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언덕 저는 매우 좋았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EIDF 상영작들을 제외하면, 요샌 정말 극장에 갈 때마다 여지없이 지뢰를 밟더군요. 군도, 명량, 비긴 어게인, 인투 더 스톰, 해무, 그리고 얼마 전에 시사회로 본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3D 실황까지,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유의 언덕'이 제 멘탈을 정화시켜 주었네요.
제가 보기에, 홍상수는 서너 편에 한 번 꼴로 구조의 핵심을 바꾸어 가며 구조를 새로 짭니다. 그 뒤 그 서너 편에 걸쳐서 그 구조를 뒤집어보기도 하고,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구조의 핵심을 바꿔요. 그러면서도 이전 구조들의 룰들은 어느 정도 차용해 오면서, 차곡차곡 자신의 필모 상의 탐구들을 쌓아올립니다(이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구조에 골몰할수록 그의 영화들 속에서 서사는 점점 표면적으로는 일상에 가까워지고, 따라서 간소해집니다. 그래야 홍상수가 쌓은 구조를 통해 일상이 달리 보이는 경험이 더욱 두드러지기도 할 테고요.
'하하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세 작품을 만든 뒤, 홍상수는 '다른나라에서'를 덧붙여 네 편의 영화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 그는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틀과, 다시 그 바깥에서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이의 틀을 이중으로 두어 이야기 속의 일상을 낯설게 하려는 시도의 완결점을 찍은 바 있습니다.
그 뒤 홍상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만들어 구조를 새로 짜더니, 그와 대칭을 이루는 '우리 선희'를 연이어 내놓습니다. '자유의 언덕'은 거기서 인물 구도를 뒤엎되, 그가 가지고 다니는 책을 통해 '하하하'~'다른나라에서'의 시간의 논의를 다시 끌어오기도 하고(시간축을 뒤틀어 놓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관객의 강박이 끝내 막다른 길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이번 작품에도 나옵니다.), 그보다 더 이전 작품들에서 구조를 짜는 핵심이 되기도 했고 '북촌방향'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는 공간의 문제를 다시 가져오기도 합니다. 해원이 쓰던 일기의 또 다른 판본인 편지, 그리고 꿈이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가장 중요하게 드러나는 문제 의식은 이전부터 홍상수 영화에서 쭉 다루어져 왔고 '해원', '선희'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어진, 기표들과 그 기표들이 가리키는 실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걸 '다른나라에서'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란 틀, 다시 그 밖에서 지켜보는 누군가라는 틀을 이중으로 두되 다시 이 사이의 벽을 허물기로 하는 식으로 문제를 더 깊은 지점으로 밀고 가기도 하고요.
표면적으로는 점점 덜어내면서 일견 성의없어 보일 정도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속으로는 점점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여전히 저에게는 흥미롭습니다. 다음 작품도 흔쾌히 보러 갈 수 있겠어요.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치고는 제목이 좀 심심한 것 같아요. ^^
댓글을 달고 보니 언더그라운드님은 심심하다고
홍상수 영화 최고의 감각적인 제목.
다른 감독이 이렇게 지면 망합니다.
영화 아직 안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