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소주가 땡기는 저녁..
아까부터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더라니..
집에 일찍 들어가면 될텐데 이상하게 뒤통수가 근질거리고 소주 한잔에 칼칼한 국물 생각이 나더라니
생각지도 못한 10월 26일이군요. 역사의 분기점, 우리 현대사가 무시무시한 궤도수정이 된 날.
10.26의 원인으로 김재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출처 : 위키백과)
김재규는 10월 유신으로 박정희에게 반감이 있었고 거사를 7년간 준비해 왔다는 설이 있다.[1] 재판 중 '내 뒤에 미국이 있다'는 말도 했다.
1심 최후 변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 |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 ” |
김재규는 ‘내가 (거사를) 안 하면 틀림없이 부마항쟁이 5대 도시로 확대돼서 4·19보다 더 큰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고 판단했다. 이승만은 물러날 줄 알았지만 박정희는 절대 물러날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김재규에 의하면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 300만 명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200만 명 못 죽이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또한 김재규에 의하면 차지철은 그런 참모가 옆에 있고 박정희도 ‘옛날 곽영주가 죽은 건 자기가 발포 명령을 내렸기 때문인데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면 나를 총살시킬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김재규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암살했다고 주장했다.[3]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도 그 결과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중인 느낌적 느낌. 10.26을 핑계로 소주 한잔 마시러 나갑니다.
다른건 몰라도 부산, 마산 사람들은 김재규에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겁니다. 광주의 학살극이 거기서 터질뻔 했으니까요....ㅠ.....
소주 안 마시는데, 잔뜩 내려 앉은 것이, 유난히 하늘이 소주 빛깔인 날이 있죠.
진중권이 트윗에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행사를 취소하고 궁정동 안가에서 술먹다 그리 됐다는데, 맞는지는 몰라도 날짜가 겹친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