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들. -1-
저를 좀 안다고 하는 지인들은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타쿠라고 놀려대곤 해요.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럭저럭 긍정하는 편입니다. 딱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요.
그래서 그런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서브컬처의 최신 이슈에 대한 질문은 피해갈 수 없어요.
이를테면 '너도 러브라이브 극장판 봤어?' 라던지, '맥도날드에서 원피스 피규어 나왔는데 샀어?' 같은 질문들이요.
여기서 재밌는 점은, 그런 질문들의 대다수가 제 취향이 아니거나 관심조차도 없다는 데 있지요.
차라리 '죠죠 4부 애니화 확정이라더라' 라거나 '롱기누스 프로젝트가 모금액 부족으로 엎어졌다더라' 같은 주제였다면 좋으련만.
거기에 대해서 더 말해봐야 더 이상한 놈 취급받을 게 뻔하니까 그 때마다 항상 어설프게 웃으면서 대답하곤 해요.
'아니, 아직.'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진승의 말처럼, 뭐 저라고 오타쿠의 성좌를 타고난 순혈의 오타쿠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PC통신 아이디를 손에 넣게 된 게 결정적이었지요.
'은하철도 999에서 등장하는 전사의 총은 몇 자루인가'라는 주제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붉은 색은 3배 빠르다'는 게 커먼 센스인 전뇌공간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니 그냥 콩 심은 데 콩 났다고 할 수밖에요.
와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다른 취미는 나중에 또 써야겠네요. 여기서 끊으려니 정말 맥락없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게시판 제목들만 죽 보다가 밑장빼기 취미에 대한 얘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ㅎㅎ
서브컬처 전반을 향유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사실 오타쿠라는 말 그 자체보다는 그냥 그 뉘앙스 자체가 마음에 안들긴 해요...
따지고 보면 술이나 커피나 문학처럼 하나의 취향 내지는 기호에 가까운 건디
취향에 우열을 구분짓는 게 바르지 못한 일이기는 하지만
같은 계열이라면 와인 애호가가 맥주 애호가를 폄하하거나 커피 애호가가 '너는 왜 맛대가리도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만 먹냐.' 고 까는 건 왕왕 일어나잖아요.
근데 서브컬처에 대한 기호에 대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좀 있는 거 같아서요...
저도 오타쿠는 아닙니다만 서브컬쳐 전반에 대한 이해 정도는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건데 한국에서의 오타쿠는 다른 문화 애호가들과 달리 묘한 위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안여돼에 만화 캐릭터에 집착하는 오타쿠 상이 인터넷 유행이던 한 7=8 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이들은 '혐덕'의 정서-오타쿠라는 이유만으로 은따를 당한다든지-를 경험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전에는 그냥 평범하게 같은 반 친구들과 대여점 만화책을 돌려보며 캐릭터나 작중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자연스럽기도 했었죠. 복합적으로 오타쿠라는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썩 좋지만은 않은 건 사실입니다만 또 한편 그들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취미적 소양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무튼 요즘 이들의 전반적인 인식은 내가 어떤 취미를 즐기든 말든 좀 내버려둬라. 이게 부끄럽진 않지만,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너한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뭐 그런 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원나블 좀 본 거 가지고 오덕 소리 하면 안 되죠. 죠죠도 요즘에 와서는 대중에게 꽤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