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지극히 비일상적이면서 일상적인 - 길어요
두서 없습니다. 정말 두서 없습니다.
14일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17일에 발인 하고 밤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과 너댓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18일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날짜를 제대로 기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가늠이 안 돼서 저 스스로 제대로 기억하고자 자꾸 확인하게 되네요.
'너무'라는 표현을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얼마 전 국립국어원에서 긍정적인 서술어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 내려서 쓰는 말이지만
어제 하루 덥지 않아서 너무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발인 하는 내내 선선하고 바람이 잘 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17세에 시집 오신 외할머니는 지금 제 나이에 남편을 떠나 보내셨고 지금까지 홀로 4남매를 키워내셨어요.
막내인 엄마는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오셨고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폼은 제대로 멋있게 잡는 아빠한테 홀라당 넘어가서 결혼하시고
오빠랑 저 낳으시고 온갖 고생 다 하고 사셔서 할머니랑 언니 오빠들 걱정은 있는대로 업고 사셨네요.
지난 토요일에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를 뵈었는데 정신이 온전하시고 거동 하시는 것도 괜찮으셔서
나 할머니 염색 안 한 거 처음 본다고 농담도 하고 할머니가 네가 막내 중에 젤 막내인데 남자친구 왜 안 데려오냐고 타박도 하시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으시구나 마음의 준비 하라는 저 주치의는 뭐야 하고서 놀러갔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온 연락으로는 의식을 잃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찾아뵈니 의식 없이 숨만 거칠게 쉬시는데 사람이 그렇게 숨을 힘겹게 쉴 수도 있구나 처음 보았습니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사람 아프게 숨을 거칠게 쉬시는데 제가 당황하고 울고만 있으니까 큰삼촌께서 할머니 손 잡고 인사 드리라고 하시더라고요.
...삼촌들이랑 이모랑 엄마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하시는구나. 엄마는 나한테 그런 얘기 안 했는데.
하긴 엄마는 더군다나 막내딸인데 항상 나한테 느이 할머니는 시골 내려가면 항상 계시는 분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으니
딸한테라도 할머니 가실 거라는 얘길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어요. 엄마도 인정하기 어려우셨을테니.
그냥 뻔한 이야기들. 할머니 사랑해요. 쫄따구 막내 손녀 남자친구 봐주신다고 했으니 더 계세요 뭐 손발 오그라드는 이야기들.
몇 마디 안 했는데 눈에선 그냥 눈물이 쏟아지고
곧 돌아가시겠다 싶어서 새벽까지 부모님과 병실에 있었는데 심전도는 그냥 그 상태이시고 다들 출근해야 해서 집에 와서 두어 시간 자고 출근해서 일 하고
오후 5시쯤 사무실 사람들 다 퇴근해서 30분쯤 있다가 병원 가야지 했는데 5시 15분쯤 갑자기 이사님이 들어와서 눈치 보고 뉘적뉘적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도 없고 그냥 그 상태이신가 보다 6시에 퇴근하고 집에 가니 7시 40분쯤.
옷 갈아입는데 아빠한테 연락이 와서 아이고 가셨나보다 하고 전화 받으니 7시 30분에 가셨다고.
아빠 차 타고 천안 가면서 엄마 정신 놓을까봐 옆에 붙어서 계속 떠들어대고
장례식장 도착해서 문상객들 인사 드리고 상 차리고 치우고 사촌언니오빠들 애기들 보고
울고 먹고 자고 전화통화 하고 일 하고 담배 피우고 급체 하고 링거 맞고 개밥 주러 집에 왔다갔다 하고
할머니 염 해드리고 인사드리고 얼굴 쓰다듬고 입관 하는 과정 다 봤네요.
아주 예전에 본 축제랑 학생부군신위인가 하는 영화도 희미하게 기억나고 그랬어요.
이렇게 타이핑을 하니 정리가 되네요.
유일한 막내 쫄따구 외손녀라고 친척 어르신들이 상복 입혀주셨는데 안 입혀주셨으면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외손자 외손녀들은 상복 안 입히는 경우도 많대요.
발인 하면서-
할아버지 유골 수습해서 할머니랑 같이 매장해 드리는데, 엄마는 기억도 없다는 할아버지 유골 보면서 아이고 할아버지 그냥 그랬고
요즘은 관을 안 쓰나봐요. 제가 장례절차를 잘 기억 못하기도 하고 정확한 명칭이 뭔지 지금 좀 혼란스러운데
합장한다고 수습한 할아버지 유골이랑 할머니 시신을 같이 모시더라고요. 화장한 후가 아닌 유골은 처음 봤네요.
유골이 누렇던데 전문가들은 황골이라고, 할아버지 묘를 잘 썼다고 그랬다는데 그냥 유족들에게 하는 위로 말씀이겠죠.
정사각형으로 파놓은 구덩이를 보니 여기가 할머니 할아버지 신혼방이구나 55년만에 알콩달콩 하세요 뭐 이러고
흙 뿌려드리고 헌화 하고 울고 그러다가 순대국 먹고 다시 시골집 들어가서 정신 놓고 자다가 집에 와서
엄마아빠랑 맥주소주랑 먹고 아빠 협박에 꿍쳐놓은 와인 거덜내고 그랬어요.
생전에 할머니께서 화장은 싫다고 하셔서 매장을 해드렸고
오빠랑도 계속 이야기를 한 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화장을 해드렸는데 생전 모습이 아무리 고우신들
결국 유가족들이 마지막에 보는 건 화장한 유골인데. 그러니 계속 생각나는 건 그 유골일텐데
할머니는 그래도 깨끗하게 가셨고 엄마가 내내 기억할 할머니 모습은 그 모습일테니
자식 된 입장에서 정말 다행이다 했어요.
아마 엄마는 차 타고 오고 가면서 아빠와 제게 하신 얘기 95%는 기억 못 하실 거예요.
날 밝는대로 병원 가서 영양제 맞고 기력 차리셔야 하니까 고기 먹으러 가자 했는데 우리 엄마 성격에 내 말대로 할 리가 없지.
할머니가 생전에 막내딸이 말 지지리도 안 듣는다 그러셨는데 울 엄마도 다를 게 없고 원래 그런 건가 봐요.
이따 엄마랑 또 한 판 해야할 거 같아요.
친가 외가 구성원들 98%가 기독교인들이고 저는 종교가 없어요.
(제가 느끼기에) 기독교인들의 첫째 가는 사명감이자 종교 의식은 전도이다 보니 제 입장에서 핍박 아닌 핍박을 많이 받았고
특히 엄마한테는 국딩 때 교회 안 간다고 고집 부린다고 뺨 맞고머리카락 뽑히면서도 안 갔는데 (그렇다고 울 엄마 신앙심이 깊은 것도 아니고 걍 저 고집 부리는 게 꼴 보기 싫었던 거... ㅋ)
이런 경조사 때 동원력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할머니, 4남매 교회가 다 다르다보니 각각 목사님, 교인분들 오셔서 예배 드리고 북적북적 한데 그건 참 감사하더라고요.
제 지인들의 결혼식도 가면 좋지만 적어도 장례식은 꼭 가야겠다 싶었어요. 결혼식이야 원체 좋은 일이니까 상쇄되는 게 있지만 장례식은 또 다르잖아요.
... 그렇다고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 간다 뭐 이런 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하느님인지 예수님인지 그분도 그건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모르겠네요.
장례식이라고 울고 바닥을 치고 별 짓을 다 했는데 비통하고 슬픈 게 다였다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어렸을 땐 정말 친하게 지내다가 점차 멀어졌던 사촌언니오빠들하고 밤 새워가면서 술 먹고 이야기 하고
다음날 숙취 때문에 서로 헛개수 챙겨주고 언니오빠들 애기들도 봐주고 뭐 그러고
그러니까 뒤죽박죽, 이것저것 혼재되고 비일상적이면서 일상적인... 그랬어요.
나중에 생각하려고 하면 기억 안 나고.
왜 집안 친척 어른들이 모이면 맨날 옛날 얘기만 하시나 했는데 어느 틈엔가 우리가 똑같이 그러고 있네요.
뭐 어쨌거냐 저는 날 밝는대로 점심쯤에 부모님 모시고 나가서 제 맘대로 제 마음 놓이는대로
고기를 먹여드려야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독님이 막내의 막내면 연세도 적지 않으셨을테니 그만하면 잘 가신 걸 겁니다. 예전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사실 전 외할머니랑 별로 좋은 기억도 없고, 당신도 딱히 절 손녀랍시고 따따스리 맞아주신 적도 별로 없으신 분인데(옛날 양반답게 편애가 심하셨는데 전 확실히 그 중 덜 예쁜 손주였죠 손주가 워낙 많은 집안이기도 했고) 그래도 울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는 크게 느껴지는 점도 있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니 잘 봐드리세요. 당장 며칠 괜찮은 것 같아 보이다가도 몇 달이 지나고, 해가 넘어가도 어느 순간 생각나서 눈물 보이시더라고요.
그나마 가신분은 이제 아무 걱정없으니 괜찮으실테고 남은 사람들이야 힘들지요. 그래도 삶이란게 꾸역꾸역 돌아가는 거라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요.
누구에게나 있는 참 슬픈 일입니다 외할머님의 명복을 빌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운 차리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한 3~4년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었는데,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신터라 크고 나서 가까운 가족이 돌아가신건 처음이었어요.
저는 맏손녀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땐 귀여움도 많이 받았고 항상 외갓집 가면 한상 차려주시는 외할머니의 손맛이 어찌나 좋은지.
하지만 외갓집에도 복잡한 일이 생기고 여러 가지 사연으로 크면서는 외할머니를 뵈어도 그렇게 살갑게 대하질 못했어요.
커서 처음 겪은 상갓집이란,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비통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지요.
저도 손님이 뜸할 때면 크면서 소원해진 사촌동생들이랑 상갓집 쪽방에 앉아 옛날 얘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거기에 엄마랑 이모들이랑 같이 끼어드셔서 재밌고 웃겼던 옛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자되었어요.
그러다 입관식 같은거 하면 다시 울음바다가 되고요.
다 끝나고는 서로에게 수고했다 등 두들기고,
처음 받아본 사촌동생들의 전화번호를 통해 카톡으로 나중에 서울 올라오면 연락하라고 보내고.
그래도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 보내드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