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바낭) 범인은 내가 아냐
지하철에서는 양손을 가슴 앞에 다소곳이 모읍니다. 왜긴요? 게임 하려고 그러는 거지요.
게임을 함에 있어 엔트로피의 양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공간이 넉넉하면 넉넉한대로, 공간이 협소하면 또 그 나름대로.
옛날에 사내놈들이란 그저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문간 너머 아녀자의 궁둥이를 흘끔댄다 하지 않습니까?
두 팔을 올려서 견착할 공간만 있으면 일단 플레이 하는 거죠. 한 마리 해파리처럼 인파에 이리저리 몸을 맡긴 채.
미모, 패션센스, 헤어스타일, 어느 하나 밖에 내놓아 마땅히 부끄러운 30대 남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으니,
멍 때리다 우연히 마주치는 눈길만으로 그거 성추행. 두팔을 견착하고 5인치 화면에 시선을 박는 행위는
그 자체로 출퇴근 사소한 시간의 행복이자, 등에 짊어진 동그랗고 딱딱한 껍질인 거죠.
그리고 오늘, 그 단단한 껍질이 저를 구했습니다.
앞에 서 있던 아가씨가 홱! 하고 몸을 돌려 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턱밑에 양손으로 곱게 파지 된 핸드폰을 보고 "뭔가 미심쩍지만 증거가 없으니 내가 참는다." 는 늬앙스로.
"아, 짜증나." 라고 말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짜증은 내가 나, 이 사람아!!!
어디 멀쩡히 신문 보던 아저씨가 갑자기 골아 떨어지며 "범인은 이 안에 있다!" 고 폭탄선언,
이차저차한 뚜렷이 증거는 없지만, 왠지 그녀를 둘러 싼 남자들 중 하나가 갑자기 자신의 오른 손을 거수,
안경 쓴 초딩 꼬맹이가 보는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비명횡사라도 했으면 나름 통쾌하겠다만,(그래도 죽는 건 좀 그런가?)
현실의 만원 지하철 안은 마치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고요.
쇠고랑을 찬다든지, 만민 앞에서 불상놈 취급을 받았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겁니다.
여러분, 저 억울해 죽겠습니다. 난 그냥 레벨 올리고 있었다고!!!
하고 있던 게임은 plague.inc 연타할 이유가 없는.... 그런데 바낭으로 쏴대고 보니 제 무언가가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던 거라면 또 미안하기도 하고... 음....
아 오해하고 째려봤으면 '아, 죄송합니다'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과하는데 매우 인색해진 것 같아요 -_ -
기분 나쁘고 억울 하셨겠지만 증거!가 있고 결백하시니까 액땜했다 생각하셔요.
본문내용에 사건정황보다 딴얘기가 많아서;;; 다시 읽었는데요 아마 바로앞 사람이 저렇게 나왔다면 어떤 이유가 있었을거예요.
여자를 여자로 보죠. 제가 실언을 한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리겠지만 사과의 방향이 결코 그쪽은 아니라는 건 알아 두시고, 사과는 실언에 대한 것이지,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미루어 추정되는 생각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점 또한 밝힙니다. 제가 아저씨 농담을 함부로 한 점 인정하고, 앞으로 사소한 것까지 조심하고, 생각의 방향을 보편적인 시선을 건드리지 않는 쪽을 향해 발전적으로 모색할 거라는 점 약속 드립니다. 이 글로 불편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지나간 게시물은 어물전의 썩은 생선이나 마찬가지라 누가 보겠냐만) 무척 싫어하는(싫어하지만) 김규항의 말마따나 노력하는 마초라고 자부하고 있기에, 제 스스로 마초적인 발언을 했다는 지적에 자존심이 상했을 뿐입니다.
참 여러모로 내 마음과 같을 수 없는 게 관계와 말이고, 글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하철에서 두발로만 균형을 잡고 있기 힘들던데 고생하셨습니다. 핸드폰을 두손으로 쥐어야한다는 사실이 좋은 점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