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있습니다ㅠㅠ] 보이후드 잡담

영화라는 게 아니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어머니가 재혼했는데 새아버지가 폭력적이고 알콜중독이라 어머니가 가출했다가 겨우겨우 그 집에서 탈출한 얘기만으로도 영화 한 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12년의 세월에서는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지나가더라구요. 

친형제처럼 생활했고 헤어지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남매는 사만다와 메이슨의 생활에 다시 안 나타나더군요. 

어렸을 때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긴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맞았던 것 같은 여자친구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그러는 한편 세 식구가 까페에서 집을 어떻게 하고 짐은 어떻게 할지 얘기할 때 불쑥 나타나서 인사하던 옛날의 배관공처럼 

지나간 시간이 불쑥 끼어들 때도 있구요. (엄마가 참 서운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따뜻한 시간이라 다행이었어요) 

두 번째 새아버지도 안 좋게 헤어졌을 것 같은데 메이슨은 두 번째 새아버지에게 배운 사진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 꽤 큰 일을 결정하게 하기도 하구요. 

암튼 이런 사소한 것 같기도 하고 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한 자리에 앉아 보다보니 그냥 그 시간 자체가 

영화가 줬던 어떤 스펙터클보다 더 장려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영화가 소년 시절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감독이 (미국)사회를 신뢰하고 있어서인지 

이 영화의 세상은 꽤 살만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정말 힘들었겠지만 엄마는 애 둘을 데리고 대학에 편입해서 교수가 되고, 

집에 일하러 온 배관공에게 똑똑하니까 공부를 해 보라고 충고하고 그 충고를 받아들인 배관공은 대학에 다니고 매니저 일을 하고요. 

술주정뱅이 새아버지가 내가 네 나이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를 샀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 영화였다면 당연히 그때랑 지금은 시절이 다르죠... 하는 기분이 들었을텐데 

메이슨은 정말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를 사더라구요. 

심지어 메이슨 1,2세와 사만다는 오바마 선거운동을 하더군요. 

어머니가 세 번 결혼하는데 사만다와 메이슨이 긴 시간속에서는 무리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첫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어머니가 자기 데이트는 포기해도 애들은 챙겼기 때문일까요. 아버지가 피임은 꼭 해라, 안 그러면 나처럼 인생이 꼬이니까ㅎㅎ 하는 농담을 그 꼬인 인생의 결과물인 아이들에게 해도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서로의 관계에서 사랑이나 믿음이 엄청 크기 때문이겠죠. 


사만다와 메이슨이 잘 커서 보태준 것도 없는데 참 고맙더군요. 

엄마도 정말 수고 많았어요ㅠ_ㅠ 


+

메이슨이랑 친구들이 밤에 맥주마시면서 노는 장면에서, 애들이 톱날같은 걸 던지고 판자를 깨고 하는데 뒤에서 어느 분이 작게 안돼! 하고 비명을 지르셔서 극장안의 사람들이 다 긴장했어요. 다행히 별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만ㅎ


++

으악 스포 표시하는 거 왜 잊었을까요ㅠㅠ 영화 보기 전에 글 읽으신 분 있으면 죄송해요.

      •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딴 얘기인데 쪽지함 열어본 지도 오래 되어서 유월에 쪽지 보내신 분이 있는데 지금 봤어요^^;; 

    • 보기 전에는 사실 어느 정도 지루할 수도 있다는 건 각오하고 있었는데 단 한순간도 지루함 없이, 오히려 영화가 끝나가는게 너무 아쉬웠어요. 이대로 계속 더 커가는 이야기가 나와도 될 것 같은데, 하면서 말이죠. 김혜리 기자가 이 영화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 공감했습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 전 여섯살부터 찍었다는 얘기만 듣고 언제까지 찍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서 언제까지 나올까 두근두근하면서 봤어요. 그러다 영화가 끝나서 아, 여기서 끝나네 하고 아쉽기도 하고 딱 알맞은 마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그렇네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아, 좋은 장면 이것저것 많았는데 두 메이슨이 캠핑을 가서 스타워즈 얘기를 하는 장면 참 좋았어요. 뭔가 자녀에 대한 로망을 일깨워준다고 할까요ㅎㅎㅎㅎ 마냥 애였는데 이제 아빠랑 스타워즈 얘기도 하고 자기 의견도 얘기하고요. 

        • 아, 전 그 장면 보면서 (제가 스타워즈를 한편도 안봤는데) 내가 스타워즈 팬이라면 뭔가 상당히 재미있는 장면인 것 같은데 무슨 얘기인지를 모르니까 뭐가 재미있는 지도 모르겠어! 라면서 상당히 아쉬워하면서 봤던 장면이에요. 

          • 전 스타워즈를 봤기 때문에 오오 설득력있는 의견이다 하면서 정말 보태준 것 없이 뿌듯해했습니다.

    • 첫단락이 제가 표현 못한 감상을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근데 세상이 살만하다는 느낌보다, 역시 세상살이는...저는 이쪽이었습니다.물이 반잔 밖에 안 남았어!ㅎㅎ

      엄마 아빠 캐릭터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톱날 장면은 저도 은근 신경이 쓰였어요.쟤들이 어린 치기에 다툼이라도 할까봐.


      아이를 키우면서 내 연애를 한다는거, 힘들게 하는 배우자를 등지고 새 파트너와 시작할 수 있다는게 설레이기도 했는데,역쉬..그놈이 그놈.인간이란 디피컬트해욧.

      그리고 제목에 스포 경고 넣으셔야 관람 예정자들이 놀라지 않을듯해요.
      • 아 맞아요. 자기 애들만 간신히 챙겨서 두번째 남편의 집에서 도망나왔는데 왜 다른 애들은 그냥 두고 나왔냐고 애들이 비난하거나(자기도 죄책감 있을 것 같은데ㅜㅜ) 집도 없고 이게 뭐냐고 결국 짜증내는 애들 앞에서,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애 앞에서 울음이 터질 때, 애들에게는 끊임없이 잔소리해야 하고, 게다가 탁자 위에 영수증이랑 청구서들 늘어놓고 계산하는 장면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ㅠㅠ 삶의 신산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참 많았지요. 근데 그냥 그 전체적인 방향은 암튼 희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 지금 우리 사회랑 더 대비되어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싱글맘이 애들을 번듯하게 키워내고, 이주노동자가 지원을 받아서 일하면서 대학에 다니고, 아빠 어릴 때는 호황이었잖아요 하고 말하는 대신 아르바이트 하면 차 살 수 있고 그런 거요... 아 말하고 나니 더 슬프네요. 흑흑

        • 엄마가 가끔 버럭 하잖아요.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뭐라고 하지 마!하는 맘으로요. 그때 참 인간답더라구요 ㅋ

          그래 소리라도 가끔 질러야지 하는 생각.


          첫번째 새아빠 자식들은 어찌 지냈을지 저도 걱정,그러나 엄마에게도 기관에도 알렸다고 해서 좀 위로가 됐어요.

          너무 극단으로 불행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우리 현실 같은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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