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운 나날들이여

새우를 뒤집어야 하는 순간,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나서는 허그인사도 하지 않고 난 부엌에 가야해 라고 말하고 돌아섰고 오사는 뭐 놀라울 것도 없다는 듯이 응 그러고는,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가 겨울과 싸울 준비를 하듯이 겹겹히 입은 옷들과  신발을, 현관 앞 옷걸이와 신발장에 벗어두었다. 새우가 다 되자 때맞추어서 헬레나가 오는 소리. 선물이 보고 네가 집 주인이니까 문을 열어주렴 이라고 말하는 오사. 그런데 둘이 문은 안열고 한참 그러고 있어 결국 내가 거실 바닥을 미끄럼 타듯 달려가 문을 열었다. 넉달된 시그네는 기분이 좋은지 방긋방긋이고 고텐버그에 사는 오사까지 셋이 만나기는 반년만이다. '생일 축하해, 내가 지난 주에 안오고 이번주에 오길 정말 잘했지?' 오사가 카드를 내미면서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지난 주말은 시그네의 name giving 데이였는데 (사실 이런 날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전통적으로는 세례를 주는 건데, 헬레나와 안드레아스는 무신론자라, 대신 이런 행사를 했다. 우리식으로 하면 100일 잔치), 오기로 한 오사가 감기가 심하게 들려서 못오겠다고 하면서 대신 다음주에 갈께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음 그러면 토요일 저녁에 보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메시지 보낸 뒤 5분 뒤에, 잠깐 일요일이 네 생일이지? 라는 메시지.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까 이번에는 헬레나가 전화를 해서는 너 다음주에 생일이지? 란다. 아마 오사가 전화해서 그때 셋이 같이 보자 하면서 생일인 걸 이야기 했던 거 같다. 헬레나는 몇년 동안 내 생일 날짜를 헨드폰 칼렌더에 잘못 적어나서 10월 1일 마다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어쩌 어쩌 하다보내 생일날 점심에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생일날 밥하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친구들이 스웨덴 식으로 나누어서 가져왔다. 


빵, 스페인 햄 두종류 (절대 스팸 같은 거 햄이라고 부르지 말자!) 훈제 연어, 치즈 두 종류, 안을 크림치즈로 채운 고추, 고추 마늘 새우, 할루미 고구마, 그리고 만두. 상을 차려 놓으니 은근히 많은데 사실 요리라고 한건 새우랑 고구마 뿐이다. 식탁을 가로질러 이접시 저접시 서로 주고 받는 소리, 이거 맛있네 이건 고구마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나 요즘 마늘 못먹어, 왜? 마늘 먹고 모유 먹이면 시그네가 아파해, 이런 대화. 오사의 새 직장이야기, 시그네 이야기, 몇 안되어도 시끌벅적하다. 자기가 밥먹다 시그네 밥먹이다 하는 헬레나한테서, 점심은 다 먹은 나는 시그네를 받아 안고, 선물이가 이렇게 가벼운 적이 언제였는 지 몰라라고 말했다. 다 먹고 헬레나가 가져온 초코 케익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오사는 더 이상 못기다리겠다는 듯이 S 랑 어제 뭐했어 ? 라고 물어왔다.

아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도 어리게 만드는 구나. 


말로는 제대로 전할 수가 없다. 테라스가있는 시내 광장 호텔 레스토랑에서 화사한 가을 햇살 얼굴에 받으면서 먹은 점심, 그러고 나오자 어느새 회색인 하늘에 춥다 라고 말하며 그의 외투 주머니에 잡은 손을 넣고 처음으로 길거리를 걸어다닐 때 기분, 그의 아파트에 들어서서, 집이다 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던 것, 나 집에 돌아간다고 할때 자기도 일하러 직장 간다는 그에게 처음에는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그가 얼마나 웃었던지) 그러면 저녁먹으러 와요 라고 했던 그때, 저녁 먹고 나서 선물을 풀고, 선물을 같이 설치하자 라고 다음 주 계획을 짜던거, 선물이랑 같이 보드게임 하고, 당신이 행복한게 제일 중요해요 라는 말을 듣던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록 모든 미세한 움직이들이, 순간들이 만들었던 행복이 우숩게 느껴진다. 그냥 무척 행복했다고 말하고, 아마 진심이 느껴져서인지, 둘다 동시에 떠나면 어떻게 해? 라고 물어본다. 


친구들이 가고 나서, 남아 있는 걸로 저녁을 먹다가 나는 S에게 어제를 감사하는 길고 긴 메시지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중에 그는 간단하게 답을 보낸다. 나도 당신과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 


언젠가 20대 였을 때, 아직도 사랑이 나이들면 찾아오는 변화같이 생각할 때, 프랑스 작가의 짧은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은 누군가에 열정을 다해 사랑에 빠지는 감정, 그가 떠나고 난 뒤의 생활,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사랑이 지나간 뒤의 감정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억한다 책의 마지막을. 내가 어렸을 때 luxury란 바닷가의 집, 진주 목걸이였다. 젊은 날에 나는 지적생활을 하는 것이 luxury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한 사람을 향해 열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luxury라고 느낀다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누군가로 사랑받고, 함께 있어 모든 일상의 일들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해변 모래 같이 빛나 보일 때, 그리고 이 순간을 믿을 수 있을 때, 그런 나날들. 


다음날 점심 시간에 내가 집에서 일한다니까 주말에 바빠서 잔디를 깍아주지 못했던 그가 왔다. 그가 잔디를 깎는 동안 나는 식탁에 우리가 먹을 점심을 차려놓는다. 손을 씻고 부엌에 들어오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이랑 점심을 같이 먹다니, 정말 luxury하군요. 그가 웃는다.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이었던가요.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해변 모래 같은, 커피 공룡님의 사치스러운 나날들이 부럽네요 :)

    • 어차피 성분표 뽑아보면 그게 그거일텐데 왜 모유수유를 고집하시는 분이 선진국에 계신가요

      • 음.. 모유가 아이한테 더 좋다는 건 여러 과학 연구서 결과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모유를 먹이는 게 좋다고 병원에서도 그러고요. 

        • 그 어머니 되시는 분이 전업주부신가요?

          •  아니요. 지금 육아휴가중입니다.

      • 헉. ㅠ ㅠ


        음 생각해보니 혹시 분유회사 관계자라든가 젖소를 키우는 분들을 걱정하셔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어렵다지요?

      • 그게 그거는 아니겠죠. 분유회사에서 자랑하는 게 모유를 연구해서 모유랑 가장 비슷하게 만든다고 하면서도 분유통에는 모유가 아기에게 제일 좋다고 써있어요.
    • 시간 나시면 엔터키 몇 번만

    • 럭셔리한 나날들이 쭈욱 이어지시기를.. 

      • 너무 욕심내지 말고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할려고 합니다. 욕심이야 말로 이런 화사한 날들을 깨는 망치질이란 생각이 들어요

    • 사치스러움이 전해집니다:) 반짝이는 금빛의 순간들 같아요.
      • 금이 아닌데도 반짝 거릴 수 있는 순간입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제가 미혼때 꿈꿨던 삶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며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각자의 집으로... 아름답습니다. ㅠ ㅠ

    • 영어로 luxury의 느낌은 잘 모르지만, 한글로 사치라고 쓰니까 뭔가 내게 과분한 것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예요. 글로 뵈었을 때 꽤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 한국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s를 몇 명 더 거느려도 합당해 보이십니다? ㅎㅎ 농담입니다. 작은 것들에 그렇게 행복한게 사랑인가보죠? 허 참. 질투나.

      • luxury, 사치 말고 다른 단어 뭐가 있을 까, 이래서 번역이 힘들구나 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란 걸 오랫동안 경험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 여름날 바닷가에 빛나는 모래 같은 나날이라니....



      그냥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그런 빛나는 시간을 누리며 살고 계신 커피공룡님께 부러움보단 따스함을 느낍니다..

      • 감사합니다. 요즘에 직장일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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