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항작용
병약한 제가 장복하고 있는 약은 고려제약에서 판매하는 약품으로 덱스트로메트로판브롬화수소산염에 아세트아미노펜과 구아이페네신의 복합 화합물입니다. 줄여서 "하벤" 이라고 하지요. 정가 2500원. 이 약과의 인연은 벌써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군시절 저는 매딕 역할도 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그냥 중대장이 절 찍었습니다. "야, 그냥 니가 해"
꼴에 메딕이라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장장 삼일에 걸쳐. 그때 부작용의 "부" 가 不자 쓰는 부가 아니라, 副자를 쓴다는 것도 배웠으니 아주 헛짓은 아니었죠. 덱스트로메트로판을 무더기로 먹으면 맛이 간다는 것과, 피임약 중 몇 알은 밀가루나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배웠습니다. 과연, 그냥 "니"가 가서 받을 만큼 충실한 교육이었죠. 그 교육을 마치고 나온 저는 팀원들이 아플 때마다 적절한 처방을 위해 힘 썼습니다. 배가 아파요. 자 여기(하벤), 머리가 아파. 여깄습니다.(하벤)
아무튼 그때 길항작용이라는 단어도 배웠습니다. 어떤 약들은 뜨신물과 찬물과 같아서 둘이 섞여 버리면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게 길항작용의 핵심이지요. 적당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의원에서 보약 먹을 때 돼지고기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돼지고기가 해독작용이 세서 약을 해독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전혀 적절한 예시가 아니지요?
오늘 그동안 쭉 궁금했던 길항작용에 대한 이론을 실제로 증명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항 히스타민 제제를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잠이 온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순간 잠이 달아나고 기운이 솟는다. 그렇다면 이 둘을 동시에 섭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결과는? 저 지금 자꾸 토하려고 합니다. 어지럽습니다. 감기약과 커피는 같이 복용하면? 매스껍고 하늘이 돕니다.
길항작용하면 생각나는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방독면 세트에 마크1이라는 화생방 대응 키트가 있습니다. 매직만한 크기의 아트로핀과, 크래파스만한 옥심이라는 두 가지 주사약품이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는 신경작용제지요. 샤프 누르듯이 뒷꼭지를 콕! 하고 눌러서 허벅지에 찌르면 자동으로 주사가 되는 신박한 물건이에요. 그런데, 이거 써 본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이 평화시대에.
아주 날씨가 좋은 날이었어요. 지나가는 개미와 인사하며 흙바닥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한 녀석이 갑자기 앗! 하는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부르르 떠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이야? 일어서 보니, 유달리 명랑했던 친구가 그만 심심함 반, 호기심 반으로 아트로핀을 까서 지 허벅지에 찔러 본 거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녀석.
아트로핀은 부교감신경에 작용합니다. 동공이 확장되고, 심박수가 증가하며, 침샘과 땀샘에 작용한다고 교육을 받았지요. 실제 증상은? 일단 애가 벌벌 떱니다. 입으론 "우어 우어 우어" 이런 소리를 냅니다. 숨을 헉헉 거리고, 물을 무지하게 마십니다. 온 동네 물을 다 마셔버릴 기세로 마시고, 또 마십니다. 그리고 고참들은 특박이 잘리고 연병장을 끝없이 돌게 됩니다.
쓰는 와중에 매스꺼움이 사라졌네요. 쉬가 마렵고, 훌쩍 거리는 콧물도 얼추 멎어가는 걸로 봐서 항히스타민 제제와 카페인은 길항작용과 별 상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후의 브레이크 타임을 맞아 얻어낸 참으로 유익한 실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집에 가고 싶어.....
항히스타민제와 카페인을 같이 섭취하셨으면, 화이투벤 캡슐을 잔뜩 복용한 것과 비슷하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