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를 끝낸 후 소회

1.
한 달여 만에 서유럽에 있는 팀원들과 화상 업무회의를 했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전체회의를 할 때마다 심한 멀미를 느끼곤 하는데, 요즘 체력이 형편 무인지경인 상태여서인지, 회의 끝난 후 그로기 상태가 심각하여 영양제 한 대를 맞았습니다. - -
다른 분들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다수가 모여 의견 개진을 할 때마다 화성 탐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각자의 생각이 조금씩 혹은 현저히 다른데, 그 다름들이 모두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환각이랄지요.  너댓개 정도의 상이한 의견들은 그 다양성이 좋다고 생각돼요 .  그러나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다소 경악스러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다양함'이란 관념적으로는 진부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고 저 역시 그걸 찬미하지만, 그런데도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는 그 사실을 실제로 접할 때면 매번 심한 현기증이 일어요. '아, 정말 우리는 다 다르구나'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 
어리석게도 저는 이 멀미를 '그러니 어떻게 살면 좋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가기로 합니다. 그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보다는 덜 막막하니까요.

2. 
오늘 화성탐사 회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외계인은 A팀의 T였습니다. 그의 시안이나  남의 견해에 대한 반론을 들을 때면 언제나 러셀의 증명이 떠올라요.  
논리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러셀은 '2 더하기 2는 5'라는 전제로부터 자신이 교황이란 걸 증명해 보인 바 있지요.  

2 + 2 = 5 . 그러므로 2 = 5- 2. 정리하면 2 = 3. 
이 양변에서 1을 빼면 1 = 2 . 즉, 러셀과 교황은 둘이다. 
2 = 1 이므로 그 둘은 하나. 그러므로 러셀은 교황이다.
 
러셀의 증명은 논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적시하고 있죠. 논리의 본질은 진실이 아니라 솔직함이라는 것. 주장하고 싶은 결론이 있으면,  기이하든 말든 전제를 임의로 정한 후 그저 풀어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요.  이것이 궤변이 한 사회나 조직에 받아 들여지는 경로인 것입니다.  논리적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무엇이든 참眞으로 오해되기 쉽다는 것.  
 
3.
그래서  떠오른 옛 기억 하나.
어린 시절,  하교길에 정신팔며 지나다니던 종로 5가 재래시장엔 기이한 방식으로 연필을 팔던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에다 나무판을 세워놓고 연필을 못처럼 거기에다 꽂으며 자랑스레 묻곤 했어요. '이렇게 튼튼한 연필 봤어?'
이해할 수 없었죠. 대체 연필이 저렇게까지 튼튼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그때 저는 가졌던 것 같아요.  구십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필보다는 너무도 쉽게 찢어지는 공책 쪽이 더 문제였던 것 같.....

생각해보면, 그시절에 만났던 기이함들과 지금 제가 대하고 있는 세상의 괴이함들이 마치 친척 같이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요? 쉽게 찢기는 종잇장 같은 마음을 숨겨 두고, 불필요하게 힘이 가해진 연필의 공격에 놀라고 슬퍼하며, 그렇게?
    • 연필은 심이 강해야죠..
    • 3. 모두 다 그렇게 쉽게 찢기는 종잇장 같은 마음은 아니죠. 아닌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 심이 너무 강하면 글이 써지지 않아요. 자신을 적당히 소모 시켜야 흔적이 남는다는 것. 그 게 연필의 매력이군요.

    • 연필심의 강도는 용도에 따라 효용성이 결정됩니다.


      2h~4h는 기계설계도 등 제도용으로 쓰이고 4b 는 그림그릴적 뎃생,밑그림용으로 쓰이고....일반적인 필기용으로는 HB가 딱 좋죠.


      부드러우면서도 잘 안부러지는 안정성까지 갖춘 연필심은 그만큼 비쌌고 만들기도 어렵죠.


      옛날 공책은 잘 찢기고 연필은 잘 안써지던 사연은 그렇습니다. 


      절대적인 진실이 아닌 상대적 효용성과 적절한 선택은 사실 논리의 문제라기 보다 구체적인 정보와 충분한 경험치에 따라 결정되는듯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프로세스가 논리적이지 못하면 실질적으로는 죄다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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