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스프

몇 달동안을 스프를 뒤적여 보았다. 스프 안에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때로는 너무 성급하게, 거칠게 뒤적였던 것은 나도 인정한다. 조바심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그 스프 안에는 어떠한 의미있는 알맹이도, 온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빈 스프였다.

이건 작년에 쓴 아내에 대한 글입니다.
작년 갑자기 아내가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결혼 5년 차에 들어서고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애를 키우며 나름 힘이 들꺼라고 짐작은 했지만 갑작스런 방황은 저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죠, 그 방황이 지나쳐 정도를 넘어서고 전 아내를 위와 같이 '빈 스프'라고 칭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때도, 우린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고, 이곳이 '태엽감는 새'인지 '하이 피델리티'인지 '그냥 이도 저도 아닌 그저그런 부부들'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었지만 희망은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상황들은 지리멸멸했으며 화내기도 애걸복걸하기도 무시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진전은 없었고 마침내 어제 이혼하기로 했어요.

일년 반 동안의 과정들에 지쳐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고 계속 되어왔던 무기력함에 지하 한 층을 더 내려간 듯한 무기력함이 있을 뿐이네요.

이 상황에서 저는 내일 결혼하는 친구의 웨딩카를 해주기로 해서 나가서 꾸밀 용품들을 사왔으니 지독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네살배기 멋진 우리 아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아들을 위해 존나 멋진 새 출발을 해야겠어요.
    • 아빠와 아들이 걸을 새길에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 멋진글이네요.

      돌아올겁니다. 선택은 님의 몫이지만.

      여하간 좋은일만 가득하길.
    • 뭐 잘은 모르지만 글쓴이님 때문만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안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주위를 둘러봐도.


      그러니 너무 낙심마시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네살배기 멋진 아드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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