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미국, 이리저리 본 것들

1. 덴마크.


얼마전에 덴마크를 다녀왔어요. 좋은 나라구나 하고 생각했죠. 여기저기 둘러보고는 웬지 여기라면 이민 올 만 하겠다고 생각했죠. 인심도 그만하면 괜찮고 정부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 소셜 엔지니어링 차원에서 요즘 정책적으로 아시안 이민자들을 받는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들었구요.


그리고 나서 바로 덴마크 이민 이야기를 연거퍼 들었어요. 과학자들 중심으로 줄줄이 덴마크 이민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누구나 괜찮다고 생각하겠죠. 다만 2세들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인가는 좀 더 고민해야할 문제지만요.


2. 미국.


미국에 가보니 거지도 영어를 잘 하더라는 말을 많이들 하죠. 그런데 미국에 가서 정말 거지와 대화를 해본 분이 계신가요? 거지를 본 사람들은 있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과 정말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거의 없을 걸요.


3. 가슴 아픔. 


전에도 한 번 썼지만, 요즘 도무지 새로운 영화나 책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첫째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둘째는 마음이 아파서 새로운 이야기에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연애 이야기 조차도 그래요. 예전에 어르신들과 같이 영화를 보면, 어르신들이 공포영화는 싫다고 하셔서 왜 그러시냐고 여쭤봤었습니다. 나이 먹으면 좋은 걸 보는 것도 시간이 없는데 가슴 조이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아니 가짜 드라마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떻게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시겠다는 거지 하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 분들이 이해가 됩니다.


다만 이미 아는 내용을 보는 건 괜찮아요. 그래서인지 "덱스터"를 보고 있어요. "브레이킹 베드"는 정말이지 가슴이 찢어져서 못보겠어요. 티비 시리즈 "reign"도 시도해봤어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언니인 블러디 메리가 주인공이에요. 예쁜 틴에이저들이 나와서 역사를 배경으로 조심스럽게 연애질을 하죠. 


예전에 제 지인이 그런 말을 했었죠. 자기는 부자들의 가짜 문제 (made-up problem)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다고. 정말 그래요. "가쉽 걸" 같은 경우는 부자 아이들이 거의 억지로 문제를 만들죠. 섹스, 마약, 배신 등. 요즘같은 경우 진짜 뉴스가 워낙 드라마틱하니 가짜 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엔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많을까요. 

 

    • 덴마크에 일년 정도 살아본 적이 있는데 날씨때문에 계속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여름도 우리나라처럼 반팔 입고 다닐만큼 더운 여름이 아니고 늘 우중충하고 습한데다가 겨울은 날씨보다도 부족한 일광량때문에 미칠 것 같더군요. 일과가 시작하는 시간이 캄캄하고 별이 떠 았는 시간이고 오후 세 시면 해가 져서 음침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심지어 제가 있었던 곳은 코펜하겐이었는데도요. 유틀란트 반도로 가면 기업들이 그런 이유로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 3. 나이 들수록 점점 좋은 일들이 줄어드는거 같아요. 싫고 좋음이 분명해지고요. 그래서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 자연과 반려동물에 집중하게 되는거 같아요.

    • Reign, 재밌겠네요. 튜더 왕조엔 별의 별 흥미로운 인간들이 많아서ㅋ

      언제나 엘리자베스가 주인공이더니 이번엔 언니 메리군요ㅋ
    • 저도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들이 더 끌립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요즘은 특히 더 역사책을 읽는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도 역사극만 보게되고ㅋ

      꼭 짚는다면 그래도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 반면교사가 될만한 사건들을 위주로 본다고나 할까...;;
    • 짧게나마 대화를 나눠 보았던 미국 거지 - 그러니까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거나 공원 같은데서 자는 사람들 - 들의 발음은 다들 너무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웅얼웅얼 흘려 말하는 그런 억양이 있더군요. 비슷한 억양을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대화나 노가다판 등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섹스, 마약, 배신 등"이 가짜 문제, 억지로 만든 문제라고요? 껄껄껄... 굳이 부자까지 안 가도 미국에서 이 세가지는 어떤 생활권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일 뿐, 실제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Rehab Industry가 얼마나 큰 지 알아보면... 한국에서도 언론들이 크게 부각을 안해서 그렇지 필로폰에 취해서 집단 섹스가 어쩌고 저쩌고는 이따금씩 뉴스에도 나오죠. 마약이 별게 아니잖아요. 듀게에서만 해도 담배는 A브랜드가 좋다 아니 B브랜드가 좋다 이런 글이 올라오는데, 절연자인 제가 보기엔 '필로폰이 A딜러한테서 산게 B딜러한테 산거보다 더 진하고 값도 싸더라' 이런거랑 차이 없습니다. 합법화의 여부일 뿐, 니코틴이 눈에 선해 절절매는 꼴이나 필로폰이 애타워 절절매는 꼴이나..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 "섹스, 마약, 배신"이 가짜 문제가 아니고, 부잣집 애들의 "섹스, 마약, 배신"이 가짜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난과 섹스, 가난과 마약이 결부되었을 때 진짜 문제가 생기죠. 부유함과 섹스, 부유함과 마약의 결합은 '인생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쾌락'을 즐기는 도구 역할을 하죠. 섹스 그 자체로는 (도덕의 문제를 떼놓고 본다면) 한 사람이 완만한 인생을 영위하는 데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요. 가난한 집안의 어린 미혼모가 섹스를 해서 임신했을 때 진짜 문제가 생기죠.  "가십 걸"의 주인공이자 뉴욕에서 최고로 비싼 지역에서 사는 부잣집 딸 세레나가 섹스를 한다고 해서, 그게 세레나 인생에 어떤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십 걸"에서는 이렇게 안전한 부자들의 섹스가 최대한 문제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어머니가 섹스한 남자와 딸이 섹스하고, 그것이 파티에서 공개되는 상황까지 만듭니다. 이것이 made-up problem이죠.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낸 문제로도 그들의 인생이 망가지진 않아요. 하지만 16살의 가난한 여자 고등학생이 임신해서 학교를 중퇴해야하고, 친부가 되는 남자는 고등학교를 마칠까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도망칠까 고민하고, 갓난아이는 밤늦게까지 울어대는데 양가의 조부모들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 갓난아기가 울어대니 내 지하실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짜 문제이죠.  




        마약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지요. 위 포스팅에서 말한 제 지인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미국인인데, 어떤 경로로 인해서 LA 지역의 극단적으로 부유한 젊은이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제 지인의 경우도 대학교 때부터 마리화나나 몇몇 마약을 가끔 복용했다고 해요. (참고로 조심스러운 타입이라서 미리 중독성 낮은 마약을 조사해보고 했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는 LA에서 극단적으로 부유한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이중 어떤 치는 호사스러운 마약갱생원(rehab)과 역시 더더욱 호사스러운 LA의 자택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중독에서 벗어나 살다가 지루하면 다시 마약을 하고. 이 사람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지루하다는 것이예요. 건강보험도 없이 등록금 빚을 잔뜩 지고 있었던 제 지인의 입장에서는, 이 부자 젊은이의 마약 문제는 한마디로 made-up problem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미국의 주방장들은 격무로 인해 마리화나에 손대기 쉽다고 하던데) 매일 출근해야하는 주방장이 하드코어 마약중독자가 되면 마누라는 도망가고 아이들은 쫄딱 망해요. 하지만 매일 돈 쓰는 것밖에는 할 일 없는 사람이 마약을 하면 그건 인생의 쾌락을 더 즐기기 위한 방편인 거죠. 제 기억이 옳다면, 미국에서 예전에 미국에서 1960-1970년대 히피운동을 하던 그룹 중에서도, 부잣집 자제들은 상대적으로 갱생이 쉬워서 나중에 사회에서 버젓한 자리를 차지한 반면, 가난한 집 자식들은 싸고 질낮고 중독성 높은 마약을 하다 인생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어요.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진짜 문제, 진짜 괴로움은 눈을 뜨면 널려 있어요. 의료보험 없어서 치과 못갔다가 뇌에 바이러스 들어가서 죽은 아이라든가. 한국같은 경우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이라든가. 하지만 굳이 부자들의 섹스, 부자들의 마약을 미국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만만하고 극복 가능한 가짜 문제이기 때문이예요. 세레나가 마약중독자로 갱생원까지 들어갔다가 또 사교계로 컴백하여 행복한 결혼을 하는 것처럼, 가짜 문제는 드라마 속에서 쉽게 극복되죠. 한국에서도 재벌집 아들과 가난한 여자를 소재로 막장 드라마가 나오는 건 그게 가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간단간단하게 쓴지라 맥락을 자세히 설명못했군요. 이 글이 부잣집 자식들은 마약해도 되고, 가난한 집 자식은 마약하면 안된다라는 글로 잘못 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겨자님 글에 적극 공감합니다.

          사실 미드 CSI같은 수사물들 보면서 상류층들이 저런 범죄를 저지른다고? 별 같잖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냥 드라마에서 때깔좋은 거 보여주려고 부자들 배경으로 깐 거잖아..는 생각이 종종 들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상류층 사람들이 그렇게 마약에 탐닉하고 사고를 치는지도 의문이고요ㅋ
      • ㅋㅋㅋ 비유가 웃기네요. 담배하고 마약이 같은 선상에서 비유가 됩니까? 정말 님처럼 그렇게 비교해도 되는지 중국 정부에게 한번 물어볼까요?ㅋ


        부자 아이들의 가짜 문제라는건 정말로 그네들이 마약 스켄들이 없다는건 아니고 빈곤층의 문제에 비한다면 너무 새발의 피인데다가 사실 그렇게 막장스럽지도 않은데 드라마에서 재미있게 한답시고 마구 묘사해대니까 나온 얘기죠ㅋ
        • 갑자기 중국 정부를 끌고 들이시는데, 아 아편전쟁이요? 그렇게 따지면 부탄에서는 담배가 2010년 실제로 불법화 되었습니다.

          • 아편전쟁 말고 지금의 중국 정부 말입니다. 그 나라에서 마약거래는 지금도 사형으로 다스리는거 알고 계시죠?
    • 부자건 가난하건 문제가 있다면 다 진짜 문제입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극복하기가 쉬울 것이고 그러니까 안심하면서 그런 막장 드라마들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극복이 가능하다고 해서 진짜 문제가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 심하지 않은, 해결된 문제라고 하면 모를까요. 지인분의 심경은 이해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해가면서 현실을 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 그럼님과 저는 진짜 문제와 가짜 문제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군요. 

    • 그게 메리 튜더(블러디 메리)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얘기더라구요.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고, 고증도 당연히 무시, 미국 사람들이 영국 드리마를 미국식 감성으로 만든 틴에이저물 느낌이었어요.



      기황후 못지 않은.



      그래도 주인공 메리는 이쁩니다.

      • 튜더가 얘기가 아니었군요.;;

        스튜어트가의 메리...그럼 프랑스가 배경이겠네요. 영국 궁정 보다는 프랑스 궁정이 더 화려하긴하죠ㅋ
      • 앗 이런. 죄송합니다. 




        메리 아가씨는 신비롭게 이쁜데, imdb평점이 너무 낮아 흥이 떨어지더군요.

    • '가짜문제'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분들에게는 쓸데 없는 반항심?을 부추길 수 있는 내용인거 같아요.


      이를테면 사회적 문제라는 범주가 전제되었다는 당연한 설명을 한다던가..(그런식으로 따지다가 듀게에서 논문 쓸 일 있나? 싶은 회의가 들어 글 안 쓰게 되는 게 함정)


      덴마크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네요  (본문 뿐만 아니라 댓글도) 부정적인 측면이라는 기후의 문제의 경우 상해에서 이미 단련이 된 저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거 같습니다 ㅎ



      • 상해 기후가 나쁜가요?

        • 위도상으로는 제주도 근처라 훨씬 덥고 덜 춥긴한데....

          흐리고 습하고 우중충한 겨울이거든요. 해발 이미터도 안되는 강하구에 형성된 퇴적층 위에 세워진 도시라서 일년 내내 눅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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