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문제에서 애착의 일반화라는 점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이런 류의 논쟁에서 공격을 피하기 위한 일반적 수법으로 자기 자신의 입장을 먼저 밝히자면 저는 개 안먹습니다. 개 고기가 눈앞에 주어졌는데도 사양했었습니다. 다만 개를 먹는 분들의 행위를 나서서 제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역시 개고기를 먹는 행위를 인정하냐 라면 그것에는 거리낌이 있다, 이 정도이고...
개를 먹지 말자 라고 하는 사람들이 개를 먹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 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애착을 갖는 대상이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한 특정한 개에 한정되는게 아니라, 그 애착을 개라는 동물 종 일반에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애착이 보편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그렇지만, 논리적으로도 틀린건 아니죠.
개를 먹지 말라는 분들은 애착의 대상으로서의 개가 살해 취식당한다는 것에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개를 먹는 분들은 고통의 문제는 아니고 일종의 즐거움의 문제죠. 저는 쾌락주의자기 때문에 쾌락이 문제라고 말하려는건 아닙니다. 쾌락은 선인데요. 다만 쾌락과 고통이 상충할 경우는 고통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데 말이죠.
다른 동물은 어떻다, 라는 이야기는 일단 논외로 치고 이야기하고 싶은게, 개라는 동물이 유발하는 애착을 식용으로 이용되는 다른 동물과 등치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역사성이란게 있잖습니까.
나아가 애착의 일반화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영역에서 관찰되고 필요한 것이라 여겨지는 겁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논점이 흐려지니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저는 저런 부분 다 감안하고도 개 먹는 분들을 제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아직 스스로 납득할만한 결론을 못 내려서요
개가 인류문명과 함께 해 왔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확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한 역사성을 근거로 개 식용에 반대하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봅니다.
이유인즉,
인류가 기아상태에서 벗어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나와 내 식구가 굶어죽게 생겼는데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거라고 봐요
때문에, '개는 인류의 동반자였을뿐 역사적으로 식용이 아니었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키우던 개 잡아먹는건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아주 흔한일이었어요.
도회지에서만 생활하신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말하고자 한건 개는 역사적으로 식용이 아니엇다, 라는게 아닙니다. 식용으로 많이 이용되엇죠 그거 인정하구요. 다만, 개가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과 애착적 관계는 크고 식용관계는 적다" 이건 사실이 아니냐는 겁니다.
절대적으로 이렇다! 라는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저렇다는거죠
과거 기마민족이 말에 대해서 가지던 애착이나
(지금도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들은 많습니다.)
사막지역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낙타에 대해서 가지던 애착이,
개가 인간과 가지는(또는 가졌던)애착관계보다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따라서,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과 애착적 관계는 크고 식용관계는 적다"라는 명제 또한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개에 대해서 가지는 애착적관계는 다른 동물에 비해 크다"라는 말은 참일 수 있겠죠.
나는 당연히 그렇지만, 인간사회 일반을 봐도 그럴거 같은데요. 말이나 돼지에 대한 애착보다는 개에 대한 애착쪽이 더 컸을거 같습니다.
거기에 더하자면 말은 다분히 군사, 통신상의 목적이라는 실용성이 중시된 부분이 크지만, 개는 실용성이 중시된 동물도 아니죠. 수렵견으로 쓰이기야 했지만, 수렵견보다는 그냥 동네 똥개로 사는 경우가 더 많았을거 같습니다. 번견으로서의 용도도 있는데, 그러다보니 일종의, 님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가족의 일부처럼 여겨진 면도 있다고 보구요
개가 가족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는걸 부정하려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일반화해서 모든-또는 대부분-의 인류와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고 일반화 하는것은 오류라는 거에요.
오히려, 기마민족에게 말은 보다 더 식구와 같습니다. 애초에 생활을 함께 하기도 하고 생명과도 관련된 것이니까요.
정서적인 교감 면에서도 애완견 따위보다는 훨씬 더 강합니다.
개야말로 애초에 실용적인 목적으로 야생 늑대를 가축화 한 것이구요.
기마민족은 생존의 이유때문에 말 고기를 보다 자연스럽게 먹었죠. 그렇지만 한국의 전래동화등에 나오는 충견 이야기 같은게, 근대에서야 만들어진게 아니라면, 조선인이 개를 대하는 것과 기마민족이 말을 대하는 것은 좀 달랐다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본문에 유보적으로 쓴 것도, 저는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성립하지만, 명쾌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한거기도 하지만서도
인간이 가까이 생활하는 동물과 교감하고 의인화 하는 것은 흔한일입니다.
딱히 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에요.
몽골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등장하거나, 말이 인간을 돕거나, 말 자체가 의인화 된 내용의 동화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몽골 동화"로 한번 검색만 해보셔도 아실 수 있으실겁니다.
조선인이 개를 대하는 것보다 훨씬 친밀하고 가깝게 대했으면 대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식량이 비교적 풍족한 농경사회와 항상 식량이 끊길 위기에 처한 유목사회가 동일시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말이나 소에 대한 애착이 개에 대한 애착보다 약할리가 없을것 같아요.
게다가 김유신이 말 목을 벤건 역사책에도 나올정도잖아요? 관운장도 중국인이니 개고기는 즐겼을것 같은데 적토마 받고 입이 찢어졌단 말이죠.
일단 가격부터가 넘사벽...
내가 겪는건 고통이고 네가 겪는건 쾌락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일단 그렇게 정의했습니다.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정쩡한 개 식용반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왠 먹사가 '게이들은 동성애를 통해 쾌락을 얻지만, 저는 그들을 보면서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그분은 그렇게 정의할수도 있겠고, 고통을 겪는다니 우선해줘야 겠네.. 라고 해줘야 하나요.
애착과 혐오를 동일시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성애와 정상적인(?) 가정'에대한 애착이라고 바꾸면 어떻습니까?
게이들은 내가 애착하는 전통적이며 아름다운 가정 규범과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고 죽이려 들고 있으므로 고통스럽다라고 주장하구요.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호모포비아에게는 고통은 사실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지랍 넓게 민폐를 끼칠리가 없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당신들이 아끼는 그 개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말꼬리 잡는 거로 밖엔 보이지 않습니다만
일단 저는 개를 키우지 않고, 그리고 마지막 줄 그런 말 나올까봐 애착의 일반화 이야기한건데 같은 말 또하게 하지 마세요
내가 좋아하는 개를 타인들이 못 먹게 함으로서 느끼는 승리감과 내가 먹고 싶은걸 남의 간섭으로 못 먹게 하는 고통으로도 역전할 수 있죠. 보편적 정의가 힘든 주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 개인으로서는 이것에 명쾌한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다, 라고 유보적 태도를 누차 천명한거죠. 다만 이런 부분은 논점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제시한거고
생각을 좀 고쳐먹으셔야할 것 같은 게요. 동성애든 이성애든 쾌락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동성애의 '애'자는 사랑이라는 거 아시죠?
그리고 잠깐만요,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자들을 보며 '고통'을 겪나요. 마음이 아프고 불쌍해서 미칠 것 같고 그러나요?
동성애자들이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이겠죠. 완전히 다른 예시를 갖고 오셨네요.
내가 애착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서 이렇게 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느끼는 건 당연하죠.
이것 자체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싫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제재하려고 하는 건 다른 문제가 됩니다.
개의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다른 동물을 어떻게 할거냐 라는 감정적인 얘기가 나오는 건 개를 안먹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대개 개를 먹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를 먹는 행위를 인정하고 난 뒤의 주장이 아니라 일단 나쁘다고 규정한 다음에 나오는 듯한 인상을 늘 받게 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인간이랑 친하다' 뭐 그런 류의 얘기들은 '이렇게 귀여운 아가들을 먹다니 나쁜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개인적으로 강하게 제지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 단계로서는 공감대를 늘려나가는 이상으로 바로 결론낼 수는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역사성이나 일반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그에 대한 반박이 나오면 '그냥 내가 내리는 정의'라고 하시는군요.
역사성과 일반화에 대한 "내 정의" 를 말하는데 뭐 문제있나요. 내 정의가 그대로 일반화 될 수 있다면 그런 유보적 표현 안씁니다
계속 말하지만 그래서 유보적으로 말한겁니다
유보적임에도 말한건, 이런 논점이 유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말한거고.
개는 식용으로 쓰이지만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식용으로 쓰이진 않죠. 약용으로 쓰이긴 하지만, 실제 약효가 검증된 것은 아니고요. 저는 고양이 키우는 입장으로서 가끔 약용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고 눈쌀이 찌푸려지긴 하지만, 그것은 무지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무지로 불필요한 고양이가 낭비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지 고양이를 먹었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집 고양이를 먹자고 들지 않는 이상은요.
감정적인 면에서 애견가들의 거부감도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거부감 때문에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고 봐요. 물론 가까운 사람 중에 개 식용에 반대하는 애견가가 있다면 그 앞에서 굳이 개고기가 뭐가 문제냐고 맛있기만 하다고 항변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사적인 관계에서는 충분히 존중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공적 영역으로 나왔을 때는 전혀 이해가 달라지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동의합니다. '스포일러 논란'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네요.
레미제라블을 심취해서 읽고 있는 사람에게 '자베르 자살한다'라고 이야기해서 김을 빼는건 분명 나쁜짓이겠지만,
공적인 평론에 등장한 동일한 문구를 보고 스포일러라고 분개하는건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것 뿐일테니까요.
문제가 논리적으로 명쾌하다면 좋지만 대개 명쾌하지 않고 이 문제도 그렇습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고양이 식용은 진지하게 사회적 문제로서 의제선상에 오르지 않았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아요. 고양이의 예는 개와 비교하기 적절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할 때 고양이에 대한 애착을 근거로 개에 대한 애착을 논하는 것은 그렇게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개에 대한 애착은 의제화선상에 올라 있으니까요. 의제화 선상에 오르고 아니고를 누가 정하느냐가 문제고 그렇기에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 밖에 없지만
님은 거부감으로 표현하셨는데,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좀 더 진지한 고려의 대상, 나아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빠들이 무식한 소리 한다, 라는 태도는 그런 사람들이 공유하는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과격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이 그 말을 했다는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쉽게 접할 수 있는 태도로서 말하자면
애착의 역사가 식용의 역사보다 크다한들 이게 개고기 취식 반대의 근거가 될수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애착의 역사가 식용의 역사보다 크다는것을 뒷받침할 근거는 있으신가요?
애착의 역사는 근거중 하나고 보다 근본적 논거는 고통의 문젭니다. 그리고 역사성의 문제는 본문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단은 논외로 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어째 그게 더 커진건지...--
제대로 된 연구자가 아니라서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건 인정합니다. 그런 연구가 있긴 한지도 모르겠지만.
음... 애견인의 고통 까지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타인의 취식을 반대하게되는 순간 이기주의의 발현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사족일지 모르나, 저 역시 애견인이고 물론 개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조금 거칠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논리는 결국 "내가 애착하는 개를 당신들은 어떻게 먹을수 있지? 닭이나 돼지는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괜찮지만 말이야." 식에 지나지 않죠.
그 고통이 도출된 과정의 타당성이 문제인거죠. 위에 게이 이야기로 반론(이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한 사람들과 이야기에서 답했듯이. 그 고통이 타당성이 있다면 이것은 일단 논의가 가능해지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금단계로서는 "확실한 타당성" 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대다수의 동의" 를 구한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차 말하듯이 저는 개고기를 지금으로서 막을 확고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 논의가 바로 기각될 수 있는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겁니다.
뭔가 모호한 선에서 교착되어 있다, 그런 느낌이에요.
고통 자체는 타당하죠. 그래서 애견인 앞에서 개고기 얘기를 안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얘기는 많은 분들이 언급했었고요.
앙겔루스노부스님은 누군가의 고통에 주목하시는 것 같은데 저 역시 애견인 앞에서 맛있는 보신탕 얘기를 안하고 싶은 것처럼 개고기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고통스러우니 너도 하지 말아야 한다를 넘어서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걸 하는 넌 나쁜놈이라고 말하는데 갈등의 소지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단적으로 말하면 역시 개 식용이 중단되는거죠.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대로 지금 단계에서 그걸 사회에서 중단시킨다는건 매우 무리한 일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 고통이 해결될 일이 없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네요. 뭐, 논의의 진전이나 사회의 변동에 따라서 그 고통이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 된다면 식견은 정말 위기에 처할거고, 그러한 논의가 수그러 들면 식견은 지속되겠지만, 제가 보기에 점차 식견을 없애자는 압력은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기본적으로 취향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기 때문에,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지는 않는거기도 하니...
개인적 입장을 밝히자면 저는 개를 정말 사랑합니다만, 키우지는 않고 있고, 이 안건으로 고통받는 편도 아닙니다. 심지어 복날이 다가오면 길가다 믹스견들을 보고, 저거 복날 넘기겠나... 하면서 심드렁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그런데요.
다만 저 스스로 이야기한 고통에의 일반화, 공감이란 부분때문에, 그것을 괴로워하는 사람들 입장을 이해해주고자 하는 거랄까나...
9억명 힌두교 신자들의 고통을 배려해서 소고기를 금지한다면 한번 쯤은 생각해보겠습니다.
명쾌한 대답입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