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의도하지 않게 한 아파트, 그러니까 똑같은 곳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라는 것이 좀 그런 구석이 있다시피, 저도 오래 마주치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로만 지냅니다.

저만큼 오래 살고 계신 아파트 상가 내 세탁소 사장님과 최근에 말문이 틔어서 몇마디 하는 중입니다.

세탁소에서 길에 면한 뒷문을 누가 톡톡 칩니다.

" 안년하세여, 저기 @#$..."

"응...응...그래요..."

알아 들을 수 없는 길고 긴 인사 끝에 '그 아저씨'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꾸벅하고 지나갑니다.

세탁소 사장님도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십니다.


아마도 40대로 추정되는 '그 아저씨'도 꽤 오랫동안 동네에서 마주쳤습니다.

언제나 동네를 씩씩하게 활보하고 다니셨죠.  어디를 오고 가는 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앉아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 항상 빠르게 걷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세탁소 사장님이 그분은 최근에 건너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음...그래서 요즘 안 보이셨구나...

매일 오며 가며 세탁소 밖에서 항상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멀쩡히 마치고,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애가 군대 갔다와서 저렇게 되었다 말합니다.

많이 맞아서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누가 알겠어?  부모가 속이 터져서 백방으로 다녀봐도 그땐 그렇게 지나갔나봐...

자세한 내막은 전해듣는 말이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길에서 마주쳤던 이상한 '그 아저씨'가 군대에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하니, 무언가 제 속에서 쨍하는 소리가 나는 듯 했습니다.

최근에 뉴스는 왜 저러나 싶을만큼 사건에 담긴 악행을 소상히 서술한다든지,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는 기사를 쏟아 붓습니다.

저는 마음이 황폐해지고, 타인에게 좀 더 무관심해지거나, 혹은 더 경계하는 마음을 저도 모르게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이 이상한 그 아저씨가 아니라, 한때는 눈부시게 훤칠한 청년이겠구나하니 마음이 무척 아프네요.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 억장이 내려앉았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관심과 사랑밖에 없는게 맞을 겁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경계하는 것은 손쉽지만 저를 너덜너덜하게 만느네요.

앞뒤 없는 말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며 살아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부모라 해 줄 수 있는게 많이 없다 생각하는 요즘이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몸과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더글라스 던-


    • 예전에 어느 결혼식 뷔페에갔다가 이상한 행색으로 자꾸 제옆으로 다가오는 아저씨가 있었는데..평소같았으면 아마 피했을거같은데요.. 자세히보니 한쪽눈이 안좋더라구요. 저 늙은 아저씨가 눈이저모양이니 자기모습도 못볼테고 보호자도 없을테고 행색이 좋을수도없을것인데 나한테 다가오는 이유도 눈이 안좋아서 가까이 보려는구나 싶더라구요. 그때 난생첨으로 타인을 이해해서 품어주는 마음이 깊게들었는데 뷔페직원이 음식을 따로퍼주시더라구요. 제가 다 고마웠네요..

      저도살면살수록 사람들이 측은하게느껴집니다. 살다보니 뜻대로 안됐구나 살다보니 어쩔수없는 일을 만났구나 등.. 그냥 마음이 쓰이고 아파지더라구요..
    •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공평함. 불가항력적인 슬픔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죠.

    • 글로만 읽어도 마음이 무너지네요.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이 아직도 너무 많죠. 그런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인데...불행하게도 이 나라는 사람과 생명의 소중함을 너무 몰라요.  

    • 좋은 글이고 마음가짐입니다. 감사합다.
    •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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