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데이와 '진심'의 무게.
#1
어제는 그 이름도 장엄한 할로윈 데이 였더랬지요. 듀게 분들도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언제나 패시브 상태인 잉여력에 활동력까지 덤으로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엔 여장도 해보고, 어디선가 공수해 온 하얀 가운에 가짜 피를 치덕치덕 발라서는 까르르 까르르 하면서 뛰어다녔건만
올해엔 돈 내고 벌 받는 느낌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왠지 저렇게 다같이 즐기자는 분위기엔 묘한 언더독 근성이 발휘되어서 '이런 날엔 쌩얼이 개성이여!' 라고 외치면서 은근슬쩍 넘어갔네요.
할로윈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대세였던 치파오나 어른스러운 간호사 복장 대신
수백 명의 할리퀸과 수천 명의 좀비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과연,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친구의 실연을 놀리러 위로해주기 위해 외출을 감행했어요.
저와 친구들은 '겉보기엔 사납지만 한번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오빠들'이라는 컨셉을 가진 준비된 개들(...)이라는 이름의 친목 모임에 속해 있는데
이미 어디선가 한 잔 걸치고 취기가 오른 그 녀석은 말 그대로 정말 한 마리의 개였어요. 사람만 지나가면 물 듯이 왈왈 짖었거든요.
이대로 놔두었다간 거리에 집결하기 시작한 일군의 좀비들과 워킹데드를 찍을 것 같아서 서둘러 친구의 뒷목을 잡고 한적한 가게에 들어갔지요.
얼씨구 절씨구. 자리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하네요? 그것도 그냥 훌쩍이는 게 아니라 가게 밖까지 들릴 정도로 본때 있는 울음이었어요.
일단 울게 놔두고 다른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친구가 좋아하던 여자가 친구의 마음을 우회적이면서도 상당히 무례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래요. 친구 본인에게 더 캐물어봤죠.
Q : 사귄 지는 얼마나 됐니?
A : 알게된 지는 1달 조금 넘었다
Q : 아... 연인 사이는 아니네... 그럼 고백했다가 차인건지?
A : 아니야 고백은 다음주 쯤 하려고 했다.
Q :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A : 그 여자랑 단 둘이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후략)
Q : ...너 맞을래요? 그게 이렇게 울고 짜고 깽판칠 일이냐고 -_-
A : 난 진심이었단말야. 정말 오랜만에.
아아, 진심이라니. 그 단어가 주는 무게와 울림에 왜인지 납득해버려서는 좋게 좋게 잘 달래서 집에 들여보냈네요.
여기까지라면 그냥 어찌저찌 훈훈한 에피소드로 넘어갔을 것 같아요.
슬슬 결혼적령기로 접어드는 요즘엔 비슷한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깽판친 건 용서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문제는 이 멍청이가 오늘 낮에 전화로 '아, 술먹고 털어냈더니 개운해졌다. 나, 포기 안할거야.' 라며 해맑게 웃더라는 거. 아... 한 방 때려주고 싶다 !!!!!!!!!
p.s. 이런걸 바낭이라고 하는 건가요...정말 쓰고 보니 뻘글 그 자체네 ㅠ.ㅜ
그럼 듀게인 여러분, 섹시한 밤 되세요 :)
재밌어요, 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섹시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부럽네요 매일 밤이 섹시하시다니...(?)
재미있어요~2222
'겉보기엔 사납지만 한번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오빠들'이라는 컨셉을 가진 준비된 개들(...).. 이라니 멋진 그룹입니다!!!!^____^
오빠야들께 맛난 퓨리나표 개사료 한턱 내고잡네요.
친구분이 순수하시네요. 그 여자분한테는 무서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ㅋ
친구의 감정을 묵묵히 받아주신 친구분들도 수고하셨다고 어깨 두드리고 싶습니다. ^____^
물거나 해치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