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드라마 참 흉작이네요(+화산고 리부트 관련 잡상)
작년에는 소소하게 한국영화가 분기별로 흥행이 터지고, 드라마도 별그대-밀회-유나의거리-미생 이런 식으로 바톤을 이어가며 한 해 내내 볼만 한 것이 꾸준하게 나와줬는데 올해는 영 흉작이네요.
벌써 5월인데 한국 상업영화는 스물 정도가 선방했고, 드라마는 킬미힐미 정도? 킬미힐미도 제가 체감하기론 마니아 드라마지 대중적으로 인기를 확 끈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나마 기대했던 차이나타운마저 입소문이 나빠서 보러 갈 엄두가 안 나요. 이 보릿고개가 언제까지 갈지... 드라마 쪽은 프로듀사가 화제몰이를 할 것 같긴 한데 한국영화는 잘 모르겠어요.
각설하고, 며칠 전에 화산고 리부트 소식을 접했는데, 제가 지인한테 "야, 화산고가 리부트된대."라고 전하자 돌아온 대답.
"보나마나 아이돌이 대거 출연하겠군."
;; 저 지인의 말을 무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안습...;;;
사실 화산고 리부트에 아이돌이 '대거 출연'까진 하지 않아도, 한두 명쯤은 끼어 있으리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오히려 한 명도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 현실이죠.
그런데 뜬금없이 웬 화산고를 리부트하려는 걸까요. 저는 영화 화산고가 개봉했을 당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관객 축에 속했습니다만, 리부트 소식은 상당히 의아합니다.
사실 화산고가 10년 전에는 꽤 신선한 시도를 했던 작품이긴 했어요. 100% 디지털 촬영에 전체적으로 올리브 그린 톤으로 보정한 영상, 다채로운 액션 씬, 현재 기준에서 드림팀에 가까운 캐스팅 등등...
그러나 관객들 대다수 반응은 '초반 20분만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이 안습...;;; 결국 흥행에선 큰 재미를 못 보고 끝나버렸죠.
리부트를 한다면 세계관만 동일하고 인물이나 스토리는 거의 새로 짤 것 같은데, 그렇다고 오리지널 이상의 재미는 보여주기 힘들지 않을까 섣불리 추측해봅니다.
제 생각에 오리지널 화산고는 그 나름의 신선함이 제일 큰 매력이었는데, 10년 전과 달리 현재 한국드라마/영화에서 화산고 류의 라노벨 설정이 더는 신선한 축에 들어가질 못하거든요. 액션이나 영상에서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도 어려울 것 같구요.
여기까지 제가 지인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자, 다시 돌아온 대답.
"글쎄, 아이돌 기획영화라니까.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저 대답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 역시나 안습..;;;
그런데 이건 정말 쓸데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기왕 리부트 할 바에는 '화산고'라는 제목은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협소설 장르에 뼛속까지 익숙하던 시절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 장르에서 취미를 떼고 몇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니 '중원을 무대로 활약하는 협객들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소설'이 꾸준하게 창작되고 소비되는 한국 현실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이건 엘프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판타지와는 다른 것 같아요. 판타지 장르에서도 특정 유럽 국가가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보통은 가상의 세계가 주무대잖아요. 그렇지만 무협소설 장르에 등장하는 무대는 90퍼센트 이상이 중국이라는 특정 국가라는 거죠. 물론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중국은 실제 중국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판타지적 무대로서만 봐야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맥을 이어온 장르물의 주요 세계가 중국에 기반되어 있는 것은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일본만화나 일본 라노벨에서도 중국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은 꽤 잦았지만, 이렇게 한국 무협소설처럼 장르 자체로 굳어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요지는 영화 '화산고'의 화산은 중국 화산파에서 따온 것이 명명백백하니, 리부트에서는 제목을 바꿨으면 한다는 거예요. 한류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부터 중국 사람들에게서 나온 말이, '한국은 중국문화를 도둑질해서 자기 것인 척한다.'잖습니까. 그네들 관점에서 대장금이나 허준은 중국의 음식문화와 중의학을 훔쳐서 자기 것인 척 행세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 있습니다. 아 이게 중화사상이구나 하고 실감... 그런데 한국 드라마뿐 아니라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쿵푸팬더에도 중국에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저런 식의 반응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기왕에 리부트할 바에는 세심하게 접근했으면 해요. 굳이 '화산' 같은 이름을 고집하지 않고 바꾸어도 무협 분위기는 충분히 살릴 수 있으니까요. 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댓글로 타박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나저나 캐스팅은 어떻게 되려나요. 10년 전 장혁만큼 액션 되고 포쓰 넘치는 20대 남자 배우가... 저는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화산고가 개봉했을때가 14? 15년전 맞죠? 메인타겟이 10대들은 대부분 안봤을것 같네요. 요즘 날고기는 웹툰 스토리와 캐릭터들에 적응된 아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지 어떨지...
정말 작년부터 올해 한국영화 크든 작든 참 재미가 없네요.
소위말하는 진정성도 안느껴지고요.
제발 뻔하거나, "이러면 상업적이겠지? 이러면 봐주겠지? 성공하겠지? " 이런 제작 마인드 안느껴지는 영화가 나왔음 좋겠어요.
올해 한국영화중 그나마 평타친 작품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이마저도 징검다리식 교차상영으로 빛을 못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