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잡담
* 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page=2&document_srl=12100798
Bigcat님의 은하영웅전과 전체주의 언급을 보고 계속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역시 전 Bigcat님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군요.
다떠나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라도 말입니다. 네. 솔직히 전 Bigcat님이 책을 읽으신건지, 아니면 그냥 요약본을 읽으신건지조차 모르겠습니다.
* 할 말이 많지만 당장 하나. Bigcat님의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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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얀 웬리에 대해 초반에 감동받았다가 이게 다 작가 선생의 페이크라고 깨달은 계기가 있습니다.
자유행성동맹의 군부 쿠데타 사건 기억나시죠?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얀 웬리 부관의 아버지가 일으킨 반란이었죠.
ㅂㅅ같은 민주정의 혼란이 계속되면 군부에서 사단이 나는건 거의 정해진 수순같은거라 뭐 놀랄것도 없는 사건 전개이긴 합니다만;; 얀 웬리는 정말 이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게 행동하더군요.
그러니까! 끝내! 아무것도 하지를 않는겁니다! 뭐라더라? 군인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으니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를 않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그 중요한 순간에!
이게 제 정신의 행동일까요?
아, 물론 저는 얀 웬리의 원칙에는 공감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권력의지가 없다니까요.
그런데 누가 얀 웬리 보고 독재자하라고 했나요? 이 혼란의 시기에 체제의 질서만 잡아도 그게 어디냐구요...
그러니까 얀 웬리는 군인은 정치개입 불가 어쩌구 나불거리기 보다는 군부쿠데타를 제압하고 빨리 총선을 준비해서 자유행성동맹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정치체제 정비에 나섰어야 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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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님이 정정리플을 달아주셨지만 제가 더 구체적으로 보태지요.
우선 구국군사회의가 쿠데타를 일으킨 배경에는 제국이 있습니다. 당사자인 구국군사회의는 그것이 제국의 음모라곤 생각치 못하고 이런저런 상황이 겹쳐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양웬리는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라 쿠데타를 진압했습니다. 수도의 방위시스템까지 박살내가며 적극적으로 말입니다. 첨언하자면 양웬리는 반란진압과정에서 방위시스템을 박살낸 일때문에 문책까지 받죠. 어쨌든, 군인이 정치에 관여할 수 없으니 가만히 있었던게 아니라, 자신의 군사력과 계책을 이용해 반란을 진압했다고요. 실제적인 무력도, 명분도 잃어버린 구국군사회의는 결국 자멸하고 맙니다.
물론 하지 않은게 있죠. 자신이 중심이 된 정권이나 정치체제 정비였죠. 사실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라면 군인은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제자리로 복귀하는게 정상 아닙니까.
무력을 가진 군인이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거나 기반을 마련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구조 아닌가요.
대표적으로 발터 쉔코프 같은 인물들이 무능한 정치인들을 몰아내라며 양웬리를 충동질하기도 하지만, 그는 끝내 거부하죠.
여기서뿐만 아니라 소설 후반 동맹이 제국에 항복할때도, 양웬리는 '국가의 명령을 듣는 군인'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합니다.
그것이 그의 권력의지 부족에 기인한 것이건 뭐건, 양웬리는 직업으로서 군인이 직접적으로 할 일;은하제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군인으로써 막는 것에 집중합니다. 소설 내내 말입니다.
성공한 나치정권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일단 칸막이님이시던가, 어떤분이 지적했다시피 소설은 전체주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빠져나갈 구멍 이런게 아니라 그냥 소설 내내 비판적입니다.
루돌프 폰 골뎀바움이 시행한 우생학-열악유전자배제법에 대한 비판도 그렇고, 동맹내에 전체주의집단인 우국기사단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요. 작가는 양웬리를 통해 이들을 대놓고 비웃습니다.
* 제 개인적으론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소설이 정치체제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무척이나 많이 던져주는 책이라고 여깁니다.
오히려 체제간의 존립을 다투는 거대한 전쟁을 다루는 주제에 정략에 대한 묘사나 전쟁에 대한 묘사가 생각만큼 치밀하지 않아서 민망할 지경입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능력있는 독재자와 무능한 민주주의 체제아래 능력자를 비교해서 민주주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제국을 치켜세워주지도 않고요.
소설이 사악한 독재와 정의의 민주주의의 대립을 써내려가며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야기를 이끌었다면 유치하다고 했겠지요.
허나 소설속에서 "능력있는 독재자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다"같은 이야기도 나오지요.
(구판 기준) 본편 10권에 외전 4권이나 되니 뭐 한 두번 읽은 걸로는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얀" 웬리는 끝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직분에 최선을 다한 군인입니다. 그런데 시절이 하수상한가...은영전 떡밥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