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의 노래
오랫만에 빨간 책방을 들어봤더니 칼의 노래를 다뤘던 모양입니다.
이동진이야 원래부터 김훈을 좋아했고 한껏 알고 있는 이러저러한 일화들을 말하면서 팬심을 숨기지 못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있자니 저의 이야기도 하고 싶어졌어요.
어머니가 한문공부시키려고 어릴때 신문의 특집기사나 사설을 소리내어 읽기를 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이었습니다.
박래부기자의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토지의 배경이 되는 하동을 찾아 원작의 몇대목과 비교하는데 묘사며 비교가 아주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 썼던거 같은데 너무 오래전의 일이네요.
그후 기사를 통해 김훈과 5공과 관련한 일들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웃이 되었죠.
십대후반 장정일을 몹시도 좋아해서 그의 독서일기를 통해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고 애써 찾아 읽었는데-문학기행에 대한 저만의 의리때문이었죠- 별로였다는 기억이 있네요.
그 뒤로 계속 몇 작품이 나와서 데뷔작과 다르게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호기심이 전혀 일지 않더라고요.
한참후 남동생이 '칼의 노래'를 샀는데 순전히 이순신장군이라는 소재때문에 골랐다고 해요.
그런데 그 유명한 첫구절이후 부터 보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일단은 그 유명한 문체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저랑 호흡이 다르다는 생각조차 들었어요.
공중에 떠 있는 글자들을 종이에 박아넣으며 읽는다는 느낌까지 있었죠. 간결하다고 정제미가 보증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난중일기를 이미 읽은 터라 영화와 드라마의 성웅과 실제의 그는 다르다는 건 확고했지만 소설속의 그는 일본사소설에 어울리는 허무하고 병약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동생은 대단하다는 생각했던 모양인데 전 '별로'라고 차디차게 한마디를 했죠.
(게다가 저렇게 사변적이라니.. 나의 장군은 그렇지 않아!!!)
그 후에 노통이 텔레비젼에서 어린 학생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데 그 감상을 저도 느끼고 싶어서 다시 읽어봤어죠. 박완서의 그 축복도 만끽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역시 실패. 게다가 분명 조선 중기가 배경임에도 현대에서 쓰고 있는 용어가 버젓이 같은 용례로 쓰여진 걸 보니 태만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제가 편집자였다면 왕조실록을 죄다 찾아서 단어들을 바꿨을 거에요.
다만 노통이 탄핵시절 어떤 심정으로 이 작품을 읽었을지가 상상되서 상당히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유머 섞인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권하던 그 분은 생을 달리했고, 죄없는 자가 없는 호시절을 만난 그는
언론과 문학계의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당시 초베스트셀러가 된후 그의 말은 얄미웠고 영화 명량의 후기는 너무나 당연해서 군소리같습니다.
어쨌든 책은 존재하네요.
이래서 예술은 영원한가봅니다.
저는 <칼의 노래>보다 <남한산성>이 좋았어요. 무지하게 건조한 문장들인데 왜 읽고 있는 저는 피 토하는 심정이 되어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죠. ^^
남한산성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거지요?
관심 있으시면 유성룡의 '징비록'을 권하고 싶어요. 역시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자세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가슴을 쥐어짜는 대목들이 속속들이 나오더라고요.
저하곤 완전 정반대시네요. ㅎㅎ
전 문체가 와닿지 않으면 서사에까지 관심이 가지도 않는데 <칼의 노래>가 딱 그랬어요. 너무 건조해서 살짝 손만 갖다대도 파스라질 거 같은 느낌이 저랑은 안 맞았던듯.
정제되지 않은 시를 읽는 느낌이었어요. 빨리 읽어내리고 훗닥훗닥 속뜻을 파악해야 하는 제 스타일상 맞지 않았던거죠.
문체는 첫번째고 서사도 마땅치 않았고 그의 세계관도 좀 걸렸습니다.
여러가지가 많은데 이동진의 의견과 비슷한게 있어서 열거하기 좀 그래요.
김훈의 소설을 읽고나면 한동안 글을 쓰면 그 문체를 따라하게 되더군요.
제가 쓰니 되도 않는 비장미에 유치가 뚝뚝 흘러 못봐줄 지경..
그런 작가는 처음이자 마지막..(현재까지는..)
<남한산성>에서 논쟁을 일삼는 신하들이 각자 제 나름의 논리로 왕을 설득할 때 저는 매번 다 넘어갔어요. ^^ (그래 이 사람 말도 옳아, 그런데 저 사람 말도 옳군 하면서) 그들은 자신을 이롭게 하려고, 혹은 상대방이 미워서 말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려고 최선을 다해 논리를 짜내고 그 말에 자신의 목숨을 걸죠. 그 말들 사이에서 무엇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몰라 인조가 갈팡질팡하는 동안 군사들과 백성들은 소리없이 죽어나가고요. 신념과 선택(혹은 선택하지 못함)이 낳는 고통의 현장을 신문기사처럼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보여주려는 소설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