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영화번역(들)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야, 번역된 자막으로 보는게 본래의 대사가 가진 맛을 얼마나 깎아먹는지

익히들 아시죠. 그 번역이란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지도.

 

어제 에이리언2의 블루레이를 보다가 마지막에 리플리가 파워로더로 에이리언퀸과 맞붙는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리플리가 유명한 대사를 내뱉죠. 'Get away from her, you bitch!'    근데 아니나다를까,

자막으론 걍 '그애 한테서 떨어져!'라고 온건화 되어서 나오더군요. 보신 분들은 아실테지만, 에이리언2편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두 종족의 '암컷들'간의 대결이 큰 포인트인 영화입니다. 여기서 'bitch'라는 말은 단순히

욕으로 치부될 말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에 따른 카타르시스를 팍 터뜨려주는 역할을 하는 단어죠. 그 때문에

3편의 트레일러에서 주요 카피문구 중 하나가 'The bitch is back' 이었던 거구요. 

 

블레이드러너 블루레이를 볼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마지막에 로이배티가 데커드에게 SF영화사상

길이남을 명대사를 읊는 장면에서, 자막은 그 대사가 가지는 처연하고 폭넓은 뉘앙스를 다 까먹어버리고  제멋

대로 번역되었더군요. 차라리 인터넷에 도는 다운로드영상에 맞춘 아마춰들의 자막이 훨 낫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 대사에 애정을 가지고 자막을 만들었으니까요.  

 

국내 번역자들은 영화의 이런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최신영화 같으면 그나마 좀

이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래된, 명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들에 대해서는 좀 그에 맞는 취급을 해주면

좋겠군요. 물론 자막번역자들 에게도 나름의 룰이란게 있어서, 폭넓은 대상의 감상을 고려해 대사당 3초안에

읽히도록 번역한다든지, 한 문장에서 다음문장으로 넘어갈때 가능한한 3,4초의 시간차를 둔다든지 하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단어들이 부득이하게 걸러진다는 것도. 하지만 자신들이 만든 자막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있어서 그 영화에 대한 평생의 인상을 좌우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 자막이 평생의 소장물로 남는다는 사실도.

 

이건 뭐, 영어권 영화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죠. 일본영화나 아니메의 경우 디스크 출시 때엔 오덕들의 입김덕에

대사가 제법 다듬어지지만, 극장상영 시의 번역은 엉망입니다. 제가 영어는 까막눈이지만 일본어는 알아듣기 때문에

잘 알죠. 최근의 경우로, 썸머워즈의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고향집에 데려가자 친척남자들이 '남친이랑

그거는 했냐'며 놀려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자막은 그 농담 자체를 아예 없었던걸로 무시하더군요. 영상의 가위질

만이 문제가 아니라는걸 번역자들 붙잡아놓고 설명이라도 해줘야하는건지. 

 

글고 보니 예전에 듀게분 중 한분이 이런 말을 한게 생각나는군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질적발전이 더디고 한계에 부딪

히는 큰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번역의 부실이라고 했던. 영상물이든 출판물이든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영어 배우는 사람들은 차고넘치는데 다들 뭐하나요 정말.

 

       

    • 기본적으로는 제작사가 자막제작에 있어서 필요할만큼의 시간이나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겠죠. 에이리언 자막은 디비디 시절에도 엉망이었습니다.
    • 자막에 불만 있을 때는 많지만, 예시로 드신 경우는 번역자를 탓하기만도 뭣한게, 사람들이 귀로 듣는 것에 비해 눈으로 보는 자막에는 욕설에 민감해요. '년' 소리가 한국영화 대사로 나왔으면 대부분 흘려듣겠지만, 에일리언 자막에 '년'이 뜨면 아마 상당히 화제가 될걸요.

      비슷한 맥락(오히려 정반대 맥락인가?;)에서 GI 제인에서 데미 무어가 교관에게 "Suck my dick"이라고 대들고 동료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있는데... 자막은 완화해서 표현했지만 하기야 저걸 어찌하겠수...하고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 하기야 외국영화에 나오는 욕이란 욕은 다 걸러냈던 시절에 썼던 자막을 그대로 갖다 쓴듯 하니...
      최종적으로는 디스크가 안팔리는 국내시장을 탓해야 할까요. 서플 디스크가 두장이나 되는데 한글자막은
      없으니 저한텐 그림의 떡. 어차피 서플은 잘 안보지만서도... 글고보니 스타더스트님은 에이리언 앤솔로지
      블루레이가 국내엔 출시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셨었죠. 출시된것 만도 감지덕지해야 하나;
    • 이번 블루레이가 그 쌍욕 나오게 만들던(진심으로 저주합니다) 디비디 자막을 그대로 썼다는 말도 있더군요. 오역도 오역이지만 스킵이...
    • 알 한정판..은 나오기 힘들거 같다고 한적은 있습니다.ㅎ 요샌 서플 자막 제대로 보려면 영어보다 일본어 배우는게 나을수도 있겠더군요.
      서플먼트에 영어자막 없고 일본어 있는 경우도 꽤 있어서;
    • 아, 알 한정판... 제가 기억을 잘못했군요.ㅎ;
      에이리언 앤솔로지의 경우 서플 자막이 중문은 있는데 일어가 없더군요;;
    • 자막 만드는 것도 책 번역하는 것처럼 표지에 이름 걸고 책임감 있게 하면 좋을텐데요.
    • 어느 정도 이해는 돼요. 귀로 듣는 욕이랑 글자로 보는 욕은 느낌이 정말 많이 다르니까요.
    • 일본은 가격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국가설정을 일본으로 바꾸지 않으면 나오지 않도록 숨겨진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공용판본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면 나오는 경우가 꽤 되는데.에이리언은 저도 모르겠군요.
    • 주안 님 / 전 이해를 할까 싶다가도 이해하기가 싫어지네요. 국내영화는 연애질 아니면 욕질 영화가 태반이잖습니까.
      왜 외국영화의 욕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건지. 그것도 중요한 뉘앙스를 포함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리고
      욕이나 에이리언 한편 만의 문제도 아니구요.

      stardust 님 / 아하... 설정 바꿔봐야 겠군요. 한자가 쥐약이긴 하지만...ㅎ
    • 우리나라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욕이나 비하어 같은 거
      함부로 자막에 넣었다가는 바로 항의 전화 오고 신고 들어가요.
      그래서 가능하면 안전하게 가는 편이 보통입니다.
      번역가는 정말 쓰고 싶지만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 새끼" 이런 온화한 욕설도 쓰기 애매한데요.

      제 짧은 경험 중에도, 입 험하고 천한 캐릭터가 청각 장애인에게
      "귀머거리"라고 부르는 게 장애인 비하라며 짤린 적이 있습니다.
    • 옛날에 딴지일보에서 '빌리 엘리어트' 자막의 욕설 번역을 갖고 이와 비슷한 얘기를 몹시 딴지스럽게 풀었던 적이 있었죠...
      라고 적다가 검색해보니 바로 나오네요. ^^;

      심한 욕설이 여과 없이 마구 튀어나오는 글이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클릭하지 말고 패스하시길.
      http://www.ddanzi.org/ddanzi/section/club.php?slid=news&bno=3650
    • Ylice/ 그러니까요. 국내영화에 나오는 욕은 귀로 듣는데 외국영화의 욕을 번역하면 글로 봐야하잖아요.
    • 주안님이 뭘 말씀하고 있는지는 알고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라면 로이배티님이 링크해주신 딴지사설이 제
      생각과 비슷하니 관심있으시면 읽으시면 되겠고... 제가 예로 든게 저렇다보니 포인트가 자막의 욕설번역
      문제로 가버렸고, 그것만해도 충분히 쟁점이 될 수 있는 건이지만 제가 본문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욕이든
      뭐든 국내의 번역자막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하거나 무성의한 것들로 넘친다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안떠들어도 다들 아시는거지만, 이번의 에이리언 블루레이 때문에 새삼 화딱지가 나서 이런 얘길 쓴거죠.
    • 한글학교에서 중학생 이상 애들에게 매일 한국 영화를 보여줘요. 대부분 한국에서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영화들이지요. 그 영화들에 등장하는 욕만 모아도 한바가지가 되는데, 저런정도 욕들가지고 자막에 못 넣는다는게 이해가 안가는군요.
    • 당연히 자막은 표현의 제한이 엄청납니다. 말 빠른 대사의 경우는 두리둥실하게 의미 전달하기에 바쁘고요.
      입만 열면 욕 나오는 영화는 그야말로 코미디가 되죠. 번역자는 욕을 거의 쓸 수가 없어요.
      시베리아에서 귤이나 깔 십장생... 뭐 이런 식으로 하는 수 밖에 없죠. 제가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OCN인가요 아니면 삼성영상사업단 채널이었나요. 사우스파크 번역을 한 동안 했었는데
      말 빠른 건 둘째치고 온갖 욕에 비속어란 비속어는 다 나오죠. 그것도 랩이나 노래로 읊어대니...
      글자 그대로 번역할려고 해도 욕 사전을 찾아야할 판인데, 그걸 반의 반도 표현을 못하니...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어요. 그래도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본다면 손 발이
      오그라들겠지요. 우리나라 영상 번역의 문제는 스타더스트님 말씀대로 제작사나 수입사들이
      투자를 안 하고 번역의 중요성을 모르니 때문이 가장 큰 문제이고요. 원글님이 예로 드신 것보다도
      진정한 오역이나 악역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심한 경우들은 예를 아니오 혹은 그 반대로
      번역하는 경우이고 번역자 자신이 영화의 내용을 자기 임의로 바꾸는 의도된 오역들이 더 문제죠.
      요즘은 번역자들이 편당 혹은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전문 영상 번역자 분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않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번역을 하지 않는 이상은 번역의 질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10여년 전, 제가 비디오, 케이블, 디브이 영화를 번역할 때, 받았던 번역료가 편당 15만원에서 20만원이었어요.
      한편 번역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걸리는 것도 있었고요.
      한 달에 10편을 번역하면 1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이 월수입이었습니다. 극장용 영화 번역하시는 분들의
      십분지 일이에요. 극장용 번역이 더 어렵지 않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글자 수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번역입니다.
      많이 양보해서 글자 수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번역료의 10배 차이날 정도는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빽이나 연줄이 없으면 극장용 번역 자리를 딸 수가 없는 거고요. 그래서 제가 번역계를 떠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인 남자가 풀타임으로 번역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거든요. 대학생 아르바이트라면 몰라도.
    • 번역가 잘못이라기보다, 제작자나 다른 입김이 이유일 확률이 큽니다. 번역가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안전하게 갈 수 밖에 없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2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4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9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0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6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3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7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1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3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4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0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3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