 것을 참 사랑했고, 그런 곳에서 위로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날은 해바라기 특유의 되바라진 위용이 따뜻하고 밝게 느껴졌어요. 나는 할줄 모르는 쾌활한 말 한마디를 꽃이 대신 건내는 양.
창가에 햇살이 드리워 노란 꽃잎과 검은 속을 비췄고 그 자리를 향한 언니의 실루엣이
가슴 속 한켠에 잊혀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아 때때로 돌아와요.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 때 제가 보았던 건 아마 그녀의 감수성이었던 것 같아요.
영하 14도의 서울의 새벽, 지구 반대편 도시의 그 시간이 조금은 그리워지네요.
대체로 고독하고 무료하고 초조했던 그 때도 이제 몇 개의 반짝거리는 조각들로 기억하게 되나봐요.
해바라기는 여름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요즘처럼 차가운 날씨에 떠올리기만 해도 따뜻해집니다. 언니랑 사이가 좋으셨나 봐요.
해바라기는 정말 그렇게 온기를 뿜을 것 같은 느낌이 있죠. 언니는 미워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감사해요!
그 기억을 붙들어 싶은 마음으로 썼어요. 나눠드릴 수 있었다니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