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은 액션영화군요

반지의 제왕에서 인물들의 목적은 전부 이타적이잖아요? 심지어 유일하게 개인적인 목적을 갖고 있던 인물이 죽기까지 하죠.


호빗의 인물들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땅이나 보석, 감정 같은 걸 원해요. 훨씬 세속적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쪽을 좋아해서 여기까진 괜찮은데요.

반면 영화의 껍질이 너무 주렁주렁해서 문제였습니다. 아니 보석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저렇게 눈에 힘주고 대단한 대사를 말할 필요가 있나 싶은거죠. 결국 인물의 내면에 복잡함이 과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불필요한 인물과 에피소드까지 많습니다. 간달프조차도 적어도 3편에선 없어도 진행에 문제가 없습니다. (결말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지만 저는 간달프의 결말은 사이비라고 생각해요.) 사루만은 왜 나왔나 싶어요.


이렇게 되니까 찌르고 베고 뭉게는 씬들의 목적은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숭고함, 그니까 중간계를 구하자가 아니라 순전히 폭력이 주는 쾌감이 됩니다. 저는 폭력을 즐기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위엄이 곁들여지면 비린내가 납니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이왕 즐길거면 대놓고 즐기면 안되나? 싶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빗은 볼만한 살인 장면들만 남기고 끝이 났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저는 액션영화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감흥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겁니다.

    • 액션 재밌더군요.

    • 원작(호빗)이 애들 동화라;; 근데 후속작(반지 시리즈)은 성인을 위한 영웅 서사시라서...이 균형을 맞추는데 은근 엇박자가 나는 듯 합니다.ㅋ


      근데 저는 님이 지적하는 부분에서 정반대로 느낀터라;; 저에게는 오히려 반지 세계의 숭고함이 위선적이고 비린내가 나더군요.

      차라리 호빗처럼 드러내놓고 자기들 탐욕과 증오를 마구 발산하는게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사실 실제의 인간사는 반지 시리즈 보다는 호빗 시리즈와 더 가까우니까요ㅋ

      • 저도 드러내는 쪽이 좋습니다. 호빗의 경우엔 탐욕을 위엄이랑 같이 내밀어서 싫다는 거였어요 ㅎ

        • 그래서 원작에 있는 '소린이 아르켄스톤 품고 에레보르에 잠드는 장례식 장면'이 생략됐나...하고 있습니다.

          소린이 아르켄스톤 때문에 그 진상을 떨어댔는데-_- 마지막까지 가지고 가면 정말 탐욕의 끝판왕처럼 보일지도ㅋ
          • 원작은 가볍고 솔직했는데 말이죠. 반지의 제왕과 다른 독서경험이었습니다. 영화의 경우에 두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서 아쉬웠어요.

    • 반지 시리즈는 독실한 카톨릭 교도이자 앵글로 색슨 민족주의자의 역사 판타지에 다름이 아닙니다. (나중에 이 주제로 글 한번 쓰려고요ㅋ)

      숭고한 희생?


      그냥 딱 하나만 얘기할게요.

      톨킨 판타지의 요정들 설정은 북유럽과 켈트의 요정 신화에 기초하고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들은 인간 세상에 살다가 때가 되면 '티어 오그 난'이라는 요정들의 영생의 땅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바로 톨킨 반지 시리즈에 나오는 영생의 땅 발리노르가 여기서 유래한 건데...제가 얘기하고 싶은건 요정 여인들 중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영생의 삶을 포기한 경우들 말입니다.


      (톨킨의 반지 시리즈에 나오는 아르웬과 아라곤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런데 켈트 전승에서는 이들의 최후가 그닥 아름답지가 않더군요.

      요정 여인들 대부분이 인간 남자들에게 버림받아 - 대체 왜 그렇게 됐는지...아이도 낳았는데...ㅠ - 자기들 요정 형제들 손에 죽음을 당하더군요.

      예, 바로 명예살인이요.ㅠ

    • 켈트 전승의 원전에는 이런 요정 여인들-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에 대한 요정왕과 요정 왕자들의 명예살인 전승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켈트의 요정 이야기들을 읽고 자랐는데 덕분에 요정 트라우마가 생김ㅠ)

      고대 유럽인들도 이슬람 못지 않더군요-.,-

      근데, 이런 사실들을 뻔히 알고 있을 톨킨선생이 요정 여인들이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영생을 포기하는 결합을 무슨 엄청난 희생을 통한 위대한 사랑의 결합으로 묘사할 때...정말 맘 한구석 싸하더군요;;

      물론 반지 설정이야 작가 맘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말입니다. -.,-

      정말 이럴 땐 정말 모르는게 약이지ㅋ
      • 그렇군요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치만 톨킨이 명예살인에 찬성했다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르곤 아르웬 관계가 영감을 받은 전설과 다르게 바뀌었을 거구요. 켈트 전승과는 달리 반지의 제왕에선 필멸과 불멸의 모티브로 의미심장하게 등장하잖아요. 전설이란게 많은 사람의 입을 돌고 돌기 마련이라. 고대 켈트 족 중에 정치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양반이 쓸데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모양이군요. 

        • 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것 같네요ㅋ

          근데 톨킨 선생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켈트 요정들 정말 못쓰겠네--;;

          그럼 내가 새로 만드는 앵글로 색슨 요정들은 좀 쓸만한 애들로 만들어야겠군.'
    • 근데 사루만과 갈라드리엘 그리고 엘론드가 돌굴두르 격파하는 장면은 뭔가 실마릴리온...스러워서 좋더군요ㅋ

      아무래도 잭슨 감독이 실마릴...이거 영화 못할거 같으니 이렇게라도 연출했나 싶네요ㅋ
    • 근데 갠달프 영감은...스란두일 말대로 애초에 그 모든 판을 짠 장본인이라...;; 생긴거나 행동하는 건 영락없는 동네 할배인데, 실상은...무자비하고 냉혹한 전략가...-.,-
    • 간달프야말로 흑막..가끔 판타지나 무협물에 나오는 선악 구분이 모호한 배후 설계자 스럽죠.

      • 듣고보니 그러네요. 의도가 좋은 걸로 설정이 되있겠지만 그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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