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통하네트 ㅋㅋㅋㅋㅋ (혐짤 주의...-_-;;)
최근에 본 대통령 관련 풍자화 중에 최고인듯 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원작자 비제 르블랑한테는 미안하지만-_-;;
그나저나 오늘 핸드폰 서비스 받으러 폰 구입했던 매장에 잠깐 들렀는데 매장 정말 한산하더군요...
스마트폰 구입 시기를 놓친 울 막내는 계속 우울 모드이고;;
그리고 저 초상화의 실제 주인공인 마리 앙트와네트의 일화에 관해 한 마디.
"빵이 없다고? 그럼 케잌을 먹으면 되지."
라는 개드립으로 유명하죠. 근데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인 스테판 츠바이크의 견해에 따르면 이 얘기는 와전된 거랍니다.
원래는 루이 14세의 동생 오를레앙 공작이 한 말이라네요.
루이 14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아직 어렸으므로 당시 재상이었던 마자랭 추기경이 정치를 도맡아서 했는데 - 마치 그의 아버지 루이 13세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그랬던 것처럼 -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 이게 바로 프롱드의 난.
프롱드의 난은 훗날 프랑스 대혁명처럼 파리 시민들의 반란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시민들이 식량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 못한 왕실 가족들은 우선 허둥지둥 왕궁에서 도망쳐 파리시 외곽으로 빠져나갔죠.
이런 와중에 아직 어려서 - 채 10살이 안되었던 걸로;; -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어린 왕자가 배고픈 시민들을 향해 한 말이라는 겁니다.;;
애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 할 수 있죠. 다만 엄청 부잣집 아이라 저 당시 삼시 세끼에 대한 고민 자체를 이해 못하는 가정환경이라는 전제하에 말이죠.-_-;;
여담으로 초등 2학년 학생에게 고전 동화 하나를 들려주다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걸 들은적이 있습니다.
나랏돈 300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죽을 위기에 처한 아전 하나를 암행어가 박문수가 구해준다는 전래 동화 였는데, 여튼 제 얘기를 듣던 그 초등생이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묻더군요.
"돈이 없으면 비단으로 갚으면 되지 않나요?"
그 초등생에게 조선 시대 현물 화폐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준적이 있었는데...;; 여튼 이 아이 반응 보고 확신했죠.ㅋ
개념이 없다 하더라도 저 얘길 어른이 할 리가 없지...아무리 봐도 애들 입에서나 나올 소리라구 ㅋ
하지만 우리 대통령은........-_-;;
"혐" 표시 좀 해주시겠습니까?
죄송;; 제목 수정했습니다....^^;;
표시 좀...!
http://www.youtube.com/watch?v=iccKMOqWJX4
이거나올줄 알았는데 예지력하락 ㅠ
구시대 독재자의 딸이 부친의 길을 가겠다는데 대통령 시켜주는 나라이니 불행의 시기죠.
제가 읽었던 글에선 혁명군들이 왕비를 모함하려고 찌라시로 만들어내 뿌린 말이라고 하더군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실 그렇게까지 사치와 향락에 빠졌던 방탕한 여자는 아니었다고 하죠. 그냥 다른 귀족들 다 하는 정도만 했었고 나름 인정도 있는 여자였었는데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라 밉보이고 억울하게 뒤집어썼다고 합니다.
그 얘기가 제가 언급한 스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 <마리 안토아네트>에 상세히 나옵니다.
한국에는 <비운의 왕비>,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죠.
<베르사이유..>는 일본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의 작품 때문에 한국의 출판사가 그렇게 지은것 같더군요ㅋ
근데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도 근간은 츠바이크의 전기에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사도 똑같음-.,- 베이스를 여기에 깔고 오스칼이나 앙드레를 등장시킨 정도?
하지만 마리 앙트와네트가 처형된건 그런 지저분한 흑색 선전 때문은 아닙니다. 아무리 왕비가 사치를 부린다고 해도 귀부인 하나의 사치 때문에 나라의 재정이 흔들린다고 진심으로 믿을 만큼 당시 프랑스 시민 계급들이 바보는 아니었거든요.
왕비의 죄목은 그의 남편 루이 16세와 같은 것이었죠. '외세를 끌어들여 프랑스에 내란을 일으키려 공모한 죄'
당시 프랑스 혁명 정부는 대혁명의 여파가 퍼질것을 두려워한 유럽 각국의 연합세력에 포위된 더없이 위급한 상황이었고-이 동맹을 주도하는게 바로 왕비의 친정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 때문에 유럽 동맹군의 프랑스 침입의 매개체가 될 왕비의 존재가 더없이 버거운 상황이었죠.
물론 왕비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당시 혁명 정부는 왕비의 공모 여부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부담감을 안고 사형을 집행했습니다만...사후에 왕비가 오스트리아 정부와 내통하고 광범위한 군사 개입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서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죠.
그런 찌라시때문에 처형됐단 말은 아니고요. 국민들이 왕비와 왕실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데에 일조한 것 뿐이죠. 그것 외에도 여러가지 유언비어를 많이 지어서 퍼뜨렸다고 하더군요.
다른 설에 의하면 그 빵 얘기는 루이 15세의 비가 굶주린 백성들에게 먹을 것 좀 나눠주라고 시킨 말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네요. 원래는 케익이 아니라 브리오슈...
그렇군요ㅋ 설들이 많네요^^;;
이후에 잠깐이나마 프랑스에서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는 아들 루이 17세-사후 추존- 와 함께 복권되어 현재 프랑스 왕실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복권은 어디까지나 왕당파들의 일방적인 결정이었을 뿐 프랑스 시민들은 이에 결코 동의한적이 없죠.
지난 2000년 대혁명 기념일에서도 왕비의 처형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었는데 그때도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왕비의 처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결론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