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번의 트라이 정말 좋았습니다

일본에는 '오사카조고'라는 재일동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엔 전국 럭비대회 4강 진출이라는, 그 동안 어떤 선배들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막 달성해버린 럭비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영화는 감독의 담담한 1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되지만, 

꿈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들의 모습만큼은 울컥하리만치 치열합니다. 

그러나 치열하다하여 질풍노도 특유의 치기 어린 모습이겠거니, 지레짐작하시면 큰 코 다치십니다.

아이들은 웬만한 어른들보다 다정하고 성숙합니다.

경기 전, 잦은 부상으로 약해진 서로의 신체를 어루만지며 힘을 북돋아 주고

다친 친구를 대신해 친구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합니다. 

친구의 꿈과 나의 꿈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럭비부에 속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가족들, 과거 럭비 선수로 활약했던 동포 사회의 원로 OB들까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의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얼굴을 맞대고 웃음을 나누고 알통을 자랑합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그런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이전 세대의 경험과 역사가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전승됩니다.

아래 세대는 품위를 잃지 않은 위 세대를 존중하고, 

위 세대는 아래 세대를 지지하고 도우면서 공동체의 건강함이 유지됩니다.

고작 열 일곱, 열 여덟 살인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쩌면 이렇게 성숙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궁금했는데

그들이 속한 재일동포 사회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에 속한 아이들은 건강할 수밖에 없다구요.

왕따니 일진이니 선후배문화니, 연관 검색어가 온통 부정적인 단어들 일색인 한국의 청소년들이 새삼 안쓰러워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재일동포 사회도 완전한 이상향만은 아닐 겁니다.

어릴 적 함께 뛰어 놀던 조선인 이웃일지라도, 조선 학교로 진학하는가 일본 학교로 진학하는가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일본 학교에 다니는 과거의 친구들을 찾아가 함께 캠프에 가자고 했을 때 거절 당한 일화만 봐도 그렇습니다.

재일동포라고 해서 모두 같은 정체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똑같은 무게의 민족 의식이나 역사적 소명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꿈을 함께 응원하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꿈이 '럭비로 일본 재패'든, 헤드 기어에 소박한 글씨체로 적어 넣은 '조국 통일'이든

너와 나의 꿈이 다르지 않고, 동네 할아버지와 내가 같은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든든해지는 기분입니다.

좋은 대학 가서 잘 먹고 잘 살기 같은 꿈도 좋지만  

그런 꿈은 먼 동네에서 원정까지 와가며 응원해주지는 않잖아요. 


좋은 꿈은 함께 꿀 수 있는 꿈이고, 

좋은 사회는 함께 꿈을 꾸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꿈이 너를 외롭게 하지 않는 사회,

나 혼자 돌진해선 안 되고 너랑 속도를 맞춰야 하는 사회, 

설사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잘했다 괜찮다 위로해주는 사회. 

어차피 같이 꾸는 꿈이니까. 함께 이루어 나가면 되니까.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 몇 년 전에 홋카이도 조선학교 학생들 이야기를 다룬 '우리학교'를 감명깊게 봐서 이 영화가 더욱 반갑네요. '조고'라는 단어를 보니 눈물날 것 같아요. 홋카이도 조선학교 축구부 아이들이 힘들때마다 '우리는 조고생들이다' 라면서 서로 결의를 다지던게 생각이 나서요. 그 축구부에 유일한 일본인 교원이 한 분 계시는데, 후일담을 보니 본인 아이들 둘을 조선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 하셨대요. 서로 가족처럼 챙기고 정서적으로 끈끈한 그런 분위기는 일본학교에는 없는 것이니까요. 또 조선학교 하면 생각나는게 재일교포 축구선수인 정대세 선수인데, 그런 뜨거운 동포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재일 3세대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 정말 좋았습니다. 멋부리지 않고, 럭비선수 아이들은 너무 순수하고 재미있고 귀엽고.


      럭비라는 운동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보들이 / 네. 저도 <우리 학교> 생각 많이 났습니다. 한국에선 너무 당연해서 촌스럽게 취급되기도 하는 '민족'이나 '조국' 같은 개념이,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아직도 뜨겁고 소중하게 간직되고 있구나란 느낌을 받았어요. 내셔널리즘 같은 것과는 맥락이 다르고, 정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랐으니 재일 동포들에게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성숙함과 자존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형도 / 정말 옆에 있으면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아이들이더군요. 영화 정말 좋으니 입소문 많이 나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 극장 개봉하면 보거나.. 다시보기로라도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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