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순환 특급 그리고 갑을 사회

첫 직장의 직장 상사가 사람 괴롭히는 싸이코패쓰였어요.

뭐 요즘 들려오는 이야기에 비하면야 그 회사는 당시에도 노조파워가 있었고, 꼭 그게 아니라도 누구처럼 방망이를 휘두른다든가 땅콩갖고 히스테리를 부린다든가 하는 수준엔 못 미쳤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름 심각했어요. 직장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이직을 했는데 새로운 상사는 이전보다 더 미친 싸이코패쓰…게다가 이 회사는 노조도 없어 젠장…

당시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노엄 촘스키인지 진 하워드인지 헷갈리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하나의 지옥을 다른 지옥으로 대체하는...'

독재를 무너뜨린 공백에 또 다른 독재자가 들어온다든가 아니면 독재를 무너뜨린 자리에 자본의 지배가 이전의 독재보다 가혹하게 되는

아마 지금의 시리아나 이라크 같은 상황을 은유한 표현입니다만 저는 그게 당시의 제 상황에 꼭 맞는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지옥 순환특급 열차를 계속 갈아타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이 열차에서 내려야겠다. 탈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오래되었는데 막상 실행은 굼떴어요.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한 환경이 탈출을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바깥에 뭐가 있을 지 모르는데, 상어떼가 득실거릴 수도 있고 적어도 여긴 안락하지는 않아도 예측이 가능한 세계였거든요. 


결국 세계 경제가 가장 불안하다는 시기에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서.

세월아 네월아…문화에 적응하며 2년을 지낸 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TV를 틀었더니 그 때 노무현 기일이 다가오고 있어 민주당 의원들이 모여서 광주항쟁과 함께 기일을 준비 하고 있다…뉴스가 나왔어요.

화면속의 그 사람들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학대받고 버림받은 그런 분위기였어요.

한 때 권력이 있었으나 이제는 초라해진, 그냥 초라해진 게 아니라 밑바닥까지 짓밟힌 사람들이죠.

지인 한 분은 괴롭히는 시어머니로 폭발 직전이고

친구들은 직장의 싸이코패쓰 상사로 모두들 우울한 상태

뭔가 공통점이 그 때 보이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들의 일부였는데 그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바로 한국 사회는 거대한 SM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예요.

개인과 개인의 아주 작은 관계에서조차 이 문화는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서 누군가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이런 관계속에 얽혀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간혹 없지는 않겠지만, 상대에 따라 역할을 바꿔가며 적어도 한 두개 이상은 다들 그런 식으로 얽혀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게임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이 잔혹한 상황을 멈추기 위한 코드따위는 없습니다.

누군가 그만 두면 게임은 끝날텐데 그럴 힘이 있는 가해자는 게임을 끝낼 생각이 없고 약자에게는 탈출구가 안보이고요.

왜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을 괴롭히면서 살 수 밖에 없는가? 왜 모든 사람이 이렇게도 권력에 중독되어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때는 차라리 양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수록 이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아요. 아니면 단순히 같은 수준인데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 뿐일까요? 


저 아래 김무성 관련글을 읽고 생각난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한 일년 쯤 된 것 같은데 워킹 할리데이로 온 아이들이 교민 업소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떼여서 노동부 산하기관인 Fairwork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거액을 갈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최초에 한 명이 성공하자 성공담처럼 이야기가 퍼져서 사업하는 교민들이 큰 돈을 뜯긴 경우가 몇 건 연속해서 생겼나봐요. 사업주는 방법이 없었죠. 일단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돈을 지급 (떼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그런 경우엔 대부분 탈세로 연결되는데 이건 중죄입니다. 아이들이 신고하면 관계 기관은 양쪽 얘기를 듣지만 급여명세서를 발급하지 않는 것도 불법이기에 사업주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그런 경우에 업주가 협박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요. 

그래서 사업주님들은 우루루 영사관에 몰려가서 영사와의 대담을 가졌습니다. 요즘 젊은 것들 어디서 나쁜 짓만 배워가지고 어린것들이 벌써부터 공갈협박을 일삼는다고 구제해달라고요.

그게 교민 신문 일면에 헤드라인으로 버젓이 실렸습니다.

그날 영사님과의 대화에 대한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워킹 할리데이 비자를 받아오는 젊은 아이들을 더욱 철저히 교육시키겠다. 하지만 교민 여러분도 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법을 지켜야한다'도 아니고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 결론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교민들과 영사님의 시각, 현지법을 어기고서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게 한국의 갑을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법을 지키는 게 우선이 아니라 젊은 애들을 교육시키는 게 먼저? 영사님 뭔가 순서가 바뀐 거 아닌가요?


아, 저는 이런 일이 국민성에 기인해서 그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두 똑같고 시스템이 문화를 규정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한다고 믿어요.

예를 들면 한국의 노동법, 근로기준법을 집행하는 집행기관이 돈을 떼먹은 사업주에게는 너무나 관대하고 노동자에게는 가혹하다는 그런 것 말예요.


쓸데없는 얘길 하나 더 하자면 조현아 땅콩회항 기사가 다음 미디어에서 경제 기사로 분류되어 있더군요. 사회면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어더라니. 그게 대체 어떻게 경제 기사가 되는 건지 집단으로 세뇌라도 된건지... 



 


    • 살면 살수록 한국의 계급은 거미줄처럼 아주 자세하고 촘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겉보기엔 비슷하더라도 학벌이나 집안, 스펙으로 사람 서열매기는 게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은 점이 많아요. 한 번 얕보이면 훅 간다 싶은 위기감도 마음에 깔려 있어서 사회생활하면서 늘 이런 점에 부지불식간 신경쓰고 있고요. 하지만 미생의 회사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이란 말도 맞기에 다들 그냥 그러려니 사는 게 아닐까 하죠. 갑을질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어도 지옥에서 사기꾼 판별하는 퀘스트 도전 이런 건 더 힘드니까 갑을질 속에 걍 살자가 제 결론이었습니다;

    • 빈부격차 양극화 심화, 중산층 붕괴. 너무 지겹도록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점점 목을 죄여오는 느낌이에요.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네요.


      애초에 입에 금수저 물고 태어나긴 전에는 이 경쟁사회에서 생계유지하고 산다는거 자체가 기적적인 그런 사회.

    • 스탠포드 감옥 실험의 거대한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일단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신분계급차별적 요소를 대부분 가지고 있고, 위치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뀝니다. 방금 당당히 뜯기던 을이라도 어느 새 갑의 위치가 되면 권력을 휘두르기 바쁘죠.

    •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비하면 낫겠지만.. 더 잘 살수도 있는데 한정된 재화를 독점한 혹은 독점하려는 기득권층이 그걸 포기할 생각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딱 한마디로 규정하기엔 힘들겠지만.. 정 못견디겠으면 알아서 피하는게 상책인 그런 나라가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은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 정말 무시무시한 현실이지요.


      제가 자주 가는 사이트도 툭하면 학벌 갖고 싸워요. 아직 학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건지....;;


      거기다 비정규직들이 노조 만들어서 데모하니까 정규직들이 그 사람들 비난하는 글을 올려서 몇일 동안 게시판이 뒤집어지도록 다투더군요.


      그런데 그 게시판이 소위 진보 게시판으로 분류되어 검사들이 특별 관리한다고 발표난....;; Ci-bal, 이놈의 나라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은 왜이리 넓은지ㅋ


       


      한국 사회는 거대한 SM사회...공감합니다.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층은 그들의 특권을 놓치 않으려고 하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나는 승자야! 라고 정신승리하면서 마음만으로도 기득권의 심정을 갖고 서로를 물고 뜯습니다.;; 끔찍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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