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퀴담>이 어떤 서커스인가?
"나 태양의 서커스 단원이 되고 싶어."
라고 외치고 다니던 대학 동기가 있었어요.
퀴담이 국내 첫 내한 공연을 했던 2007년쯤이었죠. 그때 처음 전 태양의 서커스라는 존재를 알게되었어요.
대단히 매혹적이고 격렬한 음악과 예술적인 서커스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도 그냥 떠나보냈을 프로그램을, 샌드맨님의 퀴담 관련 글을 읽으면서 결심하게 되었어요.
16만원을 주고 보기로.. 제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마지막 공연이라는 메리트가 크게 작용했죠.
태양의 서커스 퀴담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표현은 "예술적이다"라는거에요.
음..그렇구나. 조금 경박할수 있는 서커스라는 장르에 뭔가 고급진 양념이 가미되었나보구나.생각이 들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하게 느껴지죠.
도대체 어떤 점이 예술적이다.라는 것일까요? 예술적이라는건 너무나 막연하잖아요. 어떤 서커스도 그 자체로 예술적일 수 있는거잖아요.
그러나 어떤 감상평을 봐도 이 퀴담 공연의 예술성이란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설명은 또 없더라고요.
제게 퀴담 공연을 요약하라면, 펠리니나 조도로프스키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랑 서커스단을 바라보는 정서들을 극대화시킨 공연.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건 즐거움을 주는 오락으로만 남겨놓기엔 그들 삶에 대한 페이소스가 크죠. 퀴담 공연을 지배하는 가장 큰 감정들은 바로 그런 은근히 비극적인 정서들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정서들과 기존의 매타포를 너무나 잘 아는 연출가들이 그런 요소들을 작정하고 서커스에 녹여 놓은게 퀴담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뒤에 앉은 아주머니는 단원들이 힘든 곡예를 할때마다 아이구 불쌍하다.불쌍하다. 혀를 차셨어요..뭔가 그런 정서..한해 몇조원 단위 매출이라는 태양의 서커스단원들이야 걱정할게 없겠지만.)
퀴담에는 선명한 스토리가 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인것 같아요.
'서로를 돌보지 않고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가족. 그 가정의 여자아이 조가 집에 방문한 신비한 인물 퀴담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고 서로를 알게 되면서 다시 화합을 이룬다.' 정도...
퀴담은 다양한 서커스공연의 형태를 일종의 상징물로 사용해서 스토리로 제시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이런거죠.
주인공 조가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프롤로그 장면은 서커스 없이 연극으로만 이뤄져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프롤로그에서 공중에 떠서 사라져버려요.
피아노줄로 연결되어 매달려 있는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배우들의 마임이 좋아서 꽤 인상적인 장면이에요. 본격적인 서커스 공연은 암백 후 사라진 아버지가 등장하며 시작되죠.
그 서커스 무대는 아버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데, 한창 앞에서는 서커스가 진행되고 무대 뒤쪽에서는 마임을 연기하는 아버지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의 모습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서커스 공연이라는건 <저먼 휠>이에요. 저먼휠은 서커스의 흔한 레파토리인데 굴레안에서 뱅그르르 도는 곡예들이 아버지 삶에 대한 상징으로 묘사되는거죠.
두번째 서커스 공연은 <에어리얼 컨틀션 인 실크>라고 하던데, 빨간색 실크 천에 여성이 매달려서 공중곡예를 하는 서커스죠.
여성은 실크천에 몸을 휘감고 올라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익숙한 곡예를 하는데 말미에는 목에 천을 걸고 목 힘으로만 지탱하고 공중에서 버티는 곡예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퀴담은 이 모습을 여성의 죽음, 목을 매달고 축늘어져 죽는 모습으로 연출을 해요.
모든 서커스는 단원들의 연극적인 마임들과 연결되어 있고,그렇게 죽은 여성을 밑에서 아버지가 두손으로 받아 들며 슬픔에 잠기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마무리가 되죠.
아버지 내면속의 그 여성과 그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 하지만 상실에 대한 맥락을 전달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죠.
1부의 마지막 서커스 공연인 단체 줄넘기는 조명을 통해 단원들이 창살에 갖혀 있고, 곡예를 통해 줄에 갖혀 있는 인상을 주는 등, 퀴담 1부의 모든 서커스들은 속박과 상실감을 전달하는 것으로 메이킹되어 있어요.
1부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주인공 조가 계속 들고 다니는 헬륨가득한 풍선이 손을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가고, 천장에 매달린 내면속의 악동이 자유로워진 풍선을, 새장으로 캐치해서 가두면서 끝나죠.
(저희 공연때는 받는데 실패했지만...)
1부 공연을 보면서 놀라왔던건 서커스와 결합된 스토리의 시각화도 그랬지만, 모든 단원들이 대단히 뛰어난 마임가들이고 모두가 연기자라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연출상 서커스와 연기의 분배가 굉장히 균형적이라 서커스에서 연기무대로 전환하고 또 다시 연기무대에서 서커스로 바뀌는 그 지점들이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웠죠.
서커스가 진행되는 과정에도 마임으로 연기를 하는 단원들은 언제나 무대에서 스토리를 진행시키고,서커스가 끝나고 곡예를 펼친 단원들은 퇴장하면서도 텀이 없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펼치고 공연은 끊어짐이 없이 바로바로 연결되어 진행되죠. 그리고 우리가 좋은 영화의 서커스장면에서 기대하는 우울하고 구슬프면서 아름다운,그리고 매우 극적인 음악들은
정말 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이 분위기에 딱 들어맞죠.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성숙해서 천막공연장이라는 한계에도 스피커 음악들은 잡음없이 정확하게 들렸고, 심지어 다채널로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다른 서라운드를 구현하고 있더라고요.
음악과 함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포커싱되고, 잘만든 연극처럼 무대를 풍성하게 만드는 조명도 인상적이었죠.
1부에 비해 2부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맥락상 2부의 곡예들을 상징하는 의미들이 1부에 비해 썩 잘 와닿지 않는다고 느꼈거든요.
스토리 진행상 해피엔딩으로 돌진하기 위해 서커스는 해방이나 화합등의 메타포를 의도했던것 같은데, 작은 퀴담의 무대에서 그 곡예들이 해소감을 주긴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지막의 해피엔딩은 조금 급조된 느낌을 받았어요. 서커스의 레파토리긴 하지만, 관객참여 무대가 왜 도중에 있어야 했는지도 조금 혼란스러웠고요.
그 프로그램동안 사실 전 정신이 사나웠거든요.
이 우울한 서커스에서 유일하게 익살스러움을 강조하는 그 관객참여 속의 영화 이야기도 섬찟했던게 인상적이긴 했죠. 그렇게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깔깔거리며 연기하고 보고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태양의 서커스 공연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대단히 만족스러웠지요.
정말 기계적일정도로 잘 짜여지고, 잘 연기하고... 정확하게 진단해서 군더더기 없이 딱딱 집어주는 작품은 정말 오랫만에 본 느낌이었어요. 정말로 고도로 프로페셔널한 느낌.
이 퀴담 공연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났다는데...지금와서 이런 구구절절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글을 안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저도 불과 어제까지, 이 작품을 보러가기 전 도저히 이 서커스가 어떤 건지, 무엇이 예술적인지 매혹적인지 불분명해서 갈팡대긴 했거든요.
누군가 저처럼 주저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 퀴담이 어떤 서커스인지 아시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잘 읽었습니다. 저도 태양의 서커스 프로그램 중 유독 퀴담을 가장 좋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바스터블님께서 말씀하신 서커스의 익살스러우면서도 그 기저에 깔린 서글픈 분위기(심지어 흔히 생각하는 서커스의 마스코트인 광대는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죠)를 강조했고, 연극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프로그램이여서가 아닐까 싶네요.
실크 공중곡예의 마지막이 죽음을 암시하며 아버지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장면이나 풍선을 통해 어머니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 하늘에 매달린 아버지가 신문에 파묻힌 채 무심한 표정으로 공중을 걷는 부분 등은 서커스와 연극이 하나가 되는 몹시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렇듯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있고, 연극적 진행을 따라가다보니 공연 후반 그 무심하고 재미없게만 보였던 아버지가 저글링 묘기를 보여주며 웃는 장면은 그리 거창한 묘기가 아님에도 감정적으로 가장 큰 울림을 주더군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잃어버렸던 것은, 그리고 다시 되찾은 것은 무엇일까요? 동심? 낭만? 자유? 서커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묘기의 나열이 아니라 인물과 서사가 있고, 또 그를 해석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퀴담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좋은 감상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덕분에 추억을 되새기고 갑니다 >3< /
네.샌드맨님 글보고 봤어요.
맞다..그 붕붕이라는 광대. 어떤 역할인지 모호하긴 했지만 등장부터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뭔가 느낌이 남달랐죠. 조명이 소팟되면서 홀로 막 소리를 지르면서 등장하는 연출. 그리고 줄곧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들..
그걸 서커스의 광대 변형으로 생각하니 뭔가 더 느낌이 남다르네요.
무서운 분위기면 퀴담이 맞을것 같은 느낌.
제가 볼때도 제 앞에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앉아있었어요. 공연시작전까지 열심히 닌텐도를 두드리던 아이었는데 공연이 시작하고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아이의 앞줄에 키가 큰 어른이 앉아있어서 아이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는데 막 주변으로 기웃거리며...
아이 관객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은 저 공연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내용을 이해 못해도 그 분위기와 곡예와 음악만으로 스크래치든 뭐든 강렬한 뭔가를 느꼈을것 같긴 했어요. 저도 vod를 뒤늦게 찾아봤는데 공연장에서 느끼는 현장감은 훨씬 거센 뭔가가 있어서.. 앞에 앉은 아이는 끝나고 정말 열성적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VOD로 보셨으면 Worlds away 아닐까요.. 젊은 여성이 모래구덩이(?)에 휩쓸려 빠졌는데 신비의 나라(?)로 넘어갔던...
'태양의 서커스 : 월드 어웨이 ' 라는 이름이에요.. 태양의 서커스 시리즈는 맞죠.
퀴담이 이런 공연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