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와 개고기

개고기 논란을 보며 나 자신의 입장은 어느쪽일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대학교까지 닭고기를 거의 못먹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어떤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요.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들을 많이 팔았습니다. 한 마리에 백원이었을 거에요. 당시에 과자 한 봉지나 하드 한 개가 보통 백원이었지요.

과자 한 번 먹을 금액으로 병아리를 삼남매가 한 마리씩 사왔었죠.

누나몫으로 사 온 녀석은 팔팔이였습니다. 너무 활달하고다른 녀석들을 괴롭혀서 그렇게 이름지었죠. 형 것은 골팔이. 처음엔 골골하다가 나중에 팔팔해졌다 해서 그리 불렀구요, 제 것은 제 이름 가운데자를 따서 x팔이 라고 불렀습니다.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나중에 아버지가 뒷 베란다에 닭장을 크게 지어주실 정도까지 잘 키웠습니다.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청소도 해주고 애완동물처럼 길렀지요.

이름을 부르면 신기하게 쳐다 보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먹이 주는 사람은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녀석들은 닭이 됐고 저는 거의 매일 녀석들과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닭이 되니 누나나 형은 흥미를 잃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무슨 커다란 통에 국을 끓이시더라구요, 어머니가. 아버지는 웬일인지 일찍인데 집에 계셨구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어머니께 물어보니 아버지가 닭을 잡아먹자고 하셨답니다.

팔팔이는 이미 털이 다 뽑혀 손질이 돼 있었고 그 날 아버지는 혼자 닭 백숙을 드셨지요.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닭고기를 못 먹게 되었고 다시는 병아리를 사오지도 않게 됐죠.

그런데 남들이 닭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쉽게 생각했던 닭고기가, 내가 애정을 가졌던 어떤 대상으로부터도 나올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는 걸 느낀 순간 내가 먹는다는 행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겠죠.


시간이 한 10년쯤 흐른 뒤에는 다시 닭고기를 먹게 됐습니다. 아마 기억이 희미해져서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육식이라는 게 사육과 도축을 생활에서 거의 완전하게 분리시켰기 때문에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소를 먹는 게 아니라 쇠고기를 먹고, 돼지를 먹는 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 자신은 육식은 하되 개고기는 먹지 않지만, 개고기를 먹는다고 그걸 반대할 명분은 - 육식인으로서 -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를 먹는 게 아니라 개고기를 먹을 뿐이라고 생각할테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굳이 아이가 좋아하는 닭을 잡아먹은 아버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차라리 닭고기를 사다 드시지..

    • 말 나온김의 이야긴데 개를 키우면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을까요?"

      • 네 있습니다..



        제 주변에



        식용개와 키우는 개는 명확하게 구분하시던걸요.. 키우는 개는 죽었을 때 장례도 치뤄 주고..



        "보신탕은 어려서부터 먹어오던 맛난 음식이야 쩝쩝"

        • 솔직히 이해는 안가는...--

          • 소 돼지 닭 키우는 분들이 소 돼지 닭 안 먹겠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소 돼지 닭은 가축으로 키우는 것이고 애완견과는 다르다고 하시겠지만, 키우시는 분들 보면 맘에 가는 애들은 이름도 붙여주고 아프면 같이 걱정하시고 합니다. 그렇다고 걔들을 도축 안 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 개고기를 먹던 사람이 개를 키우면서 안 먹는 경우는 많더군요.

      • 아주 많습니다. 많이 봤습니다.
    • 물론 육용으로 말고 반려견으로 애착갖고 키우면서

    • 갑자기 닭 이름이 궁금해지네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동팔이.


      얼마전 인터넷에서 어떤 방송 캡쳐본을 봤는데 외국인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던 닭을 잡아 찜닭으로 요리한 아내의 사연이 생각납니다.


      남편이 얘길 듣고 기겁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의 장난이었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찜닭을 남김없이 싹싹 먹어치우더군요. 

    • 애지중지 키우던 가축을 잡아먹는 게 아버지 세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지요. 글쓴 분에게는 애완 닭이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저 가축이었던 거죠. 


      전 애지중지 키우던 짐승을 잡는 편이 공장식으로 길러지고 도축된 고기를 먹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불필요한 육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저 닭들은 아이들이 이름 붙이고 키우던 애완동물입니다. 아버지 세대가 가축을 일상적으로..그거야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키우셨으면 그 때 일이죠.

        아버지는 그냥 돈 별도로 안들이고 닭백숙 드실 생각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때는 그냥 참았는데 차라리 악쓰고 대들었으면 좀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30년도 넘은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거든요.
        • 매드해터님의 감정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애완 동물이라는 문화 자체가 희박하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는 거죠. 아버지 세대에서는 자식들이 닭을 잘 키워놓았으니 다 큰 닭을 맛있게 먹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인 거니까요. 물론 좀 더 세심한 스타일의 아버지였다면 그냥 사다 먹지 굳이 안 잡았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 제 생각에 그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닭 키우신 분도 아니고 서울 태생에 쭈욱 도시에서만 사시던 분이고 가축보다는 개 등의 애완동물에 더 익숙한 분이시니까요. 어릴적 마당이 있는 집에 살 땐 항상 개를 키웠죠. 닭이 애완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나 공감을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는 행위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냥 이기적이었던 거죠.


            같은 세대인 어머니도 한 마디 하셨는데 무시하셨으니까요.

            • 닭을 잡고 손질하는 것은 누구의 몫이었는지 궁금하군요.

    • 일부 시골에는 이웃집과 개를 바꿔먹는 풍습도 있습니다.

      • 그래서 뭘 어쩌라는 댓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 아마 아버님께는 닭은 그냥 식용 목적의 가축일뿐이어서 자식이 애정을 갖고 대하는 생물체라는 자체를 이해 못하셨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너무 슬픈 일화네요ㅠㅠ

    • 아버님이 너무하셨네요.;;

    • 또 하나 떠오르는 에피소드. 예전 살던 아파트 축사에 어머니가 관상용 닭을 기증하셨는데, 닭소리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오더니 어느날 노인정에서 그 닭 두 마리로 삼계탕을 해 먹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무식한 노인네들이라고 크게 분개하셨습니다.


      이런 게 전통이나 그 세대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죠.

    • 저는 본문 마지막 부분에 말씀하신 것과 반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육과 도축을 생활에서 분리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육식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제 주위에 농장에서 자란 친구들이 몇 명있는데 그 중 누구도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농장에서 동물들을 사육하고 도축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고 받아들이면서 큰 아이들입니다. 직접 도축을 하기도 했고요. 그게 일상이라고 보고 배운 친구들은 육식이 자연스럽고 기르던 동물이 저녁식사가 되는데에 대한 감정적 태도도 없더군요. 오히려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는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그게 죽은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될 때에 충격을 받고 울고불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특히 영어에는 동물의 이름과 음식으로 사용되었을 때 부르는 고기의 이름이 달라서 어릴 때는 그게 동물을 죽인 것인지 모르고 먹게 되거든요.
      • 물론 애완동물은 다른 얘기입니다. 얘들은 먹으려고 기르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애완용으로 기르던 닭을 죽여 저녁식탁에 올리는 게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면 농장 생활에서는 어떤 동물이 애완동물이고 어떤 동물이 식용인지가 처음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감정의 혼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생각해볼만한 좋은 글을 써주셨네요. 제가 느낀 건요.




      * 저 같아도 닭고기를 한동안 못 먹었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저 같았으면 아빠를 꽤 오랜기간 이해 못 하고 아빠에 많은 화가 났을 것 같아요. 최소한 먹어도 되는지 물어라도 보거나, 물어봤어도 화났겠지만.


      * 저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라고 공손히 표현하신 것으로 봐서, 아버지를 따르시는 기본적인 마음은 저보다는 훨씬 깊으신가보네요.


      * 닭고기와 개고기는 좀 다른 게요. 닭고기는 정말 매일 같이 눈에 보이는 고기라서, 아마도 개고기보다 더 무뎌지기 쉬울 거예요. 물론 닭도 주변 길가에서 흔히 보이고, 내가 먹이를 주면 졸졸 쫓아오는 녀석들이라면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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