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논란에 끼고 싶진 않지만.

제가 아직 파릇하던 시절 비건이던 친구와 사귀어 길게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제가 아주 오래된 구형카메라로 가만히 사진을 찍는걸 좋아했고, 저는 그 친구가.. 음 웃는게 예뻤어요. 우연히 만나게 됐고 사람을 사귀는건 누군가 낯선 이를 내 영역에 초대하는 그런 행위같은 거잖아요. 환경에 대한 모임이었나 그런 영화모임에 저를 초대해 함께 인연이 시작됐죠. 아쉽게도 우린 같은 언어를 쓰지는 않았고, 그 당시 저의 영어는 그야말로 밥줘. 물줘. 수준이었는데요. 그 친구는 저의 훌륭한 영어선생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더듬더듬 말을 하면 가만히 들어주었고, 때론 하고싶은 말을 못해 답답해하면 또 가만히 웃으며 이해할 수 있다고 해 주었죠. 적지 않은 낮과 밤을 온종일 걸으며 먹으며 자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정치적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은 여러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하더군요. 물고기까지는 허용을 한다던가, 계란은 섭취를 한다던가, 심지어 동물을 사육해 생산하는 우유나 꿀같은 것까지 거부하는 심한 채식주의자도 있다는걸 배웠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저는 별로 납득이 되지 않았고 비웃었습니다. 말이 안된다고 웃기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을 걸고 어렵게 실천하는 그의 신념을 내 머릿 속에서 고작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함부로 평가한 짓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한국음식 먹여준다며 본의 아니게 육식을 하게 해버리기나 하고, 어렵게 담배 마리화나 다 끊은 친구 앞에서 담배나 마음대로 피워대고. 그는 내 치기어린 주장을 한없이 들어주는데, 사람을 사랑한다던 저는 그저 다른 이의 진지한 신념조차 공감해주지 못하는 바보같은 철딱서니였을 뿐이었죠.


아직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저는 타국의 길거리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개가 정말 무섭고 걸리적거렸죠. 정말 나를 물려고 하면 발로 뻥 차버릴거라고 하니까 그 친구가 그럼 자기도 나를 물겠데요. 너도 뻥 차버릴까? 지 친구보다 개 편인 것 같아 그 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참 귀여웠어요. 뭐 원래 개를 키우니깐 그렇겠거니, 생각했지만 참 생명 하나하나에 민감한 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방에 바퀴벌레도 죽이지 않고 가만히 상자에 담아 밖으로 보내주더군요. 함부로 살며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았던 아이가 어떻게 지구와 온 생명을 그리 사랑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걸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그런 삶은 어떤 것인지 바로 옆에서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에 처음 강렬하게 채식주의자와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존경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 자리잡은 그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구나라고 어렴풋이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가 채식을 하는건 대부분 내 몸 아끼려고 하는거지 생명을 존중해서는 아니잖아요. 육식의 증가가 지구의 식량문제도 야기시킨다는데, 저는 아직도 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어떻게 요리하고 어느 부위가 맛있을까를 고민하지 살아서 나와 함께 살아가던 한 생명이라는 생각은 일부러 외면하려고 합니다. 어쩔때는 이렇게 내 취향은 잔인함을 바탕으로 하는가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스스로의 실천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옛날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동물을 잡으며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정서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개고기 반대하시는 분들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여러 층의 채식주의자처럼 내가 가능한 선에서 할 수 있는걸 조금씩 해 나가는 것. 논리가 부족해도 괜찮아요. 당장 뭘 이뤄내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 마음가짐 만으로도 함께 살아간다는게 좋습니다. 당신들의 주장은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역으로 초대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그 초대에 쉽사리 가지 못하지만,

충분히 지지합니다.

    • 생명의 순환 과정에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는건 참 좋은 일이죠. 개로부터 시작해도 나쁠건 없을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강요만 안한다면.

      • 남들에게의 강요란게 그렇죠. 스스로의 실천부터 어떤 운동, 반대파들과의 싸움, 테러까지. 내가 속한 사회가 바뀌길 원하는 강렬한 마음을 기반으로 한 많은 움직임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잘 쓰시네요.


      '우리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생명을 존중해서는 아니잖아요' 라는 말은 채식주의자 얘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채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말씀이신거죠?


      근데 정말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으로 채식 - 물론 어쩔 수 없이 간혹 육식도 합니다 - 위주로 사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저는 개고기를 고수하는 날선 비반대론자들이, 차라리 개고기를 정말 합법화를 하여 개농장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환경이라도 개선될 수 있도록, 그런 노력이나 관심이라도 보이면서 개고기 반대론자들을 비판한다면, 최소한의 설득력이라도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물론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불법화를 주장할 거고,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 불법화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 축산물 가공 처리법 시행령에 개를 추가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2010년 이후 시행령 개정이 10번이 넘는데 매번까지는 아니어도 2000년 이후 여러번 이야기가 나왔죠. 그럼에도 추가하지 못하는 것은 프레데릭님과 같은 개고기 식육 반대론자들의 강한 반발 때문이었죠.


        그런데 지금와서 '너네는 지금까지 합법화 안시키고 뭐했냐? ' 라고 하시면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 아닌가요? 




        프레데릭님이 지적하시는 동물학대나 비위생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막는 것은 개고기 비반대론자들이 아니라 개고기 반대론자들입니다.



        • 제 말은, 그러한 정부나 단체의 움직임 말고, 개인적으로 뭔가 해보시고 그렇게 날서게 몰아세우냐는 거예요.


          제가 개고기를 되게 좋아한다고 쳤을 때, 반대론자들이 많고 그 논리적인 이유가 비위생, 비인도적이라고 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개고기를 맘 편히 즐기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렇게 반대론자를 날서게 반대할 깡다구라도 있으려면,


          비위생적인 개고기집에 직접 문의를 한다거나 구청에 조사를 의뢰한다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네요.


          마냥 앉아서 잘 드시다가, 반대론자 의견에 핏대 세우고 개빠라고 놀리는 꼬라지는 정말 보기 안 좋거든요.

          • 선후 관계가 잘못 된것 같은데요..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개고기를 가축에 등록하지 말라고 하고 주변에 개고기 비반대론자들을 날카롭게 공격하며 악다구니 쓰지 않았으면 지적하시는 문제들은 이미 해결이 되었을텐데요.


            반대론자들이 먼저 야만이네 뭐네 공격을 하지 않으면 핏대 세울일도 없죠.  원인 제공은 다 하고서는 '내가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동안 너희는 말리지 않고 뭐했냐?' 라고 책임 전가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할말이 없으니 '너네들은 뭐했냐' 라고 포인트를 바꾸신것 같은데, 저로서는 제대로 된 포인트라고 느껴지질 않네요. 

      • '생명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게 참 공허하게 들립니다.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동물을 어떻게든 이용(고기, 가죽, 노동력, 놀잇감, 더 나아가서는 동물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까지)하며 사는
        인간이 가지는 동정심이라는 건 과연 뭘까 싶기도 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기 위해 자연상태를 벗어나게 해 그들의 건강을 생각지 않고 교배를 해온 결과물을 '사랑' 내지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나...





        혹시 '모든 가축의 해방' 같은 운동은 없나요.

        • 역시나 극단적이시네요. 식물까지 안 먹으면 그럼 뭘 먹어요? 공기와 물만 마실까요?




          육류와 생명에 대한 그런 철학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건데, 공허하고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뭐하냐라고 되물으시는 느낌이거든요.


          되려 그 철학을 존중합니다라고 좋게 표현해볼 수 있는 판에 말이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여직 님이 삼겹살, 치킨 즐기시는 거를 대놓고 비판을 한 적은 없죠.

      • 감사합니다. 자기 바운더리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류는 내 몸 생각하는 유기농 채식단 아니었던가요? 좀 이기적인 동네죠. 


        좋은 생각을 하시는만큼 인내심갖고 꾸준히 기다려보세요. 바뀌는 것 없다 하시지만, 은근히 바뀌고 있을걸요. 사람들 마음 속에서부터. 

    • '참으로 훌륭하게 자라셨군요, 아가씨. 이 늙은이는 이제 언제 죽어도..'같은 대사를 치며 눈물을 비치는 미노년(중요) 집사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 ㅋㅋㅋㅋㅋ 이거 뭐에요? 비꼬시는거예요?

        • (정색)(엄격)(진지) 진심인데요. -ㅁ-

    • 아, 갑자기 저도 생각났어요. 예전 100분토론에서 개고기 논란 때, 패널들 중에서 여자 고등학생인가 대학생인가가. 자신은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개고기 논란을 하고 있던 양쪽을 무자비하게 망신을 줬죠.


      그 분의 논리가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그간의 토론 자체가 모두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애초이 있지도 않았고 모두 자기 사람의 욕심만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의 대부분의 발언 자체가 굉장히 인상깊었네요..


      이뻤었나? -_-;

      • 이뻣을거예요. ㅎㅎ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면 그저 이뻐 보입디다. 저는. 

    • 결국 내 혀 만족시키겠다고 열심히 자기합리화에 몰두하는 제가 심히 부끄러워지네요. 농후발효님의 글과 더불어 가장 와닿는 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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