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들 각자의 영화관' 보셨나요? 어떤 감독 것이 가장 좋으셨나요?
최근 이 영화를 보았는데 너무너무너무 좋게 봤어요. 다른 분들은 어떤 감독의 3분이 가장 좋으셨을지 궁금해요.
혹시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시면 이 글은 스킵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3분 단편작들 모음이긴 하지만, 반전이 있는 것도 있고... 혹시 모르니 말씀드립니다. ㅎㅎ
저 같은 경우 인상적이지 않은 것을 그냥 넘어가고, 주로 좋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아요. ㅎㅎ 실망스러운 것이나 평범했던 것도 물론이고.
일단 좋았던 영화들은 순서를 매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1. 기타노 다케시의 '어느 좋은 날'
이 단편집의 주제가 영화관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거잖아요. 편하게 영화를 보는 분위기나 영화를 틀 때마다 실수를 연발하는 영화 상영해주는 아저씨라든지, 여러모로 기타노 다케시스러워요. 그의 생각이 많이 보인달까요. 영화에 대해 진지한 주제의식을 이입한다기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실수나 과정에 대한 생각이 기타노 다케시에게 더 강한 것 아닌가 싶었어요. 괜찮은 단편이었습니다.
2.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M.M을 기리며'
이거 정말 정말 좋았어요. 보고 나서 그래, 바로 이게 영화(관)이지! 싶었달까요. 처음에는 잔느 모로인 줄도 모르고 봤어요. 웬 할머니 배우가 총총 걷네, 이러다가 점점 몰입해서는 저 할머니 배우에게서 마치 젊은 처녀가 격한 사랑에 빠진 듯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읽어냈달까요. 이 사람의 아우라에 흠뻑 빠져들었어요. 저는 정말 배우의 중요성을 이 단편을 통해 새삼 느꼈습니다. 그녀의 슬픔에 그렇게 빠져들며 집중하는데 순간 3분 되었습니다! 컷! 하는데 무언가 제 마음이 아렸어요. 이 여자의 감정을 여기서 더 볼 수 없겠구나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달까요. 이 감독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궁금해졌어요.
3. 안드레이 콘잘로브스키의 '어둠 속의 그들'
영화에 몰입하며 보는 할머니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감상하는 그녀, 그녀의 뒤로는 섹스하러 영화 온 듯한 커플만 있네요. 영화관의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ㅎㅎ
4. 다르덴 형제의 '어둠 속에서'
아, 이것도 정말 짧은 만큼 강렬했죠. 영화에 몰입한 여자배우의 섬세한 손연기와 떨림이 좋았어요. 많은 영화감독들이 영화관하면서 영화에 몰입하며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이 작품집 안에서도 다루던데, 확실히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를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겠죠. :) 그리고 영화관이 그러한 소통을 전제로 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할 테고요.
5.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애나'
앞을 못 보는 여자가 자신에게 영화 장면을 설명해준는 남자와 같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앞을 못 보면 영화를 못 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죠. 아, 이 단편 같은 경우 무언가 저도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 무언가 큰 애정?이 느껴지는 단편이었어요. 그런데 후반에 갑자기 음악이 페이드 아웃되는 부분이 좀 갑자기 음향이 끊긴 느낌이라 이상하긴 했습니다.
6. 아톰 에고이앙의 '동시상영 세 편'
이건 감독 본인의 작품이나 장 뤽 고다르 작품, 드레이어 작품들이 동시상영 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는 영화관 안의 사람들과 영화 속의 인물들이 중첩되는 것이 흥미로워요. 무언가 여기에 삽입된 장 뤽 고다르의 뮤즈 안나 카리나의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쳐다보게 되더군요. 분위기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관 안에서 보는 영화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본 영화도 같이 보는 그 영화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말이죠.
7. 끌로드 를르슈의 '바로 앞의 극장'
이건 정말 사랑스러운 단편입니다. 엄마아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영화에 새길 만해요. 정말 자기 부모가 그렇게 영화관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영화관에서 소통을 하고, 심지어는 영화관에서 자기 자식을 교육까지 시켰다면 대성한 영화감독 아들이 안 나올 수가 없겠죠.
8. 마이클 치미노의 '통역할 필요 없음'
이것도 정말 좋았어요. 통역할 필요 없다는데 아마도 스페인 혹은 남미 여자로 추측되는 정열적인 여자가 한바탕 들이닥쳐서 마이클 치미노 본인으로 보이는 감독에게 한창 자기 무대를 보여주고, 찍히고, 녹화되고 편집된 작품을 보면서 막 좋아하다가 실망하고 화나서 미친 듯이 그의 목도리로 그를 조여버리는 것. ㅎㅎㅎ 너무 재미있고 활기 넘치는 단편이었어요. 전체 작품들 중에서도 이렇게 정열적인 느낌을 가진 단편이 없어서 굉장히 눈에 띄었어요.
9. 첸 카이거의 '자전거 모터'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단편이었습니다. 보고 눈물 한 방울 찍 흘린 유일한 단편이에요. '애나'와 이야기가 비슷한데, 무언가 더 찐한 느낌? 첸 카이거 본인이 정말 이렇게 영화를 사랑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눈이 안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한 동경이 영화관을 만들어 내고, 그리고 계속 찾아가게 만드는 것, 그 놀라운 힘에 대해 가장 잘 포착해낸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최고의 단편입니다.
+ 실망스러운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인 감독들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과 그들의 생각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데이빗 린치는 정말 별로였어요. 무언가 싸구려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의도였나 싶긴 한데, 저한텐 좀 별로였네요.
제인 캠피온도 전 별로였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른 곳에서 본 것이었다면 재미있게 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여자감독들의 작품이 많았다면 또 재미있게 보았을 것 같습니다. 제인 캠피온의 여성주의적인 시선은 물론 좋고, 그녀의 이야기에도 공감하며, 작품 자체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딱 보았을 때, 아 이 작품은 제인 캠피온 것이겠구나... 싶었고, 물론 그녀 본인이 영화관과 영화감독으로서 살아오며 여자가 영화라는 말을 할 때 무시당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은 것도 가치는 있겠습니다만, 꼭 마치 의무적으로 여자 영화감독을 넣어서 다양성이라는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첨가한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그것 역시 절실한 그녀의 목소리였겠지만, 저는 좀 무언가. .. 아, 좀 설명이 힘드네요. 무언가 제가 이 단편집들에서 기대했던 것은 영화감독들이 영화관과 영화 그 자체에 대해 갖는 가장 순전한 사랑 이야기(그들이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테니까요)를 듣고 싶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네요... 여성으로서의 의식도 물론 훌륭합니다만. .. 아 무언가 말이 계속 꼬여...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은...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매우 기묘한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무지 재미있으면서도 무지 황당했어요. 사실 제가 라스 폰 트리에의 엄청난 패...ㄴ 까지는 아니지만 라스 폰 트리에에 요즘 한참 빠져있는 터라 다른 감독들만큼 진지한 단편을 만들지 않았을까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았더니 자의식 넘치는 단편을 찍었더군요. ㅎㅎ 물론 자의식 넘치는 영화감독들의 작품이 '그들 각자의 영화관' 안에서 라스 폰 트리에 혼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성공한 영화감독이라는 존재 자체를 자랑하는 경우도 있었고, 재미없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었죠. 그게 무슨 단편이었는지는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분명히 영화관 안에서의 영화 상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그걸 매우 폭력적으로 (제가 봤을 땐 여기 나온 작품들 중 가장 잔인한 것 같아요) 다루고 있고, 게다가 그 함의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이 예술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너의 싸구려 속물 정신따위는 죽여버리겠다는 그런 엄청난 기개를 보여줘서요. 암튼 진짜 라스 폰 트리에도 인물이긴 인물이에요.
로만 폴란스키 같은 경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모르겠어요. 보았을 때 별 느낌이 안 들었다는 게 가장 문제이겠네요. 물론 제 감각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왕가위는 정말 왕가위답더군요. 정말 왕가위는 왕가위에요. 저는 왕가위는 스타일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놓았다고 보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 이상으로는 뭐 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빔 벤더스도 정말 빔 벤더스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의 작품인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았는데, 저는 그 영화를 보고 정말 어떻게 이렇게 인간 세상에 따뜻한 시선을 견지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천사한테 도저히 공감이 안 되는 거에요. 왜 인간세계에 대체 내려오고 싶어하는가. 저건 정말 여기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쟤가 그런 거야. 이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는 이 감독 역시 자기 세계나 자기 생각이 꽤나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감독이 가장 좋으셨어요? 저는 말씀드린 것처럼 첸 카이거. ㅎㅎ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까맣게 잊고 살았어요. ^^ 일단 자고 나서 내일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영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본지 오래되서... 2층에서 떨어진 사람 얘기는 한 20년도 전에 최불암 씨리즈를 그대로 옮겨놓은 거라 벙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공산당 선전물 보는 얘기가 제일 좋았어요.
underground / 네 :) 좋은 영화입니다. 꼭 보시고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밀키웨이/ 그쵸; 로만 폴란스키 영화는 정말 그 내용이 좀 지나치게 단순하고 썰렁하다 싶었는데 음... 저만 그리 느낀 게 아니군요. 공산당 선전물? 그거 무슨 단편이지요? 왜 기억이 안 날까요;;; ㅎㅎㅎ;;
주물공장같은 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영화보는 내용이었는데 너무 오래되서 저도 자세힌 기억이 안나네요.. 제가 이걸 본게 한... 2008년인가 그럴꺼에요==;
저도 개봉할 때 봤는데 켄 로치 거 좋았어요. 사실 내용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도 켄 로치 거 뿐이라 좀 부끄럽지만요.;;
오 빔 벤더스가요? 저는 음... 정서가 메말라 그랬나... ㅠㅠ ㅎㅎㅎ 라스 폰 트리에 진짜 성격 있죠! 재미있게 보신 것 같아서 어쩐지 제가 뿌듯합니당 :D
저는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 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죠. 빔 벤더스의 영화에서는 현실이 오히려 그림처럼 아름다웠어요. 사람들이 보는 전쟁 영화는 그들에게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할 뿐이고요. 영화를 본 후 나온 세상은 또 그림처럼 아름답죠. 영화를 보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아픈 과거를 되새기는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암울한 경험일 수도 있음을 빔 벤더스 감독이 보여주고 있다고 저는 맘대로 해석했어요. ^^ 그래서 영화(혹은 영화관)에 대한 사랑 혹은 그리움을 보여주는 영화보다는 이 영화에 더 공감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혹은 상상할 수 있어서) 참 즐거웠던 영화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