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10만 번째 글 달성을 위한 작은 벽돌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 한 편 올려 봅니다.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한 편이면 정이 없으니까 유튜브에서 읽어주는 시도 하나 가져왔어요.   


칼릴 지브란 - Song of the Rain  

(처음엔 목소리를 듣고 -_-;; 였는데 듣다보니 감상적일 수도 있는 시를 이런 교육적인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 





    • 댓글 달리기 힘든 글일 것 같아서 자급자족 댓글 하나 붙여 보아요. ^^ 




      1시간 동안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싶으시다면...  


      • 비가 와서 정말 기쁩니다. 이젠 꼼짝없이 단수 조치가 내려지는거 아닌가 했거든요.
    • 요즘 누굴 좋아하고 있어서인지 사랑에 관한 시만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마침 비도 내리고요.

      • 앗, 누군가를 좋아하고 계신다니 옛 생각이 나서 시 한 편 ^^ 






        기억하는가






            최승자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물 내리던 그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 비가 오니 너무 좋은데 엄마가 나가서 밥이 없네

      • 배부르게 해주는 시를 열심히 찾아보다가 포기... ^^ 






        저 돌들 모두 젖으면






                            이희중 



         












        잠시 내린 비는 결코 돌 속 깊이 적시지 못하고



        한 때의 슬픔도 삶의 내막을 다 적시지는 못하네



        그러나 어느 때 멎지 않는 비 내려



        저 돌들 보이지 않는 속까지 모두 젖으면



        그래, 두 손으로 닦지 못할 슬픔이 밀려오면 세상에



        생긴 후 처음 젖어 보는 마음의 종이도 있겠지



        눈물의 바다에 표정없는 아이는 채 젖지 않는 한 장



        마음의 종이로 배를 접어 띄우고 마를 날 없는



        더러운 항구를 아주 떠날지 몰라 우는 비 속을



        웃으며 등돌리며, 설령 맑은 날이 다시 온다 해도



        보이지 않는 돌의 속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사람들은 겉만 마른 돌을 보며 자신의 젖지 않은



        마음을, 없는 사랑을 한참은 뒤적여 찾아볼까



           

    • 실연의 아픔이 절절한 시하나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 실연의 아픔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허수경 시인이에요. 


        (저는 실연 당하면 맥주 몇 병 사들고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마시던 기억 때문에 


        이 시가 참 마음 아팠어요. ^^)






        흰 꿈 한 꿈 






                        허수경



         








        혼자 대낮 공원에 간다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말하기 위해 가려고, 그냥 가는 바람아, 내가 가엾니?






        삭신은 발을 뗄 때마다 만든다, 내가 남긴 발자국, 저건 옴팍한 속이었을까, 검은 무덤이었을까, 취중두통의 길이여






        고장난 차는 불쌍해, 왜?



        걷지를 못하잖아, 통과해내지를 못하잖아, 저러다 차는 썩어버릴까요



        저 뱀도 맘이 아파, 왜?



        몸이 다리잖아요 자궁까지 다리잖아요 그럼,



        얼굴은 뭘까?



        사랑이었을까요......



        아하 사랑!



        마음이 빗장을 거는 그 소리, 사랑!






        부리 붉은 새, 울기를 좋아하던 그 새는 어디로 갔나요?



        그런데 왜 바보같이



        벌건 얼굴을 하고 남몰래 걸어다닐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지?






        그 손, 기억하니?



        결국 마음이 먹은 술은 손을 아프게 한다



        이 바람......






        내 마음의 결이 쓸려가요 대패밥 먹듯 깔깔하게 곳간마다 손가락, 지문, 소용돌이, 혼자 대낮의 공원






        햇살은 기어코 내 마음을 쓰러뜨리네






        당신......



         



          






        베껴오다 보니 흥이 나서 한 편 더~~ 



        (허수경 시인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 가슴 찢어지는 시들이 많아요. ^^)












        不醉不歸 (불취불귀)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 나는 지금 여기 글을 읽고 우는 게 아니다. 엄마는 집에 업고 찬밥 먹은게 짜증이 나서 우는 것 뿐이다.

      •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가끔 슬퍼요. 


        (김전일 님을 위해 밥 먹는 게 슬픈 시 한 편 ^^) 






        수수께끼






                        허수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雪)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 전에 비오고 천둥치는 소리를 담아놨는데 금방 실증나서 지워버렸어요.


      근데 사람들한테 사랑이 금방 잘도 오지 갈거 올 때 미리 외면하지 하긴 뭐 괜히 괜히 하면서 사는거니까.

      • 시간이 흐르면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하는 사랑이 더 애틋할 걸요. ^^


        (아까부터 창 밖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서 있어서 이 시를 외면하기 힘들군요. ^^)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의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



         


    • 비와 관련하여 제게 최고의 시는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이네요. 꼬꼬마 시절 브레히트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그 시는 딱 한번만 봐도 뇌리를 스치고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엄청 유명한 시... 시의 위력을 절감했어요.

      • 제가 알고 있는 비에 관한 시가 바닥나고 있는 이 시점에 너무나 적절한 댓글이에요. ^^


        (사랑받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정말 부러운 시죠. ^^)


        다른 분들도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브레히트의 시 대단하네요. 제가 꼭 사랑에 빠졌을 때 저런 심정이었어요.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 저 사람을 다시는 못 보는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땐 그랬었다구요.
        • 저는 주로 혼자 좋아하고 혼자 끝내고 하느라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부모님 걱정 끼치지 않게 건강해야겠다,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_-;;)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나 봐요. 부럽네요. ^^  






          찬비 내리고



          - 편지1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 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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